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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가분이 저격한다

중대재해법 반대 곽상도 의원님, 아들은 산재 50억 받습니까

중앙일보

입력

박가분 연구자이자 작가

곽상도 의원 아드님이 퇴직금으로 50억 원을 받았다는 소식에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그것도 산업재해 위로금 명목으로 받았다고 하더군요. 엊그제만 해도 산재 승인조차 잘 안 나는 나라였는데 갑자기 산재 위로금으로 50억원을 꽂아주는 나라로 거듭나다니 대한민국의 혁명적 발전에 충격받아 할 말을 잃었습니다. 혹시 아드님은 우리나라가 나아가야 할 발전방향을 제시한 것은 아닐까요. 근로복지공단과 기업을 상대로 산재의 인과관계를 굳이 다투지 않아도 아프거나 다치면 넉넉하게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노동자 입장에서) 바람직한 미래상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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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 사망률 최고 수준인 나라 

아직도 일터에서 발생한 사고와 질병으로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거나 다치는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엊그제만 하더라도 아파트 외벽 청소 첫 출근날에 밧줄이 끊어져 20대 노동자가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습니다. 지난 2016년 홀로 지하철역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참변을 당한 구의역 김군과 2018년 태안 화력발전소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한 김용균 님의 안타까운 소식 이후에도 노동자의 죽음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산업재해 사망자 규모는 2010년대 들어서 꾸준히 2000명 내외를 오가고 있습니다. 산재 사망률 또한 선진국 탑티어입니다. 언론상에는 청년들의 죽음이 주로 부각되지만 곽 의원님의 또래인 60대 남성들이 전 연령 산재 사망자의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연령을 불문하고 공감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군대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일과나 훈련 중에 다치거나 아파도 제때 치료받지 못해 곤욕을 치른 사연은 청년들이 드나드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둘러보면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적절한 보상과 환경개선 없이 정신적 스트레스에 취약한 병사들도 마구잡이로 징병하다 보니 사건·사고가 빈번해지는 구조가 되었습니다. 탈영범 잡는 체포조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D.P.'의 배경이 되는 2010년대 초반만 해도 매해 100명가량의 군인들이 군대에서 사고와 자살 등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많은 청년은 전역 후 ‘운이 좋아서 살았다’는 의식을 안고 살아갑니다. 이후 법이 개정되어 군 복무 중 부상·질병·사망에 대한 국가책임이 강화됐다고 하지만 청년들에게는 아직 체감되지 못하는 수준인 모양입니다.

'오징어 게임'에 곽상도 의원 아들의 50억원 퇴직금을 패러디한 이미지.

'오징어 게임'에 곽상도 의원 아들의 50억원 퇴직금을 패러디한 이미지.

이런 사망자 숫자는 사람이 죽어야 비로소 사회문제가 수면 위에 드러나는 현실의 슬픈 단면입니다. 아직도 많은 노동자들은 소송 부담 때문에 일하는 중 아프거나 다쳐도 산재신청을 할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SNS와 커뮤니티를 둘러보면 상하차 알바를 하다가 다치고 제대로 된 보상도 받지 못해 도망치는 ‘추노 썰’이 자조적인 밈으로 소비됩니다. 이쯤 되면 청년들이 어느 지점에서 50억 원 산재 위로금에 허탈감을 느낄지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러고 보니 곽상도 의원님은 중대재해법 표결에도 반대하셨더군요. 중대재해법이 모든 노동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미비점 때문에 반대했다면 할 말이 없지만 정말 노동현장에서 죽거나 다치는 사람들을 생각하고서 소신을 표출한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기왕 이번 논란이 일어난 것을 기해 산재보상을 다수의 노동자 그리고 청년들이 넉넉하게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주길 바랍니다. 더 나아가 산업재해 걱정 없는 일터와 사회를 만드는 데도 힘 써주길 바랍니다.

대장동 사태를 전관 악습 근절로 삼아야

아드님이 연루된 대장동 개발 논란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머리털 난 이후부터 매 순간 치열한 스펙 경쟁과 입시·취업·부동산 경쟁을 겪은 청년들, 토지개발 수익을 특권층이 연줄을 이용해 독식하는 구조를 보며 느끼는 ‘어이 터짐’은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다만 대장동 논란이 지금 일어난 것은 매우 잘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투기세력에 대한 토지개발 이익 몰아주기, 전관예우 구조를 근절할 기회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대장동 개발 논란의 책임 경중이 어느 진영에게 더 돌아가든 상관없이 진상을 명확히 밝혀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곽의원과 동료 의원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50억 원 퇴직금 논란이 불거진 후 곽의원님 제명안을 두고 잠시 소란이 있었는데요. 바라건대 ‘꼬리 자르기’에 그치지 말고 토지개발의 공공성을 담보하기 위한 제도보완 및 입법 노력을 기울여 주길 바랍니다.
토지는 이제 더 이상 세습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되며 소수 특권층이 개발이익을 독점해서도 안 됩니다. 부동산과 토지가 세습의 수단이 되었고 현재 경제구조가 불공정하다는 것을 청년들은 너무나 잘 압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정국이 한창일 때의 한 설문조사를 보면, 기성세대는 이를 ‘비정상적 통치행위’의 문제라고 본 반면, 당시 20대 청년 다수는 ‘정경 비리 유착의 문제’라고 응답한 바 있습니다. 그들이 지금 대장동 개발 논란을 바라보는 시각도 마찬가지입니다. 탄핵 촛불시위 이후 청년들의 정서와 문제의식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습니다. 청년들이 간절히 바라는 ‘공정성’은 모두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확보하고 특권적 세습구조를 바꾸는 것과 직결됩니다. 이 점을 잘 이해하는 분들이 미래 세대에게 지지받기를 바라며 이만 글을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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