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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뮤지컬로 부산행 佛거장 카락스 "홍상수 영화로 불면증 달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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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스 카락스 감독이 10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KNN시어터에서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아네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레오스 카락스 감독이 10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KNN시어터에서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아네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대사 대신 노래하게 하는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했어요. 비현실적인 상황에 가면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게 많아지죠. 갑자기 LA에서 독일에 가기도 하고요. ‘스파크스’가 이 프로젝트를 먼저 제안했을 때 15곡의 노래가 이미 있었고 그 전곡을 다 영화에서 활용할 수 있었어요.”
첫 뮤지컬 영화이자 9년 만의 복귀작 ‘아네트’로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BIFF)를 찾은 프랑스 괴짜 거장 레오스 카락스(61) 감독의 말이다. '아네트'는 지난 7월 칸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공개돼 감독상을 받았다. 올해 BIFF에선 거장의 신작을 소개하는 ‘갈라 프레젠테이션’ 부문에 초청됐고 마스터클래스도 열린다. 전날 부산에 도착한 그는 10일 기자회견에서 “어릴 때부터 음악을 했지만, 제대로 잘 하지 못해서 영화를 하게 됐다”면서 음악에 대한 애정을 쏟아냈다.

10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기자회견 #첫 영어 뮤지컬 영화 '아네트' 선보여 #록밴드 스파크스 15곡에 예술가 부부 비극 그려 #'딸바보' 감독 "나쁜 아빠에 관한 가족 영화죠"

괴짜 록밴드와 카락스의 현대판 오페라

영화 '아네트'. [사진 왓챠, 그린나래미디어]

영화 '아네트'. [사진 왓챠, 그린나래미디어]

'아네트'는 데뷔작 ‘소년, 소녀를 만나다’(1984) ‘퐁네프의 연인들’(1991) 등 주로 파리에서 작업한 그가 프랑스를 벗어나 처음 미국 LA에서 영어로 만든 영화다. 미국의 실험적 록밴드 ‘스파크스’가 자신들의 음악을 삽입한 카락스 감독의 전작 ‘홀리 모터스’(2012)를 보고 연출을 제안하며 성사됐다. 주인공은 웃음으로 대중을 ‘죽여주는’ 스탠드업 코미디언 헨리(아담 드라이버)와 무대에서 죽는 모습으로 관객을 ‘구원하는’ 오페라 가수 안(마리옹 코티아르). 둘은 격정적 사랑의 결실로 딸 아네트를 얻지만 파국을 맞는다. 스파크스가 카락스 감독과 공동 각본가로 이름을 올렸다.
카락스 감독은 “어려서부터 들은 많은 음악들이 영어 노래여서 영어 작업이 굉장히 좋았다”고 했다. “오페라 가수와 스탠드업 코미디언이란 직업은 스파크스의 구상에 처음부터 있었는데, 오페라는 고급스럽고 고상하게 여기지만 스탠드업 코미디는 저급한 것이라는 인식의 대조가 한 커플 사이에 있어 흥미로웠다”면서 “약간 이상한 방식일 수 있겠지만, 오페라에 근접한 것을 만들고 싶었다. 반신반인과 같은 사람이 있고 여성이 끝에 죽음에 이르게 되는 비극을 담고자 했다”고 말했다.

'라라랜드' 잔혹판 "나쁜 아빠 이야기죠" 

'아네트' 주연 배우 아담 드라이버. [사진 왓챠, 그린나래미디어]

'아네트' 주연 배우 아담 드라이버. [사진 왓챠, 그린나래미디어]

같은 LA가 무대인 할리우드 영화 ‘라라랜드’와 예술가들의 뮤지컬 멜로란 설정은 닮았지만, 분위기는 훨씬 음울하다. 쇼비즈니스계 스타들의 명성과 몰락, 죽음의 민낯을 잔혹 동화처럼 펼쳐낸다. 영화에서 감정을 가장 크게 움직이는 것은 헨리와 딸 아네트의 관계다. 카락스 감독은 ‘아네트’를 “아주 나쁜 아빠에 관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런 일들은 일어나게 마련”이라고 했다.
그는 실제 '딸바보'로 알려져 있다. 영화 ‘폴라X’(1999)의 러시아 배우 예카테리나 골루베바와의 사이에서 얻은 16살 딸 나스탸의 이름을 손에 문신으로 새길 정도다. 부녀는 ‘홀리 모터스’에 이어 이번 영화에도 직접 짧게 등장한다. “두 영화는 제가 아버지가 되고 나서 만든 것”이라며 “아버지에 관한 것, 뭔가 해답이 없는 의문점에 대해서 답을 찾고 싶었다. 제가 딸에게 나쁜 아빠인가 생각해보게 됐다”고 했다.
미국 드라마 ‘걸스’를 통해 8년 전부터 지켜봤다는 주연 아담 드라이브에 대해선 “이상하고 흥미롭다”며 대표작을 함께해 자신의 페르소나로 불리는 배우 드니 라방과 나란히 언급했다. 데뷔 37년째를 맞는 영화인생을 한마디로 압축한 단어로는 ‘혼돈(Chaos)’을 꼽았다.

나쁜 영화들 속에 신뢰할 만한 홍상수 영화 

지난 7월 칸국제영화제에 '아네트'로 개막작 겸 경쟁 부문에 초청된 카락스 감독(가운데)이 주연 배우 아담 드라이버(왼쪽), 마리옹 코티아르와 포즈를 취했다. [AP=연합뉴스]

지난 7월 칸국제영화제에 '아네트'로 개막작 겸 경쟁 부문에 초청된 카락스 감독(가운데)이 주연 배우 아담 드라이버(왼쪽), 마리옹 코티아르와 포즈를 취했다. [AP=연합뉴스]

“어렸을 땐 별로 좋지 않은 영화도 많이 봤고 어떤 면에선 영감이 되기도 했지만, 요즘은 시간 낭비라는 생각에 잘 보지 않는다”는 그는 “점점 더 드물어지지만, 신뢰할만한 영화가 있으면 본다”면서 홍상수 감독의 영화들을 들었다. “최근에 불면증을 겪어서 집에서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많이 봤어요. 홍 감독은 다작하는 것으로 아는데 1년에 두 편, 2~3년 안에 6편을 내놓기도 하죠. 거기 나오는 배우들도 상당히 좋았어요.”
카락스 감독이 부산을 찾은 것은 자신을 다룬 다큐멘터리 ‘미스터 레오 카락스’로 2015년 방문한 뒤 6년 만이다. 올해 영화제 측과 소통 차질로 내한이 늦어져 9일로 예정됐던 관객와과의 대화가 불발되는 해프닝도 있었다. “비행기 타고 기차 타고 부산에 도착한 지 24시간도 안 됐다”며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더라. 와서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아네트’는 오는 27일 극장에서도 정식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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