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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에 노벨평화상…언론단체 "위협 받는 저널리즘 방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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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오슬로에 위치한 노벨평화센터 정문. 연합뉴스

노르웨이 오슬로에 위치한 노벨평화센터 정문. 연합뉴스

2021년 노벨평화상이 두 명의 언론인에게 돌아가자 세계 언론단체는 일제히 “환영한다”는 뜻을 밝히면서도 “전 세계 저널리즘과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논평했다. 수상자 중 한명인 필리핀 언론인 마리아 레사(58)는 “지금까지는 언론인이 겪고 있는 일이 주목받을만하다 생각하지 않았다. (노벨평화상이) 우리가 직면한 전투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고 AP통신이 9일(현지시간) 전했다.

필리핀·러시아 언론인 노벨평화상 

이날 AP통신과 워싱턴포스트(WP), CNN 방송 등에 따르면, 국경없는기자회·언론인보호위원회 등 언론단체와 유엔(UN)은 노벨위가 언론인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여한다고 발표한 것에 대해 “저널리즘에 대한 특별한 찬사임과 동시에 위협받는 저널리즘과 민주주의의 긴급한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노벨위는 8일 레사와 함께 러시아 언론인 드미트리 무라토프(60)를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레사는 필리핀의 온라인 뉴스 사이트 ‘래플러’를, 무라토프는 러시아 신문 ‘노바야가제타’를 각각 설립했다. 레사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을 비판하고,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 속 가짜뉴스와의 싸움에 적극 나섰다. 무라토프는 러시아 유일의 반정부매체 노바야가제타 편집장으로 일하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비리를 집중 보도해왔다.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필리핀의 저널리스트 마리아 레사. 그는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의 비리를 집중 보도해왔다. 연합뉴스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필리핀의 저널리스트 마리아 레사. 그는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의 비리를 집중 보도해왔다. 연합뉴스

“표현의 자유 없이 더 나은 세계질서 없어”
노르웨이 노벨위 위원장인 베리트 라이스안데르센은 “전 세계 민주주의와 언론의 자유가 점점 후퇴하고 상황”이라고 전제했다. 수상자들에 대해서는 “그 이상(理想)을 옹호하는 모든 언론인의 대표”라고 했다. 이어 “표현의 자유와 언론 자유 없이는 국가 간의 우애, 군비 축소, 더 나은 세계질서도 없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역시 “언론을 억압하는 수사와 언론인에 대한 공격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드미트리 무라토프(가운데)가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장되자 동료들이 축하해주고 있다. 연합뉴스

드미트리 무라토프(가운데)가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장되자 동료들이 축하해주고 있다. 연합뉴스

언론단체 "저널리즘 위기의 증거"

언론단체들의 현실 인식은 한층 절박했다. 국경없는기자회 크리스토프 들루아르 사무총장은 두 사람의 수상을 축하하며 “기쁨과 긴박함”을 표명했다. 그는 “(노벨평화상 수상자 선정은) 저널리즘에 대한 특별한 찬사”라는 환영 메시지와 함께 “현재 저널리즘은 위험에 처했고, 약화됐고 위협받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민주주의는 허위정보, 근거없는 소문, 증오 표현에 의해 약화된다”고 했다. 필리핀 외신기자협회는 “기자들은 일상적으로 온라인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뉴스룸은 자체 검열에 대한 압박을 받고 있다. 언론인은 구금·살해를 포함한 폭력에 취약하다”고 했다.

폴란드 일간지 가제타 비르보차의 부편집장인 로만 이미엘스키는 “폴란드 언론 역시 지난 5년동안 정부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고, 공영방송은 잘못된 방송과 선전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조엘 사이먼 언론인보호위원회(CPJ) 사무국장은 “언론인들은 인신 위협, 검열, 억압에 끊임없이 도전해 뉴스를 보도하고 있다”고 했다.

노벨위 위원장 베리트 라이스안데르센. 연합뉴스.

노벨위 위원장 베리트 라이스안데르센. 연합뉴스.

그간 노벨위는 국가 간의 우호, 군비 감축, 평화 교섭 등에 큰 공헌을 한 인물이나 단체에 평화상을 수여해왔다. 또 긴급을 요하는 인류 공통의 문제 해결을 위해 앞장 선 이들도 수상자로 선정했다. 지난해 유엔식량기구가 코로나19로 심각해진 기아 문제 해결을 위해 애써왔다는 이유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이 같은 노벨평화상을 언론인이 받은 건 1935년 수상 이후 86년 만이다.

이에 대해 라이스안데르센 노벨위 위원장은 “표현의 자유야말로 평화에 필수적”이라며 “자유롭고 독립적이며 사실에 기반한 언론은 권력남용, 거짓말, 전쟁 선동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한다”고 말했다. CNN은 “표현의 자유와 언론 자유를 위한 투쟁은 노벨평화상의 공식 목표인 평화 추구에 명백하게 부합된다”며 “언론의 자유는 그 어느 때보다 큰 투쟁의 대상이 됐다”고 전했다.

“가짜뉴스 구실로 언론 탄압”

실제로 국제 사회에서의 언론 탄압 수위는 지속적으로 높아지는 추세다. CPJ의 특별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전세계에서 감옥에 갇힌 기자 수가 274명으로 1992년 처음 조사를 시작한 이래 가장 많았다. 이 중 34명이 ‘가짜뉴스’ 보도를 이유로 투옥됐다. CPJ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비판적 보도를 가짜뉴스라고 부른 뒤, 전 세계 독재자들이 자신의 나라에서 언론인을 탄압할 연막으로 이것을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CPJ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에서 언론인 31명이 취재 중 살해를 당했고 이중 21명은 보복 살해였다. 전년도 10명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했다. 이 기간 동안 멕시코와 아프가니스탄에서 각각 5명의 언론인이 숨졌다. 필리핀에서는 3명이 피살됐다. 2015~2018년 3년간 언론인이 가장 많이 살해당한 나라는 터키·중국·이집트였다. 2017년 이란 정권은 반정부 시위를 보도했단 이유로 언론인 루홀라 잠을 사형시켰다. CPJ는 “언론 탄압이 하나의 유행이자 뉴노멀로 자리잡고 있다”고 우려해왔다.

아프가니스탄 기자들이 시민들의 거리 시위를 취재하다 탈레반에게 끌려가 폭행을 당했다. 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 기자들이 시민들의 거리 시위를 취재하다 탈레반에게 끌려가 폭행을 당했다. 연합뉴스

노벨평화상이 ‘언론과 표현의 자유’에 주목하자, 한국 여당이 추진 중인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향방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수상자 중 한명인 레사는 한국의 언론중재법 개정 작업이 언론 탄압이라고 비판하며 개정 철회를 요구했던 국제언론인협회(IPI) 이사회 멤버다. IPI는 지난 8월 “한국은 새로운 가짜뉴스 처벌법을 철회해야 한다”는 입장문을 홈페이지에 올렸고, 9월에는 언론중재법 개정안 철회를 요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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