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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청탁” 물러난 35세 총리…청년정치 전설 추락하나

중앙일보

입력

제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총리가 9일(현지시간) 빈 총리실에서 사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제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총리가 9일(현지시간) 빈 총리실에서 사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제바스티안 쿠르츠(35) 오스트리아 총리가 9일(현지시간) 사퇴했다. 쿠르츠 총리가 기사 청탁을 위해 언론사 광고비 명목으로 공금을 썼다는 의혹이 제기된 지 3일 만이다. 전날까지만 해도 “사퇴는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연정 파트너인 녹색당마저 사퇴를 압박하자 더는 버티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국가 안정 중요…결백 밝히겠다”

9일(현지시간) 빈 총리실에서 사퇴 기자회견 나서는 제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총리. 로이터=연합뉴스

9일(현지시간) 빈 총리실에서 사퇴 기자회견 나서는 제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총리. 로이터=연합뉴스

가디언 등에 따르면, 쿠르츠 총리는 이날 저녁 빈 총리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금 국가에 가장 필요한 건 안정성 확보”라면서 사퇴를 선언했다. “팬데믹(코로나19)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경제도 이제 막 회복하고 있다”면서다. 그러나 자신의 혐의에 대해선 “결백을 증명하겠다”며 부인했다. 후임 총리 후보로는 알렉산더 샬렌베르크(52) 외무장관을 추천했다.

검찰은 지난 6일 쿠르츠 총리가 외무장관이던 2016년부터 여론조사기관과 언론사에 광고비 명목으로 재무부 자금을 사용하면서 호의적인 보도를 조장하고 여론조사를 조작한 혐의가 있다며 수사 개시 사실을 밝혔다. 여당인 국민당 당사와 총리실 압수 수색까지 마쳤다. 녹색당은 “흠결 없는 총리 후보를 지명하라”며 총리 사퇴를 요구했고, 다른 야당과 함께 12일 불신임안 제출 계획을 확정했다.

세계 최연소 선출직 정부 수반인 쿠르츠 총리는 청년정치인으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정치인이 되려고 빈대학교 법학과를 중퇴했고 23세에 국민당 청년대표를 지낸 뒤 빈 시의원을 거쳐 27세에 총선에 당선되고 외무장관까지 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31세이던 2017년 압도적인 지지로 국민당 대표에 올라 그해 총선에서 국민당의 승리를 이끌었다. 극우정당인 자유당과 연정을 구성해 총리에 취임, 유럽연합 최연소 정부 수반 기록을 세우면서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다. 그해부터 2년 연속으로 타임(TIME)지가 선정하는 ‘세계 차세대 지도자 10인’에 이름을 올렸다.

19년 만에 방한…文대통령과도 2차례 정상회담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2월 14일 한국을 공식 방문한 제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총리를 맞이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2월 14일 한국을 공식 방문한 제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총리를 맞이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정치 성향으로는 중도우파인 국민당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인사로 꼽힌다. 자유당과 연정을 통해 이슬람이나 난민 정책 등에서 자국민 우선주의를 강하게 내세웠다. 앙겔라 마르켈 독일 총리는 그의 반이민 정책을 두고 “반인륜적”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한국과도 인연이 있다. 지난 2019년 2월 오스트리아 총리로서는 19년 만에 한국을 방문했고, 지난 6월 양국 수교 129년 만에 처음으로 오스트리아를 국빈방문한 문재인 대통령과 두 번째 정상회담을 가졌다. 지난해 코로나19 방역과 관련해 ‘작지만 혁신적인 국가’ 중 하나로 한국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의 사퇴는 이번이 두 번째다. 지난 2019년 5월 연정 파트너인 자유당 소속  하인츠 크리스티안 슈트라헤 부총리의 부패 스캔들로 연정이 붕괴하고 야당이 주도한 불신임안이 가결되면서 사임한 바 있다. 하지만 4개월 후에 열린 총선에서 다시 국민당을 승리로 이끌어 지난해 1월 총리로 복귀했다. 이번에는 자유당과는 반대 성향인 녹색당과 연정을 구성해 이목을 끌었다.

지난 6월 14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를 국빈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 빈 쇤브룬궁에서 열린 제바스티안 쿠르츠 총리 주최 오찬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지난 6월 14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를 국빈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 빈 쇤브룬궁에서 열린 제바스티안 쿠르츠 총리 주최 오찬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다만 그의 정치적 생명이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총리직은 내려놓지만, 국민당 대표와 국회의원직은 그대로 유지하기 때문이다. 특히 쿠르츠 총리가 후임 총리로 추천한 샬렌베르크 장관은 그의 측근으로 꼽히는 인사다. 정치학자 피터 필즈마이어는 오스트리아 공영방송 ORF와의 인터뷰에서 “(총리 사퇴와) 실제 권력의 상실은 다른 것 같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도 “쿠르츠가 총리직을 그만두더라도 권력에 가까이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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