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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경고도 무시···문 대통령 다녀간 닭 공장의 두 얼굴 [뉴스원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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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덕 고용노동부 장관(왼쪽)이 6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부의 국정감사에서 선서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경덕 고용노동부 장관(왼쪽)이 6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부의 국정감사에서 선서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의 촉 : 경제주체로서의 노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6일 고용노동부 국감에서 부당노동행위가 도마 위에 올랐다. 경영진에 의한 노조 파괴 공작이나 노조 배척과 연관된 사안이다. 아직도 이런 문제가 국감장을 달군다는 것 자체가 한국 노사문화의 후진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한데 이날 국감장에서 제기된 부당노동행위 문제 중엔 논란거리도 적지 않았다. 어쩌면 노조 세 불리기를 둘러싸고 두 얼굴이 존재한다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아직도 구태의연한 노조파괴 공작을 하는 사용자가 있는가 하면 정치권이 맞장구를 치며 노노갈등을 부추기는 의혹이 이는 대목도 있다. 둘 다 비난받아 마땅한 사안이다. 전자는 경영진 마음대로 근로자를 대하려는 불순한 의도와 건전한 노사문화를 해치는 일이어서 엄단해야 할 문제다. 후자는 여론 공작을 통한 사용자와 정부를 압박하기 위한 의도가 아닌지 의심케 한다.

판사의 경고도 무시한 노조 고사 작업

국감장에서 제기된 노조 파괴 공작 사례다. 송옥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하림의 부당노동행위와 관련된 심문을 했다. 배기영 하림신노조위원장이 참고인으로 나왔다. 배 위원장은 "신 노조 설립 직후에 한 임원이 해산을 종용했고, 경제적 부분도 저에게 약속했다"고 증언했다. 노조를 없애기 위한 회유다. "시기를 봐서 구 노조를 다 넘겨주겠다고 했다"라고도 증언했다. 배 위원장은 "현재 구 노조 위원장은 하림 임원의 친동생으로, 15년 동안 총회나 조합활동을 하지 않았고, 단체교섭도 지금까지 두 번 정도 했을 뿐"이라며 "사실상 페이퍼노조"라고 폭로했다.

익산 도계공장

익산 도계공장

하림은 이와 관련 임원과 작업반장이 올해 1월 전주지방법원에서 부당노동행위로 벌금형을 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또다시 이런 일이 있으면 엄중히 책임을 묻겠다"고 경고한 사실도 배 위원장을 통해 공개됐다. 그런데도 달라진 게 없다는 얘기다. 오히려 "관리자 갑질과 부족한 현장인원 미배치, 휴게실에서조차 휴대폰 사용금지와 같은 노조 고사작전이 펼쳐지고 있다"는 증언이 나올 정도로 더 심해지고 있다.

배 위원장은 "노조가 회사와 성실히 대화할 수 있도록 중재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고 안경덕 고용부 장관에게 읍소했다. 오죽하면 안 장관이 "수사 중인 사안이다. 검찰 지휘과정에서 수사가 지연된 부분이 있는데, 회사 개입 여부를 철저히 조사해 부당개입이 확인되면 엄정 조치하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노조 파괴 공작에 대한 사회적 지탄이 쏟아진 상황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사실이 못내 충격적이라는 듯했다. 하림은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8월 식품산업 활성화를 독려하기 위해 방문한 곳이기도 하다.

특정 노조 쏠림 의혹 문제제기…노노갈등 유발 위험

SPC도 국감장 도마 위에 올랐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회사 관계자들의 조직적인 노조 파괴 공작이 있었다"고 주장하면서다. 정확히 말하면 민주노총 산하 노조에 대한 파괴 공작을 했다는 것이다. SPC파리바게뜨의 제과·제빵사 등이 근무하는 피비파트너즈에는 한국노총 산하 노조와 민주노총 산하 노조가 있다. 한국노총 계열에는 조합원이 4100여 명, 민주노총에는 300명 정도다.

강 의원은 영상 자료로, 카톡으로 주고받은 민주노총 탈퇴, 한국노총 가입 안내 대화를 노조 파괴 공작의 증거로 제시했다. 한데 여기에 등장하는 사람은 '중간관리자'다. 강 의원도 중간관리자라고 영상자료에 명시했다. 중간관리자는 한국노총 소속 조합원이다. 따라서 회사가 노조 파괴 공작을 한 것이 아니라 노조끼리 조합원 유치 경쟁을 한 꼴이다. 부당노동행위가 되려면 경영진이 지배개입을 해야 한다. 경기지방노동위원회도 민주노총의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에 대해 "중간관리자는 노조법상 사용자에 해당하지 않아 부당노동행위의 주체가 될 수 없다"고 판정한 바 있다.

강은미 의원이 SPC의 노조파괴공작(부당노동행위)의 증거로 제시한 카카오톡 대화

강은미 의원이 SPC의 노조파괴공작(부당노동행위)의 증거로 제시한 카카오톡 대화

그렇다면 강 의원의 주장은 법적으로 근거가 없는 셈이다. 그는 안 장관에게 "특별 근로감독과 증거인멸에 따른 신속한 압수수색을 요구한다"고 했다. 특정 노조를 지원하려 회사와 정부를 압박하는 것으로 비치기에 십상이다. 한국노총 산하 노조 측은 "조합원을 상대로 금품을 갈취하는 등 문제를 일으켜 우리 노조가 회사에 강력한 징계를 요구했고, 결국 퇴사한 중간관리자가 제공한 자료를 가지고 민주노총 탄압, 한국노총 우대라고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수많은 소송을 제기하고 매장 앞에서 집회를 일삼아 실망한 조합원이 민주노총을 떠나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한국노총 본부 관계자는 "노노갈등은 건전한 노사관계를 해칠 뿐이다. 이를 부추기는 행위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SPC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제조장이 신규 입사자에 대한 설명회장에서 교섭대표노조, 즉 한국노총 산하 노조 관련 팸플릿을 돌렸다. 한국노총 가입을 유도하는 행위로, 불법이다. 경기지방노동위도 이에 대해선 "회사 제조장은 노조법상 사용자로 지배개입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판정했다. SPC의 책임이 크다. 아직도 경영진이 구시대적인 노사관을 가지고 노무관리를 한다는 건 심각한 문제다. 결국 이런 일이 반복되면 경영상 리스크로 작용할 수밖에 없고, 노사갈등이 지속할 수 있다.

만연한 의도적 노조 배척…인사전략 전환 필요

아직도 노조를 파트너로 생각하지 않고 배척하는 경영 관행은 일선 사업장에서 여전하다. 물론 투쟁적인 노조로 인한 갈등 구조에서 경영진의 고충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노조의 무리한 요구나 불법행위도 있지만, 노사불안이 가중 되는 데는 경영진의 태도도 한몫을 한다.

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에 대한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한성숙 네이버 대표이사 사장이 직장 내 괴롭힘 등 조직문화 관련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에 대한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한성숙 네이버 대표이사 사장이 직장 내 괴롭힘 등 조직문화 관련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국감에서도 이런 문제가 여러 차례 지적됐다. 네이버는 네이버 노조가 직장 내 갑질에 임금체불까지 했다고 발표하자 "그런 일이 없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고용부가 특별근로감독을 한 결과 임금을 체불한 사실이 드러났다. 네이버는 이에 대해서도 반박했으나 국감 직전에 청산하는 꼼수를 썼다가 국감에서 질타를 받았다. 노조의 주장에 대해 사실관계만 확인했어도 갈등으로 치닫지 않을 수 있었다. 노조의 주장을 아예 무시한 결과다. 노조와의 대화는 조직의 문제를 끄집어내고 개선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무조건 배척하고 무시하다 국감장에서 국민 앞에 망신을 당한 셈이다.

현대케피코 연구원으로 일하는 이건훈(29ㆍ오른쪽)씨가 주축이 된 현대차그룹 사무직 노조가 지난 4월 26일 서울고용노동청에 정식 설립 신고를 했다. 김영민 기자

현대케피코 연구원으로 일하는 이건훈(29ㆍ오른쪽)씨가 주축이 된 현대차그룹 사무직 노조가 지난 4월 26일 서울고용노동청에 정식 설립 신고를 했다. 김영민 기자

최근 노조 설립 움직임이 활발한 MZ노조를 대하는 기업의 태도도 사회문제화할 가능성이 크다. MZ노조가 생긴 기업에선 대체로 분할지배전략(divide & rule)을 구사하고 있다. MZ노조를 의도적으로 따돌리고 무시하는 것이다. 노사관계가 협력적인 곳은 MZ노조가 귀찮고, 기존 노조의 힘이 쎈 곳은 자칫 심기를 거스를까 기존 노조를 대접하기 위한 방법인지도 모른다. 결국 지금의 기득권 노사문화에 안주하는 노무관리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MZ세대는 노동시장의 주역으로 부상 중이다. 현 노조 간부들의 연령이 40대 후반에서 50대에 이르는 점을 고려하면 노조 리더십이 MZ세대로 원활하게 전환되지 않고 경착륙할 경우 노노 세대 갈등이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 MZ노조 배척은 결국 경영리스크를 기업도 모르게 조금씩 쌓아가는 꼴이 된다. MZ노조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그들과 소통하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결국 리스크가 쌓여 터질 수도 있다. 그때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시장 변화에 기업이 대응하듯 세대 변화에도 걸맞은 인사와 노무 전략의 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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