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더오래]“고구마 꽃이 피었습니다”…농촌에 번지는 기후위기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성주의 귀농귀촌이야기(100)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엄청난 인기다. 전 세계 넷플릭스 시청 순위에서 1위에 올랐다니 대단하다. 농촌이라고 오징어 게임을 모를 것 같나. 아니다. 농민들 사이에서도 ‘오징어 게임’은 이야기의 단골 메뉴이다. 특히 드라마에서 나오는 게임들은 우리의 골목 게임을 재현한 것이니 할 말이 많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설탕 뽑기’, ‘구슬치기’를 안 해봤으면 대한민국 사람이 아닐 것이고, ‘줄다리기’는 군민 잔치에서 빠지지 않는 경기였다.

‘오징어포’라고 불린 바닥에 오징어 모양을 그려 놓고 단체로 겨루던 게임은 시골에 산 사람일수록 기억이 또렷하다. 넓은 면적의 공터가 있어야 하고 차가 다니지 않아 위험하지 않아야 가능한 게임이기 때문이다. 민속놀이에 아마도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나온 게임은 포함될 것이다. 지금 50~60대에게는 실제로 해봤던 추억의 게임임이 틀림없다. ‘설탕 뽑기’야말로 추억의 간식이다. 달고나라고 부르는 이 누런 원형의 설탕 누름은 달콤함과 함께 원형 속에 박혀 있는 모양새를 그대로 뽑아내야 하는 스릴도 있다. 예전에는 불량식품이었는데, 지금은 세계인의 간식이 될 참이라니 묘하다.

평균 기온이 올라가야 꽃이 피기 때문에 기후변화를 나타내기도 하는 고구마 꽃. 베테랑 농부도 고구마 꽃을 처음 봤다고 할 만큼 매우 희귀하다. [사진 김성주]

평균 기온이 올라가야 꽃이 피기 때문에 기후변화를 나타내기도 하는 고구마 꽃. 베테랑 농부도 고구마 꽃을 처음 봤다고 할 만큼 매우 희귀하다. [사진 김성주]

추석을 지나 방문했던 경상북도 영주시 장수면의 ‘꽃계 마을’에서도, 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의 ‘하주 마을’에서도 ‘오징어 게임’이 화제였다. 아줌마, 아저씨들이 모여서 나는 이렇게 했네, 우리 동네는 규칙이 이랬네 하면서 어린 시절 무용담을 늘어놓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어떤 이는 지난 설날만 해도 어릴 적 ‘구슬치기’나 ‘팽이치기’를 하며 놀았다고 하면 아이들에게 꼰대 대접을 받았는데 이번 추석 명절에는 진짜로 드라마에 나오는 이런 게임을 직접 해봤냐고 묻는 손주들의 질문에 뿌듯해졌단다. 직접 마당에 오징어 게임판을 그리며 룰을 설명하자 아이들이 자기를 보는 눈이 달라졌단다. 존경의 느낌마저 받았단다. 귀농해 처음으로 손주들과 진지하게 긴 시간을 소통했다나. 용돈보다 더 성능이 좋았단다.

여러 명이 밥을 먹고 벼가 익은 논을 끼고 산책을 하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외쳤다. 은근히 중독성이 있는 운율을 가지고 있는 이 열 글자는 들으면 들을수록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말을 끝나면 왠지 무조건 멈춰야 할 것 같아서 그렇다.

남원시 중앙초등학교 학생들이 농촌 마을에 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고 있다. [사진 김성주]

남원시 중앙초등학교 학생들이 농촌 마을에 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고 있다. [사진 김성주]

느릿느릿 걷던 중에 누군가 외쳤다. “고구마 꽃이 피었습니다.” 웬 고구마? 말한 이를 향해 가보니 정말 고구마 밭고랑에 고구마 꽃이 피어 있었다. 고구마는 나팔꽃과 매우 가까운 친척 간이라 꽃이 나팔꽃과 비슷하다. 고구마 순을 먹는 것처럼 나팔꽃 줄기도 ‘공심채’라 하여 먹을 수 있다. 그러나 고구마 꽃은 매우 희귀하다. 농사 경력 40년이라는 고령에서 온 베테랑 농부도 고구마 꽃을 처음 봤다며 사진을 찍는다. 필자도 처음 봤다.

고구마 꽃이 희귀한 것은 꽃이 잘 피지 않아 그렇다. 원산지가 남미라서 그런지 기온이 어지간히 오르지 않으면 잘 피지 않는다. 평소에는 잘 피지 않다가 평균 기온이 높아지면 핀다. 그래서 기후 변화를 나타낸다고 한다. 지금 고구마 꽃이 피어 있다는 것은 그만큼 기후 위기가 심각한 것이라고 인천에서 온 도시민이 설명해준다. 그리고는 고구마 꽃을 열심히 뽑는다. 혹시 불길해서 뽑나 했더니 아니다. 고구마 꽃이 없어야 고구마가 더 영글기 때문이란다. 밭 주인에게 도움이 되려고 그런단다. 아는 것도 많고 배려심도 좋다.

‘설탕 뽑기’는 추억의 간식이다. 달고나라고 부르는 이 누런 원형의 설탕 누름은 달콤함과 함께 원형 속에 박혀 있는 모양새를 그대로 뽑아내는 즐거움도 있다. [중앙포토]

‘설탕 뽑기’는 추억의 간식이다. 달고나라고 부르는 이 누런 원형의 설탕 누름은 달콤함과 함께 원형 속에 박혀 있는 모양새를 그대로 뽑아내는 즐거움도 있다. [중앙포토]

넷플릭스 드라마 이야기를 하다가 골목 놀이 이야기를 하다가 구황 작물 이야기를 하다가 기후 위기 이야기까지 나온다. 그렇다. 도시 사람이나 농촌 사람이나 생각하는 것은 같다. 걱정하는 것도 같다. 이제는 도시와 농촌은 동격이다. 누가 농촌 더러 뒤처졌다고 하는가. 사는 게 좀 불편한 게 있을 뿐 똑같이 OTT 서비스로 드라마를 보는 게 지금 세상이다.

어느새 귀농·귀촌 칼럼이 100회를 달렸다. 처음 칼럼을 기고한 것이 2017년 8월이었으니 햇수로 5년이다. 그 사이에 무엇이 달라졌나 생각해 봤다. 떠오르는 것은 세상은 역시 돌고 돈다는 것. 신나게 땀 흘리며 겨뤘던 ‘오징어포’는 도시의 골목이 사라져 없어졌는데 지금은 세계인이 관심을 가진다. ‘오징어 게임’을 할 수 있는 시골 골목을 부러워한다. 귀농·귀촌을 하면 시골살이를 해야 하는 두려움보다 더 많은 즐거움이 있을 거라는 설렘이 앞서는 시대가 곧 올 것 같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