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화하고 자폭" 그 뒤 진짜 흉기살해, 그놈들 '여성BJ' 노리는 까닭

지난 4일 오전 11시 30분쯤 은평구 역촌동의 한 공인중개사무소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최연수기자

도를 넘은 인터넷방송의 뒤틀린 ‘팬심’이 여성 BJ 타깃형 범죄로 변질하고 있다. 후원제(별풍선)로 운영되는 인터넷 방송 특성상 BJ에게 충성도가 높은 사람의 왜곡된 시청 문화가 그 기반이 됐다는 지적이다. 범죄를 저지른 이들은 여성 BJ를 스토킹하다 본인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 이에 대한 반발심에 범행을 계획했다.

살인마의 마지막 채팅 “흑화하기 전에 강퇴 풀어”

지난 4일 오전 11시 30분쯤 은평구 역촌동의 한 공인중개사 사무실에선 이 같은 사건이 벌어졌다. 공인중개소를 찾아온 30대 남성 A씨가 사무실에 있던 50대 여성 공인중개사를 흉기로 살해했다. 이 여성은 A씨가 자주 보던 인터넷 방송 BJ B씨의 어머니였다. B씨가 인터넷 방송 중 비방 댓글을 다는 A씨를 ‘강제퇴장’ 시키자 이에 앙심을 품고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은평구 역촌동의 공인중개사무소 살인사건을 저지른 30대 남성A씨가 BJ에게 강퇴된 사실을 항의한 마지막 채팅. 커뮤니티 캡쳐

 방송을 통해 개인 신상정보를 얻은 A씨에게 B씨의 주거지 등 가족 신상정보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A씨는 BJ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공인중개소를 찾아 어머니를 살해하고, 본인은 범행 장소에서 도보로 5분 정도 떨어진 인근 빌라의 옥상에 뛰어내려 목숨을 끊었다. A씨는 역촌동의 공인중개사 사무실에 부모의 차량을 빌려 타고 갔으며, 미리 흉기를 준비하는 등 계획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A씨가 살인을 예고한 정황도 드러났다. 본인의 계정이 강제 퇴장당하자 다른 계정을 만든 A씨는 BJ에게 “내 본캐(원계정) 블랙(강퇴) 풀어달라”며 “45분까지 안 풀어주면 진짜 흑화(타락한다는 뜻의 인터넷 용어)하고 자폭하겠다”는 글을 채팅방에 남겼다. 그러면서 “내일이 레전드 방송이 될 것. B씨가 내일 방송을 켤 수 있을지 궁금하네”라는 채팅을 추가로 남겼다. A씨는 B씨 외에 다수의 여성 BJ들을 상대로도 스토킹하며 괴롭힌 사실도 추가로 드러났다.

“BJ 소유할 수 없어 원망” 가족까지 노리는 스토킹 범죄

아프리카TV 로고. 사진 아프리카TV

여성 BJ를 향한 범죄는 끊이지 않았다. 대부분 가족이 피해를 봤다. 지난 3월 경기도 의정부에서는 여성 BJ의 어머니를 살해하겠다며 흉기를 들고 찾아간 2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 남성은 6개월간 꾸준히 BJ를 스토킹했다. 그러다 여성 BJ 어머니가 하는 가게를 알아냈고, 범행 시점을 엿보다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 조사에서 피의자는 "BJ를 소유할 수 없어 원망스러웠다. 주변인을 죽이면 BJ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 것 같았다"고 진술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범죄가 집착에서 기인한 스토킹 범죄이며, 여성 이외에 가족 등의 주변인으로 피해가 퍼질 수 있다는 위험성에 대해 지적한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BJ의 어머니에게 범행을 저지른 것은 병적인 집착과 보복심에서 일어난 것이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남성은 흉기를 사전에 준비하고 범행을 저지르기까지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CCTV에 범행 장소로 들어가는 장면, 나가는 장면이 찍혔는데 미리 결심하고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어 “최근 스토킹에 대한 피해는 김태현(노원구 세 모녀) 사건의 경우를 통해서 알 수 있듯 여동생과 어머니까지 사망에 이르게 하는 등 보복의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며 “피해자는 사태가 심각해지기 전 경찰에 신고해 신변 안전을 확보하는 게 우선”이라고 덧붙였다.

최연수 기자 choi.yeonsu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