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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 한그릇이 1300원 차이?…‘럭셔리’서 ‘가심비’된 백화점 식당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일할 때는 백화점이 편해요. 주차가 편하고 식사와 커피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거든요. 쾌적한 시설에 비해 가격도 의외로 안 비싼 것 같아요.”
직장인 김모(39)씨는 비즈니스 미팅 등 업무를 겸한 식사를 할 때 백화점 식당가를 자주 이용한다. 주차 편의 등 여러 이유가 있지만 품질과 서비스가 보장되면서 고급 레스토랑에 비해 가격이 합리적이어서 소위 ‘가심비(가격대비 마음의 만족)’가 좋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의 식당가 모습. 이소아 기자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의 식당가 모습. 이소아 기자

부담스러운 가격에서 대중적 식당으로 

과거 백화점에서 온 가족이 식사하는 것은 ‘특별한 날 비싼 외식’으로 여겨지곤 했다. 그만큼 거리의 일반 음식점보다 가격이 비싸고 인테리어와 식기 등도 고급스러웠다.
하지만 식문화 발전으로 유명 셰프들의 레스토랑을 비롯해 분야별 전문 레스토랑과 미디어를 통해 입소문이 난 ‘맛집’들이 급속히 늘어나면서 백화점 식당은 특별한 곳이라기보다는 대중적인 장소가 됐다.

서민 메뉴 가격 상승 비교해보니 

실제 9일 롯데·현대·신세계백화점에 따르면 백화점에서 파는 주요 외식 메뉴 가격은 서울지역 식당보다 비쌌지만, 10년간 가격 인상률은 오히려 낮았다.

10년간 백화점 주요 외식비 비교.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10년간 백화점 주요 외식비 비교.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대표적 서민 메뉴인 자장면의 경우 지난 2011년 백화점 3사의 평균 가격이 7500원이었는데 9월 현재 9000원으로 20% 올랐다. 같은 기간 행정안전부 물가정보에 공개된 서울 지역 자장면 평균 가격은 4273원에서 5462원으로 상승률 27.8%를 기록했다.

매년 가격이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냉면은 지난 10년 백화점 가격이 9000원에서 1만500원으로 16.7% 오르는 동안, 서울 평균가격은 7545원에서 9115원으로 26.9%로 뛰었다.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는 비빔밥 역시 10년간 백화점 가격은 24%, 서울 지역 식당 가격은 평균 29.7% 올랐다. 백화점 식당이 지녔던 고급 이미지가 이제 호텔로 옮겨갔다는 얘기가 나온다.

코로나19가 터지기 전 아이와 같은 또래 자녀를 둔 학부모들과 백화점에서 자주 모임을 가졌다는 이가연(36)씨는 “백화점 물가는 여전히 비싸지만 다른 곳들이 더 비싸졌다. 이름이 알려진 셰프의 레스토랑이나 요즘 뜬다는 식당은 인당 3만~5만원은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핫’한 먹거리로 고객 잡아라 

백화점 식당이 ‘특별한 한 끼’에서 ‘필수 편의시설’로 자리매김한 데에는 업체들의 운영 전략도 영향을 미친다. 최근 백화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명품과 식음료(F&B, Food and Beverage)를 양대 집객 요소로 활용하고 있다. 이중 식음료는 이제 막 출시됐거나 국내에 들어와 인스타그램 등 SNS(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되는 베이커리·디저트·카페 위주로 꾸려 2030 젊은 소비자의 관심을 끄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서울 여의도 '더현대 서울' 지하 푸드코트에 들어선 인기 디저트 코너 모습. 사진 현대백화점

서울 여의도 '더현대 서울' 지하 푸드코트에 들어선 인기 디저트 코너 모습. 사진 현대백화점

동시에 지하 식품관 등에 마련된 푸드코트의 규모와 메뉴 종류를 확대하면서 소비자 선택의 폭을 넓혔다. 이로 인해 기존 식당가는 단골이나 비교적 안정적인 메뉴를 선호하는 연령대가 높은 고객, 모임과 업무 등 외부와 구분된 공간에서 식사하려는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편의시설이 됐다.

식당·카페·쇼핑 공간 구분 점점 사라져 

백화점들은 손님 모으기 수단으로서의 F&B 자체는 확대하되, 공식처럼 여겨지던 건물 제일 위층의 ‘전문 식당가’는 소비자와 시장 변화에 맞게 변화를 꾀하고 있다. 일례로 최근 문을 연 롯데백화점 동탄점은 식당가를 2층으로 옮기고 야외 스트리트 쇼핑몰과 연결했다. 서울 여의도의 ‘더현대 서울’의 경우 6층 식당가를 식당과 디저트 코너, 전시관을 섞어놓은 형태로 구성했다.

지난 2월 문을 연 '더현대 서울' 백화점 모습. 5층에 조성된 녹지 시절 위에 식당가가 있다. 사진 현대백화점

지난 2월 문을 연 '더현대 서울' 백화점 모습. 5층에 조성된 녹지 시절 위에 식당가가 있다. 사진 현대백화점

지난 8월 문을 연 롯데백화점 동탄점 2층의 야외 테라스 모습. 식당가(오른쪽)가 쇼핑몰과 야외로 연결돼 있다. 사진 연합뉴스

지난 8월 문을 연 롯데백화점 동탄점 2층의 야외 테라스 모습. 식당가(오른쪽)가 쇼핑몰과 야외로 연결돼 있다. 사진 연합뉴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식당가는 유행을 따라가는 곳은 아니지만 오랜 기간 고객들에게 맛과 서비스를 인정받은 스테디셀러나 ‘밀탑’처럼 그 백화점을 대표하는 식당 위주로 꾸미려고 한다”며 “지하 푸드코트의 승부처가 새로움과 개성이라면 식당가는 일관된 맛과 서비스”라고 설명했다. 실제 고객으로부터 인정을 받은 경우 롯데백화점의 ‘고구려 삼계탕’ ‘가족회관’ ‘한우리’, 신세계백화점의 ‘호경전’ 등 5~10년 이상 영업을 계속하는 식당들도 많다.

트렌드 분석가인 이정민 트렌드랩 506 대표는 “최근 수년 사이 국내 미식 문화와 역량이 크게 발전하면서 백화점이 ‘파인 다이닝(고급 식당 또는 요리)’을 제공할 필요가 없어졌다”며 “대신 사람들이 일일이 가볼 수 없는 여러 지역의 작은 식당, 빵집, 카페 등을 소개하는 역할이 더욱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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