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때 "시민군에 발포 말라"…안병하 치안감 33년만의 추모제

중앙일보

입력 2021.10.09 06:00

업데이트 2021.10.12 18:44

5·18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의 발포 명령을 거부한 고(故) 안병하(왼쪽) 치안감과 안 치안감이 남긴 비망록. 뉴스1

5·18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의 발포 명령을 거부한 고(故) 안병하(왼쪽) 치안감과 안 치안감이 남긴 비망록. 뉴스1

"전두환 신군부 발포 명령 거부"  

5·18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의 발포 명령을 거부한 고(故) 안병하(1928~1988년) 치안감의 추모제가 33년 만에 처음으로 광주에서 열린다.

8일 안병하 기념사업회(대표 박기수)에 따르면 9일 오후 2시 광주광역시 동구 옛 전남도청 앞 민주광장 5·18민중항쟁 알림탑 앞에서 '안병하 치안감 33주기 추모식'이 진행된다. 10일 고인이 안장된 국립서울현충원 경찰묘역에서도 추모식이 열린다.

9일 오후 1시20분에 시작하는 식전 행사는 민중가수 주하주씨, 테너 국경완 동신대 교수, 팝페라그룹 사과나무 등의 추모가와 이상조 남도 씻김굿 명인과 배선주 한국무용가의 진혼제로 꾸며진다. 분향은 코로나19 방역 지침에 따라 추모식이 끝난 뒤부터 가능하다.

안 치안감의 막내아들 호재씨는 "최근 아버지의 행적이 재조명되며 광주시민의 관심이 높아져 감회가 새롭다"며 "광주에서 처음으로 추모제가 열리는 만큼 안병하 정신이 광주에서 퍼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안 치안감은 어떤 삶을 살았기에 5·18의 '숨은 영웅'으로 불리게 됐을까.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8년 3월 13일 충남 아산 경찰대학에서 고(故) 안병하 치안감의 막내아들 안호재(오른쪽에서 두 번째)씨와 부인 전인순(오른쪽)씨를 만나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8년 3월 13일 충남 아산 경찰대학에서 고(故) 안병하 치안감의 막내아들 안호재(오른쪽에서 두 번째)씨와 부인 전인순(오른쪽)씨를 만나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직무유기·지휘 포기 혐의로 고문당해

안 치안감은 5·18 당시 전남도경찰국장으로 재직하던 중 '시위대에 발포하라'는 전두환 신군부의 명령을 거부한 인물이다. 80년 당시 경찰이 소지했던 무기를 회수한 뒤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음식 등을 제공했다가 그해 5월 직위해제를 당했다. 5·18 이후 '직무유기 및 지휘 포기 혐의'로 보안사령부에 끌려간 뒤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다 88년 10월 숨졌다.

사망 15년 후인 2003년 광주민주유공자로 인정받은 데 이어 2006년 국가유공자가 되면서 신군부에 의해 실추된 명예를 회복했다. 충남 아산의 경찰교육원에는 고인의 뜻을 기리기 위한 '안병하 홀'이 있다. 강원도 양양에서 태어난 고인은 6·25 전쟁에도 참전해 북한군과 맞서 싸웠다고 한다. 육군사관학교 출신인 고인의 경찰 생활은 1962년 장교 특채로 시작했다.

경찰청은 2017년 11월 고인이 생전에 근무한 전남경찰청에 추모 흉상을 건립했다. 또 80년 당시 광주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쓴 뜻을 기려 2018년 3월 10일 경무관에서 치안감으로 1계급 특진을 추서했다.

지난 2018년 3월 15일 당시 이철성 경찰청장이 전남경찰청을 찾아 5·18 당시 신군부의 발포 명령을 거부한 고 안병하 치안감 흉상에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018년 3월 15일 당시 이철성 경찰청장이 전남경찰청을 찾아 5·18 당시 신군부의 발포 명령을 거부한 고 안병하 치안감 흉상에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뒤늦게나마 치안감 추서…기쁘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도 치안감 추서식 소식을 알리며 고인을 추모했다. 문 대통령은 페이스북을 통해 "뒤늦게나마 치안감 추서가 이뤄져 기쁘다"며 "시민들을 적으로 돌린 잔혹한 시절이었지만 안 치안감으로 인해 우리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안 치안감은 88년 국회 청문회를 앞두고 5·18의 발생 원인과 당시 광주의 상황을 자필 메모로 남겼다. 비망록을 간직해오던 유족은 2018년 5월 10일 메모 원본(8장)과 고인의 유품을 광주광역시에 기증했다.

안 치안감의 부인 전임순 여사가 공개한 비망록에 따르면 고인은 '계엄군의 과격한 진압과 악성 유언비어 유포, 김대중 전 대통령 구속에 따른 시민 자극' 등을 5·18 원인으로 지목했다.

고(故) 안병하 치안감의 유가족이 2018년 5월 10일 광주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 기증한 안 치안감의 유품. 사진은 안 치안감이 갖고 있던 80년 당시의 사진과 자료. 뉴스1

고(故) 안병하 치안감의 유가족이 2018년 5월 10일 광주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 기증한 안 치안감의 유품. 사진은 안 치안감이 갖고 있던 80년 당시의 사진과 자료. 뉴스1

"부상자 치료, 식사 제공" 비망록 남겨

고인은 비망록에 '5월 16일까지 시위는 평온했으나 17일 자정 이후 계엄령 확대, 공수부대 투입과 진압 시작, 이에 자극받은 시민들의 무장으로 상황이 악화했다'고 적었다. '5·18은 신군부가 과격한 진압과 유언비어 유포를 통해 시민들을 자극해 발생했다', '5월 22일 옛 전남도청 앞에서 군의 과격한 진압에 항의하던 경찰국 과장이 군인에게 구타당함'이라는 글도 남겼다.

비망록에는 또 5·18 당시 고인이 시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겼음을 알리는 글들도 있었다. 그는 시위에 대응하는 경찰에 '절대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도록(경찰 희생자가 있더라도), 일반 시민 피해 없도록, 주동자 외에는 연행치 말 것(교내에서 연행 금지), 경찰봉 사용 유의(반말, 욕설 엄금)'라고 기록했다.

2017년 11월 전남지방경찰청에서 열린 고(故) 안병하 경무관의 흉상 제막식. [뉴시스]

2017년 11월 전남지방경찰청에서 열린 고(故) 안병하 경무관의 흉상 제막식. [뉴시스]

기념사업회 "유족께 죄송…매년 추모식 열것”

계엄군 진압 후에는 '주동자 검거 등 중지, 군에게 인계받는 부상자 치료, 식사 제공' 등 시민들을 적극 지원할 것을 지시하기도 했다. 아울러 그는 '무경찰 사태에서도 시민군에 의한 강력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으며, 치안도 유지함'이라는 글도 남겼다.

안병하기념사업회 박기수 대표는 “안병하 치안감 사후 33년 만에야 광주에서 추모식을 하게 된 것에 대해 유족께 죄송스러운 마음”이라며 “올해 시작된 추모식이 5·18의 의미와 안병하 치안감을 기리는 행사로 매년 거행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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