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뺨치는 말근육에 애플힙…68살 '대구 오빠'의 아픈 과거[e즐펀한 토크]

중앙일보

입력 2021.10.09 05:00

어떤 날 운동화를 벗어보면 발에 피가 흥건할 때가 있어요. 발톱이 빠지기도 해요. 그래도 아직은 끄떡없어요.

대구지역 최고령 철인 3종 경기 참가자인 이석천(68)씨가 5일 오전 대구 수성구 인근에서 훈련을 마친 뒤 활짝 웃고 있다. 이씨는 오는 17일 남해에서 열리는 한국 철인 3종 경기에 참가한다. 프리랜서 김성태

대구지역 최고령 철인 3종 경기 참가자인 이석천(68)씨가 5일 오전 대구 수성구 인근에서 훈련을 마친 뒤 활짝 웃고 있다. 이씨는 오는 17일 남해에서 열리는 한국 철인 3종 경기에 참가한다. 프리랜서 김성태

지난 5일 오전 8시 대구시 수성구 지산동 한 빌라. 몸에 딱 붙는 반바지 경기복과 티셔츠를 입은 다부진 체격의 남성이 검은색 사이클과 함께 모습을 나타냈다. 지방만 싹 빠진 듯 근육만 남은 팔목엔 스마트 워치가, 운동으로 다져진 구릿빛 종아리엔 '아이언맨'을 형상화한 빨간빛 타투가 보였다.

이석천씨 종아리. 아이언맨을 형상화한 타투가 눈에 띈다. 본인제공

이석천씨 종아리. 아이언맨을 형상화한 타투가 눈에 띈다. 본인제공

얼핏 20대처럼 보이는 체격과는 달리 가까이 다가갈수록 흰머리에 흰 수염이 가득한 어르신이 눈에 들어왔다. 오는 17일 남해에서 열리는 한국 철인 3종 경기 참가를 준비 중인 대구지역 최고령의 현역 철인 이석천(68)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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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남해 철인 경기 참가자 중 아마 제가 나이가 제일 많을 겁니다. 그런데 나이 그건 숫자일 뿐입니다. 당뇨약, 혈압약, 각종 영양제 대신 저는 아직 프로틴 음료나 프로틴 바를 즐길 정도로 힘이 넘치거든요."

70세를 바라보는 나이지만, 이씨의 체력은 현역 철인이라는 말을 실감케 한다. 42.195㎞를 마라톤으로 4시간 이내에 주파한다. 1시간10분 정도면 40㎞ 거리는 사이클로 부담 없이 돌파한다. 수영으로 3.8㎞까지는 1시간40분 안에 완주가 가능하다. 컨디션을 끌어올리고, 조금 빨리 내달린다면 시간이나 거리는 더 단축할 수 있단다.

그가 준비 중인 남해 한국철인 3종 경기는 수영 3.8㎞, 사이클 180.2㎞, 달리기 42.195㎞를 17시간 이내에 완주해야 한다. 이씨의 기록은 대략 15시간 30분. 이 정도면 프로 선수로 불리기 충분한 실력이다.

대구지역 최고령 철인 3종 경기 참가자인 이석천(68)씨가 5일 오전 대구 수성구 인근에서 훈련을 마친 뒤 활짝 웃고 있다. 이씨는 오는 17일 남해에서 열리는 한국 철인 3종 경기에 참가한다. 프리랜서 김성태

대구지역 최고령 철인 3종 경기 참가자인 이석천(68)씨가 5일 오전 대구 수성구 인근에서 훈련을 마친 뒤 활짝 웃고 있다. 이씨는 오는 17일 남해에서 열리는 한국 철인 3종 경기에 참가한다. 프리랜서 김성태

대회를 앞둔 이씨는 맹훈련 중이다. 화요일과 목요일 오전엔 사이클을 80㎞ 이상 탄다. 월요일과 수요일엔 한 바퀴가 2㎞인 대구 수성못을 10바퀴쯤 달린다. 평일 오후엔 집 인근 수영장을 찾아가 25m짜리 레인을 40번쯤 오간다. 금요일과 주말엔 근력운동을 하거나, 바다 수영, 100㎞ 이상 사이클 훈련을 떠난다.

"저의 모든 생활이 철인 훈련에 맞춰져 있다고 보면 됩니다. 바나나를 먹는 등 식단도 최대한 조절하려고 노력합니다." 그에게 공원 등지에서 시간을 보내는 여느 어르신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사실 철인 3종 경기 출전은 경제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돈이 꽤 들기 때문이다. 1000만원 이상 하는 선수용 사이클에, 20만원쯤 하는 마라톤화, 브랜드 수영복 등 값비싼 장비가 필요하다. 프로틴 바 같은 고가의 에너지 보충 음식도 먹어야 한다.

대구에 사는 '젊은오빠' 68살 현역 철인인 이석천씨가 사이클을 타고 있다. 사진 이석천씨

대구에 사는 '젊은오빠' 68살 현역 철인인 이석천씨가 사이클을 타고 있다. 사진 이석천씨

이씨는 “경제력과는 거리가 멀다”고 말한다. 가족 없이 혼자 작은 빌라에 살며, 노령연금으로 생활을 꾸리고 있어서다. "제가 사이클을 직접 조립해서 최대한 선수용 상태로 유지하는 등 모든 것을 아끼고 아껴 운동 비용에 씁니다. 그래서 생활은 넉넉하지 않아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 19) 감염증 사태 이후 조금씩 후원을 해주던 지역 한 의료기관의 후원금도 완전히 끊겨 생활이 더 어려워졌다고 한다.

이씨가 철인 운동을 시작한 배경은 아이러니하게도 '어려움'과 맞닿아 있다. 직접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운동을 시작한 탓이다. 24년 전 이씨는 출판업에 종사하다가 실패했고, 가정도 이때 깨졌다. 우울증, 대인 기피증 등을 앓던 그는 충남 보령에서 열리는 '아이스맨 대회', 즉 겨울 바다 수영대회를 처음 접했다.

해병대 272기, 수영엔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던 그는 "그래 한번 해보자. 다시 한번 일어나보자"라는 생각에 아이스맨 대회에 참가했다.

이렇게 철인 운동과 처음 인연을 맺게 된 그는 지금까지 아이언맨 대회 국제공인 4회, 비공인 3회를 완주했다. 트라이애슬론은 30회 완주, 듀애슬론은 3번 완주했다. 마라톤 풀코스는 두 차례 돌파했다. 대구 철인 클럽 초대 회장을 지낼 만큼 철인 운동에 푹 빠져 살았다.

"훈련하거나 대회에 참가하면서 다리, 허리, 팔 등에 여러 번 상처를 입었어요. 그런데 고통보다는 무언가를 해냈다는 쾌감이 더 커서, 계속 철인으로 사는 것 같아요."

대구지역 최고령 철인 3종 경기 참가자인 이석천(68)씨가 5일 오전 대구 수성구 지산동 자택에서 본지와 인터뷰하며 활짝 웃고 있다. 이씨는 오는 17일 남해에서 열리는 한국 철인 3종 경기에 참가한다. 프리랜서 김성태

대구지역 최고령 철인 3종 경기 참가자인 이석천(68)씨가 5일 오전 대구 수성구 지산동 자택에서 본지와 인터뷰하며 활짝 웃고 있다. 이씨는 오는 17일 남해에서 열리는 한국 철인 3종 경기에 참가한다. 프리랜서 김성태

철인 3종 경기는 몇 가지 종목으로 구분돼 있다. 아이언맨 대회는 수영 3.8㎞, 사이클 180.2㎞, 달리기 42.195㎞를 17시간 이내에 완주해야 하는 풀코스 철인 경기다. 올림픽 코스인 트라이애슬론은 수영 1.5㎞, 사이클 40㎞, 달리기 10㎞를 3시간30분 이내에 완주해야 한다.

아이언맨 대회의 절반인 하프 대회도 있다. 수영 1.9㎞, 사이클 90.1㎞, 달리기 21.1㎞를 8시간30분 이내에 완주해야 한다. 보통 풀코스 출전을 앞둔 예비 철인들이 참가해 기량을 점검한다. 듀애슬론이라는 경기도 있다. 트라이애슬론에서 수영만 빠진 경기로 보면 된다. 달리기 5㎞, 사이클 40㎞, 다시 달리기 10㎞이다.

이씨는 10여 년 전 택시를 몰았다. 조금 수익이 생기면서는 어려운 이웃을 돌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노인 목욕 봉사, 짜장면 배식 봉사, 보육원 아이 챙기기를 했다. 사후시신· 장기기증 서약도 한 상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감염증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 목욕 봉사 등을 계속 해왔어요. 이제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다시 봉사할 겁니다."

그에겐 작은 꿈이 있다고 했다. 대한민국 '노익장(老益壯)'을 해외 대회에 나가 보여주는 꿈이다.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해외 대회에 지금껏 한 번도 나가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몇 년이나 철인을 더 할 수 있겠습니까. 제 가슴에 대한민국 태극기를 딱 붙이고, 한국의 노익장을 국제 대회에서 꼭 보여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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