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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 보이콧이라더니…오징어게임에 딱 걸린 中한한령 궤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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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딱지치기', '달고나 만들기' 등 한국 문화가 작품 곳곳에 녹아 있는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라 중국에선 정식으로 시청할 수가 없는데도 어둠의 경로를 통해 빠르게 퍼지고 있다. 이같은 오징어 게임 열풍은 5년째 이어지는 중국 당국의 '한류 때리기'가 민간 차원의 자발적 보이콧이 아니었다는 걸 증명하고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에서 주인공을 맡은 배우 이정재가 달고나를 핥아 녹이는 장면. 넷플릭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에서 주인공을 맡은 배우 이정재가 달고나를 핥아 녹이는 장면. 넷플릭스.

한한령에 막혀도 숨어 보는 오징어 게임

중국에서는 지난 2016년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ㆍ사드) 체계 배치 이후 시작된 '한한령'(限韓令ㆍ한류 금지)으로 한국 콘텐트의 정식 유통이 사실상 금지됐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관여하는 법적 조치는 아니지만 일종의 분위기다.

방송국이나 영상 플랫폼에서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틀 수 없고, 중국 기업이 한국인 광고 모델을 쓰는 것도 부담스러워졌다. 건별로 중국 당국이 허가를 내주는 경우도 있지만, 여전히 제한적이다.

외교부는 지난해 11월과 지난달 왕이(王毅)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의 방한 등 계기마다 "문화 콘텐트 분야의 원활한 교류와 협력 활성화를 위한 중국 측의 적극적인 협조"를 당부하며 사실상 한한령 해제를 요구했지만 뚜렷한 답을 듣진 못했다.
특히 한한령에 대해 중국 당국은 "정부가 주도한 적 없는 민간 차원의 자발적인 불매 운동일 뿐"이라는 취지로 선을 긋는다. 애초에 정부가 지시한 게 아니니, 정부가 해제할 수도 없다는 '나몰라라'식 태도도 감지된다.

오히려 최근 들어 중국은 '제2의 한한령'이라는 우려를 낳는 '칭랑(淸朗ㆍ연예계 정화운동)'까지 전개하고 있다. 일종의 온라인 팬덤 규제 작업으로, 중국은 특정 국가를 겨냥한 게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방탄소년단(BTS)과 아이유 등 한류 스타의 팬클럽 계정이 지난 9월 중국 최대 소셜미디어 웨이보에서 정지됐다. 결국 한류를 경계하는 것이라는 걱정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한한령에서 시작해 칭랑까지, 무려 5년째 계속되는 중국의 한류 때리기에도 오징어 게임을 비롯한 한류 콘텐트에 대한 중국 내 수요는 끊이지 않고 있다. 이 자체가 "한국의 사드 배치에 배신감을 느낀 중국 인민들이 자발적으로 거부감을 보이는 것"이라며 '사드 보복'의 존재 자체를 부인해온 중국 정부의 논리를 반박하는 현상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세트장. 넷플릭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세트장. 넷플릭스

'불펌' 방관하는 中..특수 노려 돈벌이도

문제는 중국 당국이 한류를 몰아내려 할수록 음지에서 불법 유통이 성행한다는 점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한국 콘텐트 제작자에게 돌아온다.

장하성 주중국 한국 대사는 지난 6일 화상으로 진행된 국회 외통위 국정감사에서 "오징어 게임이 중국의 60개 사이트에서 불법 유통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중국 내 최대 불법 영상사이트 한 곳에서는 '오징어 게임'이 검색어 1위로 활발히 불법 유통되고 있다고 같은 날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이 밝혔다. 해당 사이트에는 오징어게임 이외에도 '원더우먼', '갯마을 차차차', '슬기로운 의사생활' 등 한국 드라마가 검색어 상위권을 차지하며 버젓이 유통되고 있었다.

중국 내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에서도 오징어 게임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한국에선 대부분 시청자가 넷플릭스 월정액 구독료를 내고 오징어 게임을 보는데, 중국에선 '공짜 시청'이 불법으로 성행하는 셈이다.

게다가 중국의 '오징어 게임 사랑'은 불법 시청에서 그치지 않았다. 중국 내 공장이 오징어 게임 특수를 맞아 전력을 다해 굿즈(기획 상품)를 판매하고 있다.

홍콩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6일 "히트 드라마(오징어 게임)으로 돈을 벌려는 중국 공장들이 국내ㆍ해외 소비자들을 상대로 관련 상품을 대량 생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재주는 한국이 넘고 돈은 중국이 번다는 불만이 한국 내에서 나오는 이유다.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6일 공개한 중국 내 불법 영상 유통 사이트를 접속ㆍ분석한 결과. 김승수 의원실.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6일 공개한 중국 내 불법 영상 유통 사이트를 접속ㆍ분석한 결과. 김승수 의원실.

'中 불법 유통 논란' 매년 반복…대응은?

사실 중국 내 한국 콘텐트 불법 유통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해 9월만 해도 중국판 유튜브로 불리는 동영상 플랫폼에 KBS 2TV의 '나훈아 콘서트' 영상이 통째로 올라와 논란이 됐다.
유정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최근 한국저작권보호원으로부터 제출받아 지난 2일 공개한 최근 5년간 국산 IP(지식재산권) 콘텐트 불법 유통 적발 건수 현황에 따르면 전체 적발 건수 41만여건 중 중국이 8만 5000여건으로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현재 중국 내 한류 콘텐트 불법 유통 및 지적 재산권 침해에 대한 대응은 고위급 외교당국 간이 아니라 대부분 현장이나 실무선에서 '각개전투'로 맞서기 위해 애쓰는 데 그치는 게 현실이다. 주로 현지 공관이나 한국저작권 중국사무소가 불법 유통 플랫폼에 직접 항의하거나, 중국 국가판권국과 공안 등에 문제를 제기하는 식이다.
보다 고위급 대응의 필요성도 꾸준히 제기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중국을 찾아 한ㆍ중 정상회담이 이뤄졌던 지난 2017년과 2019년에도 한한령 해제나 한류 불법 유통 문제 등에 대한 개선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6일 공개한 중국 내 애플리케이션를 접속ㆍ분석한 결과. 한국 드라마 다수가 불법으로 유통돼 시청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승수 의원실.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6일 공개한 중국 내 애플리케이션를 접속ㆍ분석한 결과. 한국 드라마 다수가 불법으로 유통돼 시청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승수 의원실.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7일 중국 내 오징어 게임 불법유통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외교부는 재외공관, 관계부처 및 유관기관, 현지 당국과 협업해 우리 기업의 저작권 침해정보 모니터링, 침해사례 접수, 침해대응지원 활동 등을 수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교부는 중국 내에서 주중 대사관과 상하이 총영사관 등 6개 공관을 지식재산권 보호 중점 공관으로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장관급 등 고위급 회담에서, 현지에서는 (주중) 대사를 중심으로 한ㆍ중 간 건전한 문화콘텐트 교류에 대해 지속해서 의견 개진이 이뤄지고 있다"며 "중국은 기본적으로 (한국 측 의견에) 공감하며, 나름대로 노력을 하고 있다고 답한다"고 말했다.

다만 오징어 게임의 경우에는 대응이 더 복잡하다. 판권이 넷플릭스에 있기 때문이다.

장성환 한국저작권 중국사무소장은 7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넷플릭스가 (오징어 게임 관련) 모든 권리를 갖고 있어 한국 측이 직접 중국 당국에 항의하기가 쉽지 않아 안타깝다"며 "특히 중국 내 불법 스트리밍ㆍ다운로드 사이트는 운영자의 정보를 찾기 어렵고 서버가 해외에 있는 경우가 많아 처벌이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현재 한국저작권 중국사무소는 넷플릭스가 소속된 미국영화협회(MPA) 베이징대표처를 통해 오징어 게임 관련 권리관계에 대한 넷플릭스 측의 답변을 요청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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