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만 먹고 큰 한우 고기, 50일 건조숙성 ‘맛있는 실험’

중앙선데이

입력 2021.10.09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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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7호 24면

맛따라기 

유인신 서동한우 대표(왼쪽)가 조영현 풀로만목장 대표에게 건조숙성실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이택희]

유인신 서동한우 대표(왼쪽)가 조영현 풀로만목장 대표에게 건조숙성실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이택희]

‘소고집’ 두 남자가 맛있는 실험을 시작했다. 성공하면 한국 소고기 음식문화에 신경지를 여는 계기가 될 것이다. 소고집은 고집이 센 사람을 일컫는다. 여기서는 소에 관한 소신을 고집스럽게 펼쳐 남다른 영역을 구축한 사람이라는 뜻을 더 얹었다.

살살 녹는 고기가 고급이라는 등식 거부

전남 장흥 ‘풀로만목장’ 조영현(67) 대표와 충남 부여 ‘서동한우’ 유인신(60) 대표의 협업에 중매쟁이가 돼 그 과정을 관찰했다. 풀로만목장 소고기를 서동한우 방식으로 건조숙성(Dry Aging)하는 작업이다. 풀로만목장은 2011년부터 한우를 어미 뱃속에 있을 때부터 전 생애에 걸쳐 풀만 먹여 키우는 국내 유일의 목장이다. 서동한우는 2009년 건조숙성 원리를 주인 홀로 터득해 2015년 국내 최초로 ‘소고기 건조숙성 방법’ 특허(제10-1522100호)를 받은 한국형 건조숙성육의 원점이다. 두 사람이 지난 8월 12일 점심시간에 서동한우의 고기 가공회사인 ㈜SD푸드 본사(부여군 규암면) 식당에서 만났다.

건조숙성 중인 풀로만목장 소고기(왼쪽)와 일반 소고기. [사진 이택희]

건조숙성 중인 풀로만목장 소고기(왼쪽)와 일반 소고기. [사진 이택희]

조영현 대표=“관행사육 소고기는 맛이 싱겁고 느끼한데 숙성해도 해결에 한계가 있다. 풀로만목장 고기를 숙성하면 어떤 맛과 질감이 나올지 궁금하다.”

유인신 대표=“맛과 향, 질감을 개선하는 건 자신 있지만, 판매는 자신 없다. 가격 가늠이 안 된다. 30년 넘게 고기로 안 해 본 게 없다. 육회로 젓갈도 담가 봤다.”

조 대표=“11년째 소를 키우는데, 8년 전 고기 직판을 시작할 때 모두가 비싸서 안 팔릴 거라 했지만 아직 안 망하고 있다. 고기의 오메가3와 오메가6 성분 비율이 아프리카 야생소 1 대 1, 미국 그래스페드(풀만 먹고 큰 소) 권장기준은 1 대 4, 한국 관행사육 소는 대략 1 대 100이다. 우리 고기는 1 대 2.5다. 그걸 알아주는 소비자가 있다. 1㎏에 30만원이라도 팔 자신이 있다.”

유 대표=“그러면 기본 비용만 받고 해드리겠다.”

두 사람은 풀로만목장 암소 한 마리를 9월 초 도축해 서동한우 숙성실에 고기를 입고하기로 했다. 등심·채끝·안심·갈비 네 부위는 50일 건조숙성해 10월 22일부터 판매하고, 나머지는 500g 단위로 진공포장해 33일간 습식숙성(Wet Ageing)을 거쳐 지난 5일부터 판매하고 있다. 전량 소비자와 직거래. 조 대표 SNS를 통해 예약 받고 배송한다.

합의에 따라 풀로만목장에서 지난달 1일 ‘민들레’라는 이름의 65개월령 암소 한 마리를 서동한우 직영목장으로 옮겼다. 풀로만목장에서 태어나 풀만 먹고 자라 새끼 세 마리를 낳은 경산우다. 다음날 소를 논산 도축장에 보내고, 그 다음날 지육이 서동한우에 도착해 정형을 거쳐 부위별로 온도 1~4도, 습도 60~80%가 유지되는 항온항습 숙성고로 들어갔다. 생체 604㎏의 소를 도축해 도체 362㎏, 내장 등 기타 130㎏이 나왔다. 등급은 육질(근내 지방도) 1+, 육량 B를 받았다.

건조숙성한 두 가지 소고기 등심을 한 토막씩 잘랐다. 풀만 먹고 큰 소의 고기는 지방층이 누런 색이다. [사진 이택희]

건조숙성한 두 가지 소고기 등심을 한 토막씩 잘랐다. 풀만 먹고 큰 소의 고기는 지방층이 누런 색이다. [사진 이택희]

도축 후 23일이 지난 9월 25일, 세 남자가 서동한우에 다시 모여 건조숙성 중인 소고기를 살펴보고 뼈등심 한 덩이를 잘라 숯불에 직화로 구워 시식했다.

유 대표는 “23일 짧은 기간에 비해 숙성이 많이 진행됐다”고 평가한 뒤 “풀로만목장 고기는 육질이 단단하고 질긴데, 관행육을 50~60일 숙성한 만큼 부드러워졌다”며 놀라워했다. 1+ 등급이라 기름기가 제법 있을 텐데 느끼하지 않고 맛이 깔끔했다. 살살 녹는 기름맛 대신 고깃결의 경쾌한 탄성이 살아 있고, 씹을수록 구수하며 감칠맛이 우러나는 근육질의 본성이 느껴졌다. 조 대표는 “우리 소는 곡물사료를 안 먹이기 때문에 옥수수에서 유래한 관행육 지방과 달리 느끼하지 않다”면서 “관행육은 2등급 고기라도 느끼한데, 옥수수기름에 많은 오메가6 때문”이라고 말했다.

고기 숙성의 효과를 ▶연도(軟度) 개선 ▶풍미(風味) 증가 ▶감칠맛 강화라고 두 사람이 동의한 가운데 유 대표는 “이번 풀로만목장 고기는 풍미 증가 부분은 좀 미흡하다”며 “도체에서 수분이 증발함에 따라 미각 요소가 농축되고 효소의 작용으로 단백질과 지방 구조에 변화가 생기면서 맛이 좋아지고 치즈처럼 복합적인 향이 생기는 게 숙성의 원리”라고 설명했다.

두 사람은 삶과 생각에 공통점이 있다. 첫째, 30년 넘게 소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둘째, 한우 번식우 120~130마리를 직접 키운다. 셋째, 키운 소를 도축-가공해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한다. 넷째, ‘살살 녹는 고기=고급 소고기’라는 등식을 거부한다.

숙성육 딱딱한 겉면 육포로 가공도 시도

23일 건조숙성한 풀로만목장 소고기 뼈등심. [사진 이택희]

23일 건조숙성한 풀로만목장 소고기 뼈등심. [사진 이택희]

유 대표는 집안 반대를 무릅쓰고 농고 축산과에 진학해 대학도 축산과를 나왔다. 인공수정사를 하다가 1993년부터 소를 키우고, 97년부터는 어머니가 77년부터 하던 식당을 흡수통합해 소고기 전문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다. 전체 업력이 44년이다. 서동한우는 지금 숙성 한우구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전국구 순례지가 됐다.

식당에 쓸 고기를 가공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건조숙성 기술을 완성하느라 고기를 1억원어치는 버렸을 거라고 한다. 기술의 핵심은 항온항습 숙성실에서 소고기를 50~120일간 공기에 노출해 수분을 증발시키면서 효소의 작용을 기다리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수분이 빠지면서 단백질이 응축돼 맛은 더 진해지고, 도체 표면이 마르면서 막을 형성해 육즙은 풍부해지며, 조직이 이완돼 육질은 부드러워진다.

축사 열 배 넓이 운동장에서 뛰노는 풀로만목장 소들. [사진 이택희]

축사 열 배 넓이 운동장에서 뛰노는 풀로만목장 소들. [사진 이택희]

그가 숙성에 매달리는 이유는 시장에서 밀려난 고기를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숙성은 2등급 한우를 주로 쓴다. 구이로 먹지 않는 부위를 구워 먹는 실험도 계속한다. 양지를 자르는 방향을 달리해 구우니 질기지 않았다. 며칠 전에는 건조숙성한 고기의 딱딱한 표면을 깎아낸 자투리로 육포를 만들어 맛보라며 가지고 왔다. 거의 버려지던 고기를 명품으로 되살리는 실험이다. 김필화(60) 경희사이버대 외식조리경영학과 교수에게 제품 개발을 의뢰했다. 장기 숙성을 거치고, 육포로는 쓰지 않는 등심·채끝·갈비 부위로 만든 두툼한 육포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 줬다.

조 대표는 목초 전문가다. 미국 목초 수출회사 한국 법인장까지 지냈다. 목초를 수입해 팔면서 소 키우는 사람들에게 소는 초식동물이니까 곡물사료가 아니라 풀을 먹여 키워야 한다고 아무리 설득해도 듣지 않았다. 그래서 100% 풀만 먹여 소를 직접 키워보겠다고 나섰고, 그 뚝심으로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한국형 한우사육 모델’을 고안했다. 좋은 목초를 배불리 먹이고 축사 10배 면적의 운동장에서 나가 마음껏 뛰어놀게 하며 24시간 요들과 알프혼 음악을 들려준다. 부부가 스위스 음악 애호가이기 때문이다. 매월 한 차례 도축한 고기는 가공해서 SNS를 활용해 생산자가 정한 가격에 소비자에게 직판한다. 이 시장도 스스로 개척했다.

‘가치에 가치를 더한다’는 깃발 아래 진행하는 두 ‘소고집’의 협업이 어떤 맛과 향의 꽃을 피울지 ‘직관’하는 사람으로서 가슴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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