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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 트립’서 맺은 소중한 인연, 여행의 즐거움 두 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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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7호 22면

POLITE SOCIETY 

아일랜드 국도와 도로변 레스토랑. [사진 박진배]

아일랜드 국도와 도로변 레스토랑. [사진 박진배]

헤밍웨이나 피츠제럴드가 파리에서 글을 쓰면서 낭만을 즐길 때 사정이 여의치 못했던 스타인벡은 1960년 자신의 반려견 찰리를 데리고 미국 로드 트립(Road Trip)에 나선다. “나의 나라를 너무 모르고 있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이 여행의 기록은 2년 후 『찰리와의 여행(Travels with Charley)』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됐다. 당시 스타인벡은 “우리가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고 환경을 너무 훼손하고 있다”고 기록했다.

자동차나 모터사이클을 타고 비교적 장거리를 여행하는 로드 트립이 코로나 기간에 미국과 유럽에서 20%가량 증가했다. 많은 여행자가 외국 입국제한과 항공여행의 번거로움을 피해 차를 선택, 여유 있게 자연을 즐기고 역사와 문화를 탐방하는 대안을 찾은 것이다. 로드 트립은 본격적으로 자동차의 시대가 열렸던 1960년대부터 유행했다. 당시의 모습은 차에 필요한 용품을 가득 싣고 종이지도를 펴면서 다니는 것. 음악은 라디오로, 나중엔 카세트테이프로 들었다. 자동차에 재떨이와 담배점화장치는 필수였고, 안전벨트는 없던 시기였다. 내비게이션은 20세기 말까지 존재하지 않았다.

종이지도 대신 스마트폰이 길 안내

미국 인디애나주 리버티의 식당. 작은 마을이면 어김없이 있는 동네사랑방 같은 카페나 식당. [사진 박진배]

미국 인디애나주 리버티의 식당. 작은 마을이면 어김없이 있는 동네사랑방 같은 카페나 식당. [사진 박진배]

얼핏 구세대의 문화처럼 보이는 로드 트립이 요즈음 MZ세대에서 부활하고 있다. 우선 다양한 정보와 동기부여가 생겨서 그렇다. 뉴욕타임스에 의하면 과거에 비해서 주변 사람이 다녀온 여행에 대한 부러움과 질투가 4배가량 증가했다고 한다. 소셜미디어의 영향이다. 다른 원인으로는 빈티지, 레트로의 감성을 그리워하는 경향이다. 과거의 문화로 여겼던 로드 트립을 따라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신세대의 모습은 구세대와는 사뭇 다르다. 스마트폰과 충전기를 챙기고, 짐은 최소한으로 싸서 깔끔하게 떠난다.

로드 트립은 떠나고 싶을 때 떠나고, 쉬고 싶을 때 쉬고, 그때그때 행선지를 바꿀 수 있는 자유를 제공한다. 목적지를 향해 서둘러 가지 않으므로 급할 필요도 없다. 가지고 다니고 싶은 만큼의 짐을 차에 실으면 되고, 비용도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길이 끊기면서 카페리로 강을 건너야 하는 상황과 같은 비예측성도 재미를 증가시킨다. 우리 인생과 흡사하다.

로드 트립을 떠올리거나 검색해 보면 보통 미국이 많이 등장한다. 아무래도 장거리 여행이다 보니 땅덩어리가 큰 나라가 연상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미국에서 해 보고 싶은 일 중 하나로 로드 트립을 손에 꼽고, 또 그걸 위해서 미국을 찾기도 한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땅의 큰 스케일을 경험하면서 호연지기를 기르는 경험은 각별하다. 하지만 사실 로드 트립은 어디서나 가능하다. 웬만한 나라들도 시골길을 구석구석을 다니기에는 충분히 크다. 아기자기하고 예쁜 길들은 도처에 수두룩하다.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식당. 작은 식당의 웨이트리스라도 최소한 그 동네와 주변의 역사를 줄줄이 꿰고 있는 경우가 많다. [사진 박진배]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식당. 작은 식당의 웨이트리스라도 최소한 그 동네와 주변의 역사를 줄줄이 꿰고 있는 경우가 많다. [사진 박진배]

길을 여행하는 것은 길 자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길을 따라 놓인 주변을 보는 것이다. 긴 여정에서는 다양한 풍경을 접하게 된다. 숲속 길이건 해안도로건 자연을 감상하는 건 기본이다. 간혹 고흐의 ‘까마귀 나는 밀밭’과 같은 배경을 연상시키는 장소도 등장한다. 자연경관 이외에도 정기적으로 들려야 하는 주유소의 다양한 디자인, 길거리에 놓인 우체통 모양들도 흥미롭다. 커버드 브리지를 운전해서 통과하는 순간은 마치 어느 놀이기구를 탄 것 같은 신나는 기분도 느낀다. 작은 마을이면 어김없이 있는 동네사랑방 같은 카페나 식당, 수십 년 동안 똑같은 사진의 우편엽서를 파는 기념품가게도 정겹다. 도로상에서 마땅히 먹을 장소를 찾는 일이 쉽지 않아 간식거리를 챙겨 다니던 과거와 달리 요즈음은 어느 대륙, 어느 나라를 가도 맛집 정보가 넘친다. 하지만 길 위에서 셰프의 레스토랑이나 유행하는 음식의 트렌드를 기대할 필요는 없다. 그저 샌드위치나 와플, 소시지 한 조각이면 충분하다.

스페인의 국도. [사진 박진배]

스페인의 국도. [사진 박진배]

우리는 인생에서 한두 번쯤 로드 트립을 하게 된다. 하지만 택하는 길과 경험은 모두 다르다. 일반적으로는 목적 없이 순간을 즐기는 것이 로드 트립이지만, 간혹 특별한 이유로 어딘가를 향하는 일도 생긴다. 장거리 이사도 있고, 장례식이나 동창회, 또는 누구를 꼭 만나기 위해서 먼 길을 떠나는 경우도 있다. 로드 트립의 명화로 알려진 작품들은 이런 사연과 스토리들을 담고 있다. ‘레인맨’은 유산 상속을 목적으로 자폐증 형과의 일주일간 동행을,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는 시카고대학을 졸업하는 두 남녀가 뉴욕까지 이주하는 과정을 소재로 한다. 결혼 전 친구와의 주말여행에서 피노 누아 품종만을 찾아서 캘리포니아 와이너리들을 방문하는 ‘사이드웨이’도 무척 상쾌한 영화다. 모두 낭만적인 로드 트립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영화 ‘델마와 루이스’나 ‘그린 북’에서 비추어지듯이 미국의 경우 여성이나 유색인종, 동성애자는 종종 편견과 차별을 경험하며, 좀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모험과 긴장이 동반된다.

로드 트립에는 언제나 마주침이 존재한다. 그래서 나름의 에티켓이 중요하다. 운전예절은 기본이고 길에서 만나는 다른 여행자, 지역의 사람들에게도 예의와 친절함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집을 떠나면 아무래도 신세를 지게 돼 있다. 차가 고장 나서 도움을 받거나 길을 물어보는 것은 기본이고, 날씨나 지역에 관한 정보도 얻게 된다. 신기한 것은 아무리 여행가이드 책을 읽고 인터넷으로 자료를 찾아봐도 현지인이 이야기하는 내용은 별로 소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박제돼서 인쇄된 정보가 아니라, 한 명의 살아 있는 인격체로서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나누어 주기 때문일 것이다.

다양한 스토리 담은 로드 트립 영화

포드의 올드 카 쇼(Old Car Show). 로드 트립은 1960년대부터 유행했다. [사진 박진배]

포드의 올드 카 쇼(Old Car Show). 로드 트립은 1960년대부터 유행했다. [사진 박진배]

길에서 만나는 현지인들은 한편으로 우리를 가르쳐 주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사진을 찍거나 흥미를 보이고, 지역에 관련된 이야기나 풍습을 물어본다면 그들은 기쁘게 도와줄 것이다. 허접한 식당의 웨이트리스들도 최소한 그 동네와 주변 역사에 대해서는 줄줄이 꿰고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미국의 역사도로인 ‘66번(Route 66)’을 여행한다면 이런 강의를 들을 기대와 준비를 하는 게 좋다. 도로 선상의 상점이나 식당, 주유소 주인들은 자신들을 그 역사의 일부로 여긴다. 간혹 예전에 유명 인사가 들렸었을 때의 일화도 자랑스럽게 늘어놓는다. 여행자들은 자연스럽게 그들의 학생이 된다. 그들에게 예의를 갖추고 공손하게 대한다면, 그들은 우리의 여정을 응원해 줄 것이다.

스탠퍼드대학에는 역사학과 교수인 앨리슨 홉스가 개설한 ‘미국 로드 트립’이라는 강좌가 있다. 실제로 로드 트립은 우리가 떠올리는 이미지 이상이다. 뭔가를 간직한 여행패턴이자 경향 그리고 사회적, 문화적으로 구축된 관습이다. 길을 떠나서 배우게 되는 것은 ‘나의 것이 아닌 것에 대한 존중’이다. 그러면서 땅과 사람들의 역사, 환경에 대한 이해와 존경심도 배우게 된다.

로드 트립은 여정 자체가 목적이다. 그래서 그 과정이 중요하다. 그것도 우리 인생과 많이 닮았다. 로드 트립은 꿈을 꾸는 것이다. 보지 못한 자연경관과 가 보지 못했던 땅 그리고 그 속에 있는 자신을 상상해 보는 것이다. 현대의 일상과 과거의 흔적이 교차하는 많은 장소가 있다. 어느 장소에 가서 바람을 느끼는 순간, 그곳에 오래된 시간의 질(質)이 존재함을 인지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신세를 지게 될 방문객을 언제든지 도와줄 마음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차의 시동을 켜고 떠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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