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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여성 화가, 그들이 걸었던 길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57호 21면

완전한 이름

완전한 이름

완전한 이름
권근영 지음
아트북스

술 취해 볼이 발그레한 커플의 즐거운 한때를 포착한 초상. 1893년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대가 프란스 할스의 명작으로 알려진 작품을 소장하게 된 루브르박물관은 그림 속 낯선 서명을 발견한다. JL, 그리고 별. 서명의 주인 유딧 레이스터르라는 여성화가. 루브르는 손해를 물어내라며 딜러를 고소했다. 사후 200년이 지나서야 거장이 간신히 존재를 드러냈건만, 돌아온 건 문전박대였다.

당대에 인정받지 못한 비운의 천재 예술가 이야기는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법. 저자는 이름 지워졌거나 잘못된 이름으로 불리곤 했던 여성 예술가 14인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주인공 자리에 세웠다. 인상파 화가였지만 화가의 모델로만 기록된 베르트 모리조, 최초의 추상화가였지만 이름 대신 ‘먼저 온 미래’로 불린 힐마 아프 클린트, ‘버지니아 울프의 화가 언니’로 알려졌던 버네사 벨….

‘이제라도 이들을 알아봐 주자’라는 마음으로 책을 펼쳤는데, 읽다 보면 오히려 그들로부터 위로를 받는다. 그저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서 꿋꿋이 버티며 그려낸 그들의 그림이 건네는 위로다. 소매를 걷어붙인 채 작업에 몰두한 모습을 담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자화상은 어찌나 강렬하던지. “저는 뭔가가 될 거거든요. 목표를 향한 이런 흔들림 없는 돌진은 인생에서 가장 멋진 거예요.” 최초의 누드 자화상을 그린 여성화가 파울라 모더존베커가 남긴 이 편지 구절은 또 얼마나 멋지던지.

이 책이 더 특별한 건 노은님·박영숙·정직성 작가의 생생한 인터뷰를 함께 담았기 때문이다. “사실 서너번 죽지 않으면 그림은 없다”는 노은님 작가의 말에 마음을 다잡고, 경쾌한 추상화는 “육아 살림하느라 손목을 휘둘러서 그린 것”이라는 정직성 작가 이야기에 공감한다.

거리두기가 일상화한 전염의 시대. 저자 말대로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는 여성화가들의 메시지가 우리를 다독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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