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현대의 어울림, 격조 있는 삶의 풍경이 되다

중앙선데이

입력 2021.10.09 00:02

업데이트 2021.10.09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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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7호 18면

아름지기 설립 20주년 특별전 ‘홈, 커밍’ 

‘가가례: 집집마다 다른 제례의 풍경’(2018)전에서 제안됐던 현대의 제사상. [사진 아름지기]

‘가가례: 집집마다 다른 제례의 풍경’(2018)전에서 제안됐던 현대의 제사상. [사진 아름지기]

양반가의 안방과 사랑방에 놓였던 보료는 소파 쿠션과 침대 매트로 다시 태어났다. 소박하고 정갈한 멋의 개다리소반은 소파 옆에서 사이드테이블을 대신한다. 제례 음식을 담을 수 있는 식기들은 작은 ‘007 가방’에 담겼다. 신라시대 토우의 바지 주름을 똑 닮은 라(羅·견직물의 일종) 바지는 화려한 파티 룩으로 손색이 없다. ‘잊혀 가는 전통문화의 창조적 계승’을 목표로 의·식·주 생활 문화의 현대화를 연구해온 재단법인 ‘아름지기’가 제안하는 절제미·자연미·격조미가 있는 삶의 풍경들이다.

2001년 시골 작은 마을의 오래된 정자나무 주변 정리를 첫 사업으로 시작한 아름지기가 설립 20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궁궐 전각에 쌓인 먼지를 청소하고, 서울 5대 궁궐 및 종묘 안내판을 정비하고, ‘덕수궁 함녕전 내부 집기 재현’ ‘창덕궁 연경당 내부 수리사업’ 프로젝트를 벌이는 등 아름지기의 행보는 조용하지만 끈기 있게 쉼 없이 진행돼 왔다.

신연균 이사장  “전통 문화 지속성 고민”

1층 전시장 ‘환대의 공간’. 마치 손님맞이를 앞둔 집안 풍경인 듯 구성됐다. [사진 아름지기]

1층 전시장 ‘환대의 공간’. 마치 손님맞이를 앞둔 집안 풍경인 듯 구성됐다. [사진 아름지기]

특히 2004년 ‘전통의 맥, 생활 속의 아름다움을 찾아서-쓰개’를 시작으로 지난해 ‘바닥, 디디어 오르다’까지, 매년 한 차례씩 의·식·주 중 한 가지 테마로 개최했던 총 18회의 기획전은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우선 현대식 건물인 사옥 내부에 한옥을 들여 과거와 현재를 마주 보게 한 실험적인 공간구성부터 새로웠다. 전통문화와 현대인의 일상이 씨실과 날실처럼 자연스레 스며들도록 각 분야의 디자이너들과 협업한 다양한 쓰임새의 작품들은 공개될 때마다 큰 반향을 일으켰다. 장인 정신을 가진 인재 양성을 위해 별도로 설립한 전통문화연구소 ‘온지음’의 옷공방·맛공방·집공방 역시 이 기획전들을 통해 혁혁한 연구 성과들을 쌓았다.

8일부터 12월 5일까지(오전 10시~오후 5시) 서울 통의동 사옥과 안국동 한옥에서 열리는 아름지기 20주년 기념 특별 기획전 ‘홈, 커밍’은 지금까지 열렸던 기획전을 집대성한 전시다. 온지음 연구원들을 비롯해 권대섭·김현종·박종선·임선옥·진태옥·하지훈 등 다수의 현대 작가들의 작품 중 200~25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무엇보다 의미 있는 것은 매년 각각 제안돼온 의·식·주 문화가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인 전시라는 점이다. 신연균 아름지기 이사장은 “지난 20년이 전통문화를 이해하고, 전통문화에 대한 확신을 갖기 위한 확인 과정이었다면 앞으로의 20년은 이것을 어떻게 지속 가능성 있게 가져갈 것인가, 또 어떻게 많은 사람에게 확산시킬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시간들”이라고 말했다.

온지음 옷공방이 재현한 영조대왕의 옥색 도포. [사진 아름지기]

온지음 옷공방이 재현한 영조대왕의 옥색 도포. [사진 아름지기]

문 속의 문을 지나 가장 처음 만나는 1층 전시장은 ‘환대의 공간’이다. 마치 손님맞이를 앞둔 집안 풍경을 보는 듯 구성됐다. 19세기 치마저고리 차림의 여성 마네킹과 조선시대 복식을 차려입은 남성 마네킹이 집주인인 듯 관람객을 맞고, 중앙에는 찻상·주안상·도시락 등이 차려졌다. 영조대왕의 의복을 재현한 옥색 도포와 어막차(왕이 잠시 머물도록 만든 간이 시설)는 밖으로는 소박하고 안으로는 화려한 ‘외빈내화(外貧內華)’의 정수를 보여준다.

고구려 벽화 속 격자무늬를 재현한 남성용 바지와 저고리. [사진 아름지기]

고구려 벽화 속 격자무늬를 재현한 남성용 바지와 저고리. [사진 아름지기]

현대건축과 전통한옥이 마주한 2층 공간에선 태어나고 죽고 먹고 입고 즐기기 위한 ‘활기의 순간’들이 펼쳐진다. 전통 제례 상차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던 ‘가가례: 집집마다 다른 제례의 풍경’(2018)전의 제사상, ‘고고백서: 우리의 바지, 이천 년 역사를 넘어’(2019) 전에 출품됐던 다양한 양식의 복식이 주요 전시품이다. 1인용 해가리개(그늘막)와 옹기항아리·술잔·자리 등으로 꾸며진 풍경은 자연에서 풍류를 즐기던 옛 정취를 느끼게 한다. 하지훈의 아크릴 소반, 김선태의 한 줄 김밥통, 심현석의 은 주전자 등 전통공예품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디자인 소품들 역시 눈길을 뗄 수 없게 한다.

이건민 작가가 2018년 제작한 ‘노마드 제사상’. [사진 아름지기]

이건민 작가가 2018년 제작한 ‘노마드 제사상’. [사진 아름지기]

3층 전시 공간 ‘머무름의 온도’에선 창밖 경복궁 근정전의 풍경을 배경으로 ‘해를 가리다’(2017)전에서 선보인 차일, ‘바닥, 디디어 오르다’(2020)전에서 소개된 램프 등을 통해 한옥의 미학인 ‘차경(자연의 경치를 빌리다)’의 아름다움을 오롯이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이 공간에는 한옥 사랑방을 모티프로 아름지기가 개발한 소파·암체어 등이 배치돼 있어 관람객이 잠시 쉬어갈 수 있다.

‘실천의 여정’이라 명명된 지하 공간은 아름지기 20년사를 되돌아볼 수 있는 자료실로 꾸몄다. 창립 초기부터 발간해온 소식지, 18회에 이르는 기획전 도록 등 다양한 기록물이 빼곡하다.

가짓수는 줄이되 무병장수 기원의 의미는 살린 돌상. [사진 아름지기]

가짓수는 줄이되 무병장수 기원의 의미는 살린 돌상. [사진 아름지기]

또 다른 전시장인 ‘아름지기 안국동 한옥’은 스무 평 남짓한 ‘ㅁ’자 한옥으로 재단 초기 10여년간 사무공간이자 전시공간으로 쓰였다. 아름지기가 한옥 짓기를 처음 시도했던 곳인 만큼 이번 전시에선 다양한 소장품·기성품·협업작품이 실제 ‘홈(집)’처럼 배치돼 있어 ‘한옥에 사는 현대인의 삶’을 실감케 한다.

보료에서 영감을 얻은 소파 등 ‘한옥에 사는 현대인의 삶’을 격조 있게 구현한 아름지기 안국동 한옥 전시장. [사진 아름지기]

보료에서 영감을 얻은 소파 등 ‘한옥에 사는 현대인의 삶’을 격조 있게 구현한 아름지기 안국동 한옥 전시장. [사진 아름지기]

안상수 시각디자이너(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장)는 “멋을 지어낸다는 것은 ‘디자인’의 우리말이라고 생각한다”며 “우리 DNA 속에 면면히 이어온 멋스러운 감각을 그냥 이어가는 게 아니라 재창조해서 이 시대의 멋을 지어가는 일이 중요하다”고 했다. 재단 설립 20주년을 맞아 그동안의 역사를 갈무리하고 새로운 목표를 찾기 위해 브랜드 북 『커넥텡(CONNECTING)』도 준비한 신연균 이사장은 “‘문화는 이런 것이야’라고 고정할 수 없고, 언제나 그랬듯 삶 속에서 계속 흐르고 있기 때문에 전통문화를 지킨다고 해서 지금의 서양 문화나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의 문화를 배척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이제는 동시대 사람들이 가장 매력을 느끼고 따라갈 수 있는 우리 문화를 스스로 만들어 내야 하고, 그렇다면 아름지기가 문화 크리에이터가 돼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꿈도 꾸어 본다”고 했다.

이어령 전 장관 “아름다움의 힘 지킴이”

최중호 작가의 플라스틱 ‘도오(발효 항아리·사진 속 가장 왼쪽)’. [사진 아름지기]

최중호 작가의 플라스틱 ‘도오(발효 항아리·사진 속 가장 왼쪽)’. [사진 아름지기]

다음은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의 재단법인 ‘아름지기’ 설립 20주년 기념 축사 중 마지막 대목이다. 우리는 과거로부터 무엇을 얻고, 미래로 무엇을 전달해야 할지 명확한 답을 얻을 수 있다.

“수원 화성을 정말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서 고민하고 있던 정조대왕께 신하들이 말했습니다. ‘무릇 성이란 튼튼하기만 하면 되지 않습니까? 왜 자꾸 아름답게 만드시려고 고생을 하십니까?’ 그때 정조대왕이 말씀하시길 ‘어리석은 자들아, 튼튼한 것이 힘이 아니라 아름다운 것이 힘이니라’. 아름지기도 우리에게 그러한 존재입니다. 폭격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고 침공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아름다운 힘을 지키는 것이 바로 이름 그대로 아름지기의 일인 것이죠. 아름지기가 지금껏 해온 많은 일은 우리의 아름다움을 지켜온 힘이며, 앞으로 아름지기가 존재해야 할 이유입니다.”

전시는 사전예약으로 운영되며 관람료는 통의동 사옥 1만원, 안국동 한옥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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