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해라, 부서 옮겨라”…워킹맘, 회사 갑질에 시달려

중앙선데이

입력 2021.10.09 00:02

업데이트 2021.10.09 00:12

지면보기

757호 14면

육아휴직 불이익 여전

# “시대가 바뀌었다고 하지만 육아휴직을 하려면 여전히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대기업에 다니며 두 아이를 출산한 김모(38)씨는 한숨을 쉬었다. 그는 2014년 첫 아이를 출산하며 9개월간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당시 김씨의 상사는 다른 직원과의 식사자리에서 “걔는 왜 혼자 육아휴직을 쓰냐”고 했다. 육아휴직 후 김씨가 원래 일하던 부서에는 그의 자리가 없어졌다. 타 부서로 옮겨졌지만 내키지 않는 직무였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이직을 선택했다. 김씨는 전 직장보다 더 규모가 큰 금융권 대기업에서 일하다 2019년 말 둘째 아이를 출산해 다시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상사로부터 “지금껏 여직원 중 출산휴가 말고 육아휴직을 쓴 직원 없었는데 너는 왜 쓰려고 하냐. 꼭 써야겠냐”는 말을 들어야 했다.

# 중소기업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던 최모(27)씨는 지난 2월 첫 아이를 출산한 후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회사는 최씨에게 퇴사를 권고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직원이 출산한 사례도 없고, 육아휴직을 허용한 적도 없다는 이유였다. 몇 년 전 임신했던 한 직원은 회사의 눈치를 버티다 결국 임신 중에 퇴사했다. 최씨는 “선례가 없으니 육아휴직은 물론, 출산휴가 때도 눈치가 많이 보였다”며 “회사 측은 육아휴직을 하려면 퇴사를 하든지, 1년 휴직 후 퇴직하는 게 어떻겠냐고 하더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경영상 이유 들며 권고사직 권유 일쑤

육아휴직 제도가 시행된 지는 30년이 넘었다. 하지만 근로자는 여전히 자신의 권리를 당당하게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법적으로 육아휴직 대상은 점점 넓어졌다. 1987년 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됐을 때는 생후 1년 미만의 영아를 가진 여성 근로자만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었다. 지금은 만 8세 이하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의 자녀를 가진 남녀 근로자 모두 각 1년씩 사용할 수 있도록 확대됐다. 사업주는 6개월 이상 일한 근로자가 육아휴직을 신청하면 반드시 허용해야 한다. 정당한 사유 없이 육아휴직을 허용하지 않으면 5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린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럼에도 육아휴직과 관련해 인사상 불이익을 받은 사례는 끊이지 않는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한 근로자는 “육아휴직이 끝나고 복직한 첫날 출근하니 자리가 사라져 있었다”고 제보했다. 대표는 경영상의 이유를 들며 권고사직을 요구했다. 다음 날 출근했더니 다른 팀 구석에 자리를 만들어 놨고, 그 상태로 그냥 출근하다 해고예고통보서를 받았다.

서울특별시 서남권직장맘지원센터에 접수된 육아휴직 관련 불이익 상담 건수도 증가 추세다. 육아휴직 거부 등은 2017년 155건에서 2020년 315건으로 두 배 넘게 늘었다. 올해 9월까지 접수된 불이익 상담만 187건에 달한다. 육아휴직 후 복직 시 불이익 상담건수 역시 2017년 78건에서 2020년 362건으로 4.6배로 증가했다. 올해 9월까지 접수된 상담 건수만 지난해 전체 건수에 약간 못 미치는 352건이다.

급기야 회사와 법적 다툼을 벌이는 근로자들도 있다. 최근 남양유업에서 벌어진 일이 대표적인 사례다. 2002년에 입사해 6년 만에 최연소 여성 팀장을 단 A씨는 마흔이 넘는 나이에 첫 아이를 출산해 2015년 육아휴직을 냈다. 하지만 1년 후 복직하자 책상은 택배실과 탕비실 사이에 배치됐고, 주어진 업무는 이전 업무와 관련 없는 단순 업무였다는 게 A씨 측 주장이다.

A씨가 2017년 노동위원회에 부당 인사발령 구제신청을 하자 회사는 고양·천안 물류창고 등으로 인사발령을 냈다. 천안 물류창고는 출퇴근에 5시간이나 걸리는 곳이었다. 남양유업 측은 “육아휴직과 관련해 그 어떠한 인사상 불이익 및 부당한 대우 등이 없었다”고 반박했다. 행정소송에서 1심은 A씨가 승소했지만 항소심은 회사 측이 승소해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육아휴직 후 제대로 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일도 많다.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2018~ 2020년) 동안 전체 육아휴직자 31만6431명 중 34.1%에 달하는 10만7894명이 복직 후 6개월이 지나야 수령할 수 있는 육아휴직 사후지급금을 받지 못했다.

육아휴직 후 6개월 전에 퇴직한 사례를 고려하더라도 낮지 않은 비율이다. 더구나 2020년 3월부터는 복직 후 6개월 전 육아로 인해 퇴사하는 경우에도 사후지급금을 주도록 규정이 바뀌었다. 사후지급금을 받지 못한 경우가 30%를 넘는다는 것은 결국 육아휴직자 3명 중 1명이 휴직 후 직장에 정상적으로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육아휴직에 따른 불이익, 부당대우는 다양하게 존재하지만, 회사 측의 법 위반을 외부에 신고하는 사례는 많지 않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3년 동안 신고 건수는 연평균 36건에 불과했다. 육아휴직 관련 법 위반 기소송치 건수는 더 저조하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육아휴직 기간 중 해고 및 불리한 처우 금지 내용이 명시된 ‘남녀고용평등법 제19조 제3항’을 어겨 기소된 사례는 2018년 6건, 2019년 2건, 2020년 2건 정도다.

직장갑질119의 이진아 노무사는 “신고가 적은 이유는 불이익에 대한 입증이 어려울 뿐 아니라 입증이 된다고 하더라도 결과가 임신·출산·육아에 대한 직접적인 권리침해보다는 연관성을 확인하기 어려운 사업주나 동료들의 괴롭힘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라며 “실질적인 모성 보호를 위해 더 적극적인 노동부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근본적으로는 육아휴직이 여성만의 문제라는 사회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1974년 육아휴직 제도를 가장 처음 도입한 스웨덴은 남성에게도 의무적으로 육아휴직을 할당한다. 1995년 부모 각자에게 육아휴직 할당제도를 도입한 이후부터 남성 육아휴직률이 크게 늘었다. 처음에 30일이었던 남성의 의무 육아휴직은 이후 90일까지 늘었다. 현재는 남성 육아휴직 기간이 평균 100일을 넘었다. 스웨덴에서는 전체 육아휴직 기간인 16개월 중 3개월은 부모 각자에게 할당하고, 이 기간은 배우자에게 양도할 수 없다. 사용하지 않으면 소멸된다. 부모 모두가 육아휴직을 사용한 경우 최대 270일에 대한 세금을 공제받을 수 있다.

노르웨이에서는 남성에게 여성과 동일하게 15주의 육아휴직이 별도로 부여된다. 이 기간에 정부가 직장 임금 100%를 지원한다. 할당제를 도입한 후에 노르웨이 남성의 육아휴직 참여율은 90%까지 올랐다. 2018년 국회입법조사처의 ‘육아휴직제도 남성참여 제고를 위한 개선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남성육아휴직 참여율 최상위권 7개 국가(아이슬란드·스웨덴·포르투갈·노르웨이·룩셈부르크·벨기에·독일)들은 모두 남성 할당제를 택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장기간 육아휴직 제도를 마련했지만 부모간 할당제가 없어 실제 사용률이 높지 않다.

현행법상 우리나라 남성도 육아휴직을 신청할 수 있다. 육아휴직을 사용한 남성은 2016년 7617명에서 2020년 2만7423명으로 크게 늘었다. 하지만 전체 육아휴직자 가운데 남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같은 기간 8.5%에서 24.5%로 늘어나는데 그쳤다. 아직도 육아휴직자 4명 가운데 3명은 여성인 셈이다.

육아휴직자 34% 사후지급금 못 받아

정부는 남성이 육아휴직을 사용하면 3개월간 통상임금의 100%(250만원 한도)를 지원하는 ‘아빠 육아휴직 보너스제’ 등을 시행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남성이 육아휴직을 신청하기는 쉽지 않다. 7살, 3살 두 자녀를 둔 황모(40·남)씨는 200명 규모의 한 중소기업에서 남녀직원을 통틀어 최초로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직장인인 아내의 육아휴직 기간이 끝나자 남편 황씨가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서였다.

회사 측은 “한 아이당 1년씩 총 2년을 쉰다는 건 결국 일을 하지 않겠다는 것 아니냐”며 “그럴 거면 근무 부서를 변경하고 업무 부적응 사유로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게 해 줄테니 차라리 퇴사하라”고 권했다. 이를 뿌리치고 육아휴직을 관철한 황씨는 “부모가 필요한 시기에 아이들 옆에 있을 수 있어 행복하지만, 나중에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아이를 키우는데 당연히 사회가 힘을 보태야 한다는 공감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지금처럼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이 경력에 불이익이 되는 상황이 이어진다면 출산율을 끌어올리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서울특별시 서남권직장맘지원센터장인 김문정 노무사는 “현재 법적으로는 같은 직무, 혹은 동일한 임금의 직무에 복직시키면 합법이기 때문에 육아휴직 후 담당하지 않았던 업무에 배치하거나, 다른 근로자가 꺼리는 업무에 배치하는 식으로 인사권을 악용할 수 있다”며 “남성에게도 일정기간 육아휴직을 의무화하고, 복직시에는 원칙적으로 동일한 업무에 배치하는 등 근로자의 권리를 조금 더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