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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수상 전날도 동료 기일 챙겼다…무라토프는 누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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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미트리 무라토프. [AP=연합뉴스]

드미트리 무라토프. [AP=연합뉴스]

2021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드미트리 무라토프(60·러시아 노바야 가제타 편집장)는 수상 소식을 듣고 모처럼 웃고 있다고 전했다. 영국 BBC 방송에 따르면 무라토프는 유명한 텔레그램 채널 포디엄을 통해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여기도 난리다"라고 했다. 또 그는 러시아 타스통신사와 인터뷰에서 "이것은 노바야 가제타의 것"이라며 "국민의 언론의 자유를 수호하다 사망한 사람들을 위한 상"이라고 말했다.

무라토프는 아픔이 많은 저널리스트다. 자신의 회사 소속 후배이자 동료 언론인 6명을 잃었다. 그야말로 거악(巨惡)과의 싸움 중에 벌어진 일이다. 8일(현지시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노벨평화상을 발표하기 하루 전날인 7일도 그는 15년 전 죽은 동료의 기일을 챙겼다. 자신이 세운 회사 '노바야 가제타' 소속 기자 안나 폴리트코프스카야의 15주기였기 때문이다. 그는 체첸 러시아공화국의 인권 침해 문제를 대대적으로 보도해 국제적 찬사를 받은 인물이었으나 2006년 10월 7일 모스크바의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총에 맞아 사망했다. 무라토프는 이날 AP통신 인터뷰에서 "러시아 수사 당국이 살인 사건의 배후를 제대로 추적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언론인보호위원회(CPJ)에 따르면 1992년부터 2021년 사이 러시아에서 58명의 언론인이 살인 등의 사건으로 사망했다. 1993년 창간된 '노바야 가제타'의 기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6명의 노바야 가제타 기자가 러시아 고위급의 부패와 권력 남용을 파헤치다 목숨을 잃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도 축하 소식을 전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그는 자신의 이상을 위해 꾸준히 일해왔고, 자신의 일에 헌신적이고 재능이 있으며 용감한 사람"이라고 발표했다.

"불리한 조건서 일하는 모든 기자들의 대표" 

노벨위원회는 "이 신문의 사실 기반 저널리즘과 직업적 성실성은 다른 언론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는 러시아 사회의 비난 가능한 측면에 대한 중요한 정보 출처가 됐다"고 평가했다. 또, 수상자들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위한 용기있는 싸움을 벌였으며 민주주의와 언론의 자유가 점점 불리한 조건에 직면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같은 이상을 옹호하는 모든 기자들의 대표"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무라토프의 수상은 2021년 현재에도 불리한 조건에서 표현의 자유를 위해 싸우는 모든 이들에 대한 수상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러시아에서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나온 것은 31년 만이다. 앞서 구소련 시절인 1990년,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냉전체제의 종식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탄 바 있다.

무라토프도 고르바초프와 인연이 있다. 그는 젊은 시절 러시아 인기 일간지인 '코소몰스카야 프라프다'에서 기자로 생활하다 1993년 약 50명의 동료들과 함께 신문사인 노바야 가제타를 창간했다. 구소련 붕괴 후 재건될 러시아의 국가 정책에 영향을 미칠 정직하고 독립적인 신문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 것이다.

드미트리 무라토프. [로이터=연합뉴스]

드미트리 무라토프. [로이터=연합뉴스]

컴퓨터 2대, 급여 0원으로 시작한 언론사  

시작은 미약했다. 컴퓨터 2대, 프린터 1대, 방 2개, 급여는 0원이었다. 초기 발행 부수는 1만 부였다. 이런 이들에게 힘을 실어준 게 고르바초프였다. 그는 자신의 노벨평화상 수상금 일부를 기부해 노바야 가제타에 큰 힘을 실어줬다고 한다. 이때의 기부가 오늘날 노벨평화상의 밑거름이 된 셈이다.

이후 노바야 가제타는 러시아 고위급의 부패와 권력 남용을 파헤치는 심층 조사로 유명해졌다. 무라토프는 24년 동안 신문의 편집장을 맡았다.

노벨위원회는 "동료 기자들이 살해당하는 상황 속에서도 무라토프는 저널리즘의 윤리적인 기준을 준수한다면 언론인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쓸 수 있어야 한다는 권리를 일관되게 지켜왔다"고 밝혔다. 무라토프는 이날 "노벨평화상 수상은 언론의 자유를 수호하다 죽은 동료들을 위한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노바야 가제타는 비싼 대가를 치르면서 각종 탐사보도를 이어갔다. 지난 2016년에는 전세계를 뒤흔들었던 '파나마 페이퍼스' 문서를 파헤쳐 러시아 관리들의 역외 부를 폭로하기도 했다.

노바야 가제타 기자들은 테러의 표적이 되곤 했다. 당장 지난 3월도 노바야 가제타의 모스크바 사무실이 알 수 없는 화학 물질로 테러를 당했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지난해 러시아 야권 정치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가 독극물 테러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든 점을 고려할 때, 노바야 가제타로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한 사건이었다.

2017년 무라토프는 이런 이유로 소속 기자들에게 총기를 지급할 방침을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무라토프는 "기자들에 대한 잦은 공격 때문에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면서 "우리는 잦은 암살 기도 속에 살고 있으나 국가의 보호를 기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무라토프 "언론의 자유와 가난은 연관된 문제"

무라토프는 2016년 세계신문협회(WAN) 총회가 주관하는 '황금펜'(Golden Pen of Freedom)상을 수상했다. 황금펜은 언론의 자유를 위해 투쟁한 저널리스트 한 명을 선정해 시상한다. 당시 무라토프는 시상식에 참여하지 못하고 영상으로 수상 소감을 보냈다고 한다.

그는 "이 나라 국민의 5%만이 '언론의 자유'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80%는 가난을 러시아의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사람들은 이 두 문제를 연관시키지 않는데, 언론의 자유는 부패와 독재 권력을 막는 수단이고 부패와 독재 권력이 바로 가난의 근본적인 이유"라고 말했다.

노벨 위원회는 노바야 가제트를 "오늘날 러시아에서 가장 독립적인 신문"이라고 평가했다. 또 "저널리즘의 전문적이고 윤리적인 기준을 준수하는 한, 그들이 원하는 무엇이든 무엇이든 쓸 수 있는 언론인의 권리를 일관되게 옹호해 왔다"고도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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