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키호택과 걷는 산티아고길 80일] 드디어 만난 길동무 당나귀 동키호택

[색다른 여행기를 연재합니다. 스페인 산티아고 길을 당나귀와 걷는 이야기입니다. 글과 영상과 사진은 임택 여행가가 보냅니다. 임택씨는 폐차 직전의 종로 12번 마을버스 ‘은수’를 타고 세계일주를 했습니다. 2014년에 떠나 677일 만인 2016년 9월 27일 서울에 입성했습니다. 남미~중미~북미~유럽·아프리카~중앙아시아~시베리아~일본~부산~서울 여정입니다. 5개 대륙의 48개국 147개 도시를 지나며 모두 7만㎞를 달렸습니다. 21세기 한국판 돈키호테라 할만합니다. 이번 산티아고 길에는 당나귀 '동키호택'과 열아홉살 동훈이가 길동무입니다. 당나귀 이름은 돈키호테와 임택을 섞어 만들었습니다. 영어로 당나귀를 동키(donkey)라고 부르니 그럴듯합니다.

팬데믹으로 고단한 날들, 생소한 일에 도전하는 이야기가 조금이나마 위안이 됐으면 합니다.]

[동키호택과 걷는 산티아고길 80일]4화

 잠시 머문 도노스티아를 떠나 산골 마을 레이짜에 내렸다. 여기서 당나귀가 있는 농장까지는 20여분 거리다. 레이짜에서는 마침 옥수수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아담한 마을 레이짜. 마침 옥수수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어느 집이든 창문에는 화분이 놓여있다

마을에서 옥수수축제가 열리고 있다. 갓구운 빵에서 피어오르는 구수한 냄새가 발길을 잡는다.

옥수수로 만드는 갖가지 음식들. 좌판마다 음식을 사려는 주민들이 줄을 섰다.

우리가 먹을 빵 하나, 또 하나는 곧 만나게 될 당나귀 몫이다.

우와~ 스마트폰이다. 동훈이가 폰을 꺼내들자 동네 아이들이 우르르르.

사진과 영상을 찍고 돌려보며 신난 아이들. 두시간 내내 가지고 놀았다.

이럴 수가. 지나가던 차가 빵빵 하기에 돌아보니 운전자가 아는 체를 한다. 바로 당나귀 농장 주인 아리츠다. 농장에서 뭘 사러 나왔다가 우리를 바로 알아봤단다.

다음 날 아침 농장으로 가는 길 양편으로 피레네의 멋진 농촌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경사가 완만한 곳은 모두 풀밭이 만들어져 있고 가축들이 한가하게 풀을 뜯고 있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가축과 푸른 나무들뿐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구불구불하고 좁은 길 양쪽으로는 철조망이 둘러싸여 있다.

농장 가는 길. 풀을 뜯는 양들의 모습이 한가롭다.

아리츠의 농장에 이르자 멀리 당나귀 두 마리가 보인다. 어린아이를 포함한 한 가족이 당나귀를 타고 피레네 도보여행을 막 마친 것 같았다. 아이들은 아직도 당나귀와 헤어짐이 아쉬운 모양이었다. 아이들만 그런 게 아닌가 보다. 엄마로 보이는 중년 여인도 당나귀 곁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드디어 만난 '동키호택'. 본래 이름은 메스키. 뒤에 있는 친구 이름은 하이.

만나서 반가워. 동훈이와 동키호택의 첫 인사.

두 마리 당나귀는 7살 정도의 수컷들이라고 했다. 한 놈은 ‘메스키’ 다른 놈은 ‘하이’라고 불렀다.
“아리츠, 근데 이 아이들이 젖꼭지가 있네”
분명 사내아이들이라고 했는데.
“너도 두 개 있잖아. 낄낄낄”
우리는 서로 가슴을 만지며 한바탕 웃었다.
두 마리 중 한 마리가 우리와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 예정이다.

메스키는 힘이 세고 건강했지만 하이는 그렇지 못해 보였다. 하이는 바스크어로 ‘파티’라는  뜻이다. 메스키는 모로코의 한 오아시스 마을 이름에서 따왔다고 했다. 세계를 여행한 아리츠 부부가 가장 인상 깊었던 마을이라고 했다. 메스키에게 ‘동키호택’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한국에서 미리 지어온 이름이다.

동키호택과 친해지기 까지 우리가 묵을 창고. 지하1층에서 동물들이 잔다. 1층은 농기구 보관소이고 2층은 건초더미가 있다.

문 열고 나가면 바로 농장이다.

아리츠의 농장 풍경.

“택씨 여기서 잠을 자는 게 어때요? 텐트를 치면 멋있잖아?”
아리츠가 작은 동물들이 놀고 있는 농장 한쪽을 가리켰다.
“식량창고야. 없는 게 없지.”
우리가 자야 할 건초더미 근처에는 열 마리에 가까운 닭들이 평화롭게 돌아다녔다. 수컷 한 마리에 암컷이 9마리다. 이 중 한 마리는 병아리 두 마리를 데리고 다니다. 간혹 내가 다가서기만 하면 새끼들을 품속으로 감췄다. 다른 암탉 한 마리는 가시 덤불 속에서 알을 품고 있다. 손으로 얼굴을 건드려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이들의 보금자리는 작은 초가지붕이 얹어진 움막이다. 여기서 눈먼 개와 함께 닭들이 함께 산다. 개는 땅바닥에 닭은 높은 곳에서 잠을 잔다.
이 움막 한쪽 구석은 닭이 알을 낳는 장소다. 하루에 싱싱한 알 10개 정도가 나온다. 이틀간 낳은 알은 모두 우리가 먹었다. 작은 우리에는 토끼 두 마리가 산다.
“토끼는 3개월만 키우면 고기를 먹을 수 있지. 택씨 토끼고기 좋아해?”
“난 못 먹어”
“아니 그 맛있는걸?”
“없어서 못 먹는다니까?”
한바탕 웃음이 지나갔다. 먹어 본 경험이 없는 토끼 고기다.

농장 한쪽 비닐하우스에서 따온 토마토와 딸기. 물론 무농약이다.

작은 비닐하우스도 있는데 그 안에는 토마토와 딸기가 가득히 열려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상추와 작은 고추 그리고 가지까지 필요한 채소가 자라고 있었다. 그 뒤로 텃밭이 이어졌다.
옥수수와 호박, 참외 그리고 수박까지 온갖 채소들의 천국이었다.
“택씨 우리는 화학비료를 일체 안 써. 물론 농약도 노노.”
농장 한쪽에는 당나귀 배설물을 이용해 만든 천연 퇴비가 있었다.
“너희는 시장 갈 일이 전혀 없겠어. 고기하고 빵만 사면 되겠네.”
아리츠는 내 말에 더 흥미로운 이야기로 답을 했다.
“우리는 2월에 돼지를 잡아. 새끼 돼지를 사서 일 년 동안 산에 풀어 놓으면 어른이 돼. 산에는 먹을 것이 계절에 따라 매우 많거든. 요즘은 도토리 먹느라 돼지들이 정신 줄을 놓을 정도라니까.”
이곳 사람들은 자신이 기르고 잡은 고기를 일 년간 냉장 시설에 보관하고 먹는단다.
“너희 집에는 아주 큰 냉장고가 있어야겠어. 아리츠.”
“아니야 사람들 몇 명이 공동 냉장고를 사용하지. 여기서는 흔한 일이야.”
저녁이 되자 아리츠 부부는 그들이 살고 있는 레이짜로 돌아갔다. 동물농장과 채소 가득한 작은 울타리 안은 우리들의 작은 왕국이 되었다.
저녁 식사는 당연히 이곳에서 나는 재료만으로 준비했다. 우리에게 남은 음식 재료는 먹다 남은 초리소와 치즈 그리고 오늘 아침 옥수수빵 축제에서 사 온 야구방망이만 한 빵이 전부였다.
“자 이제 시장을 보러 갈까요?”
우리는 먼저 달걀 6개를 회수했다. 방금 낳았는지 달걀에 따듯한 온기가 남아있었다.
“스크램블을 해 먹어야겠어”
비닐하우스에서 빨갛게 익은 딸기와 푹 익은 토마토를 몇 개 그리고 텃밭에서 싱싱한 호박과 옥수수 두 개를 따왔다.
음식 재료가 이렇게 많아지니 마음도 덩달아 풍성해졌다.
음식을 만들 장소는 농장 곁에 있는 농막이다. 농사철에만 사용하는 집이다. 농막에는 작은 침상이 있고 그 천장에는 마늘과 양파가 가득 매달려 있다. 부족한 게 전혀 없는 환경이었다.

농장에서 키운 채소와 달걀 아리츠가 챙겨준 재료로 만든 음식.

레이짜에서 사온 빵. 바삭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농장에서 키운 돼지고기로 만든 숯불 바베큐. 도토리를 먹고 자랐다.

우리는 온갖 재료를 써서 음식을 만들었다. 이름을 무어라고 붙여야 할지 정체가 아리송하다. 올리브유에 갖은 채소를 다 넣고 볶은 다음 마지막에 계란 6개를 투척했다. 조미료라곤 소금을 조금 뿌렸을 뿐인데 이런 맛이라니.
저녁을 먹고 있는 농막 앞에는 피레네 산맥이 물결치고 있었다. 푸른 산과 너른 풀밭이 조화를 이루며 산을 수놓고 있다. 구름이 산허리에 걸려 비를 뿌린다. 멀리서도 가까이서도 동물들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도시의 때가 하나둘 벗겨지는 느낌이었다.

건초더미 위에 걸어놓은 해먹. 종일 움직였더니 눕자마자 쿨쿨.

밤 내내 비가 내렸다. 세찬 비와 가는 비가 번갈아 내렸다. 텐트 안에서 듣는 빗소리는 자연이 주는 조화로운 연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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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키호택을 만났다고 바로 떠날 수 있는 건 아니다. 당나귀와 친해지면서 다루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나 임택 아저씨야. 한국에서 왔어. 우리 잘 해보자. 그런데 넌 키가 작구나.

끽끽끽끽. 당나귀를 끌고다니며, 길을 재촉할 때 내는 소리를 장난삼아 반복했더니 달려들어 물었다. 농장주인 아리츠가 사람 무는 당나귀 처음 봤다며 낄낄대고 웃는다.

이제 실전이다. 동키호택과 산길 걷는 훈련중.

5일 동안 아리츠 농장에서 실전 연습을 했다. 농장을 떠나기 전 아리츠 아내가 말했다. "걱정 말아요. 미소와 밝은 마음으로 대하면 모두가 도와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