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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지나도 반성없다" 6100억 흥행 '장진호' 때린 中언론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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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장진호'의 마지막 장면. 1950년 11월 27일 중국 9병단 27군이 미군의 퇴각을 저지하기 위해 고지를 지키다 동사하는 모습이 담겼다. [웨이보 캡쳐]

영화 '장진호'의 마지막 장면. 1950년 11월 27일 중국 9병단 27군이 미군의 퇴각을 저지하기 위해 고지를 지키다 동사하는 모습이 담겼다. [웨이보 캡쳐]

중국 언론계에서 항미원조전쟁(6ㆍ25에 대한 중국식 표현)을 추앙하며 애국심을 고취시키려는 데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중국 주류 매체 언론인이 영화 ‘장진호’의 흥행을 두고 “아직 반성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그의 주장은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됐지만 이내 삭제됐다.

"중국 국민은 상부 결정 의심하지 않는 '모래조각상'"

중국 매체 신경보 선임기자인 뤄창핑이 지난 6일 자신의 웨이보에 올린 글. “반세기가 지났지만 국민들은 전쟁의 정의(正義)에 대해 거의 반성하지 않았다. 마치 ‘모래조각상’이 상관의 결정을 의심하지 않는 것과 같다” [둬웨이 캡쳐]

중국 매체 신경보 선임기자인 뤄창핑이 지난 6일 자신의 웨이보에 올린 글. “반세기가 지났지만 국민들은 전쟁의 정의(正義)에 대해 거의 반성하지 않았다. 마치 ‘모래조각상’이 상관의 결정을 의심하지 않는 것과 같다” [둬웨이 캡쳐]

지난달 30일 중국에서 개봉한 영화 장진호는 일주일 만에 입장권 판매 34억 위안(6100억 원. 8일 0시 기준)을 돌파하며 중국 영화 사상 10위에 올랐다. 관영 CCTV는 “미국의 침략에 저항해 중국군의 영웅 전설을 써내려 간 위대한 정신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했다.

그러나 중국 주류 매체 신경보(新京報)의 선임기자이자 심층보도팀 주필인 뤄창핑(羅昌平)은 지난 6일 자신의 웨이보(중국식 트위터)에 “반세기가 지났지만 국민들은 전쟁의 정의(正義)에 대해 거의 반성하지 않았다”며 “마치 ‘모래조각상’이 상관의 결정을 의심하지 않는 것과 같다”고 적었다.

‘모래조각상’은 이중적 의미를 담고 있다. 뤄창핑은 글과 함께 영화 ‘장진호’의 마지막 장면을 캡쳐해 올렸다. 중국 인민지원군이 개마고원 산 중턱에서 퇴각하는 미군을 막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가 폭설에 얼어붙은 장면이다.

뤄창핑은 신경보 선임기자 겸 전 차이징 부편집장이다. [바이두 캡쳐]

뤄창핑은 신경보 선임기자 겸 전 차이징 부편집장이다. [바이두 캡쳐]

이들은 상관의 지시를 받고 최후까지 고지를 지키다 장렬히 전사해 ‘얼음조각 부대’란 영웅으로 칭해진다. 그런데 ‘얼음조각 부대’(氷雕連ㆍ빙댜오롄)란 표현을 중국어로 발음이 같은 ‘모래조각상’(沙雕瞼ㆍ샤댜오롄)으로 바꿔 중국인들을 ‘얼어죽은 군대’처럼 ‘모래조각상’이 되고 있다고 조롱한 것이다. 동시에 ‘모래조각상’(샤댜오렌)이란 표현은 중국에선 물정 모르는 사람을 놀리는 ‘바보’라는 뜻의 인터넷 은어다.

전쟁 반성없는 중국...참전 정당했나 의문 제기

뤄창핑이 지난 2015년 마오쩌둥 주석과 저우언라이 총리가 나온 중국 드라마를 캡쳐한 뒤 ”총리:주석, 돈 얼마나 챙겼어?“라는 글을 웨이보에 올렸다. [둬웨이 캡쳐]

뤄창핑이 지난 2015년 마오쩌둥 주석과 저우언라이 총리가 나온 중국 드라마를 캡쳐한 뒤 ”총리:주석, 돈 얼마나 챙겼어?“라는 글을 웨이보에 올렸다. [둬웨이 캡쳐]

뤄창핑은 ‘전쟁의 정의’라는 표현을 부연하지 않았지만 명분없는 전투에 참전해 중국 국민을 희생시킨 잘못된 참전이란 의미로 썼을 것이란 해석도 나왔다. 중화권매체 둬웨이(多维)에 따르면 뤄창핑은 과거 ‘계란볶음밥 제삿날’이란 표현을 사용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마오쩌둥 주석의 첫째아들 마오안잉(毛岸英)은 6·25에 참전했다 미군 폭격에 사망했는데, 당시 계란볶음밥을 만들어 먹으려다 위치가 노출돼 폭사했다는 설이 있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그의 죽음을 희화화하려는 헛소문이라며 부대 사령부의 무전 노출로 인해 위치가 알려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또 지난 2015년엔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가 등장한 드라마 장면과 함께 ”총리:주석, 돈 얼마나 챙겼어?“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뤄창핑이 마오 주석에 비판적인 의견을 개진해온 것이다.

"민족 존엄 수호한 영웅...모욕 용납 못해"

동사한 중국군을 발견한 미군이 이들을 향해 경례하는 영화 '장진호'의 한 장면. [더우인 캡쳐]

동사한 중국군을 발견한 미군이 이들을 향해 경례하는 영화 '장진호'의 한 장면. [더우인 캡쳐]

뤄창핑의 글이 게재된 직후 논란이 일자 중국 해방군일보가 곧바로 반박에 나섰다. 주필 준정핑(鈞正平)은 웨이보에서 “장진호 전투 당시 극한의 추위 속에 3개 중대가 영광과 사명을 지키며 아낌없이 헌신해 이를 ‘얼음조각중대’라고 부르는데 이는 미국에 대한 항거와 조국 전쟁의 지울 수 없는 상징”이라며 “민족적 존엄을 수호한 영웅은 우리나라의 가장 빛나는 좌표다. 이들을 조롱해선 안 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중국 공산주의청년동맹 중앙위 역시 논평을 통해 “우리가 이 전투를 치르지 않으면 우리 다음 세대가 싸우게 될 것”이라며 “우리 마음속의 영원한 금자탑이다. 극도의 추위에 사망한 순교자들을 비방하고  모욕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홍콩 명보(明報)는 뤄창핑이 하이난(海南) 공안에 의해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뤄창핑이 올린 글은 웨이보에서 삭제됐다. 현재 그의 계정은 접속이 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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