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덕 올린 사진이 하필…한·중 '오징어게임 체육복' 싸움

중앙일보

입력 2021.10.08 10:44

업데이트 2021.10.08 10:54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 공식 포스터. [사진 넷플릭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 공식 포스터. [사진 넷플릭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속 체육복을 둘러싼 한중 네티즌 간 갈등이 번지고 있다. 지난 5일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중국 내 ‘오징어 게임’ 불법 다운로드 및 유통 문제를 지적하며 시작된 논쟁이 현재는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초록색 체육복의 원조 논란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서 교수가 중국의 저작권 불법 도용의 예시로 든 사진이 논란의 불씨가 됐다. 하필이면 이 사진 속 인물이 현재 중국 최고의 흥행 배우 ‘우징(吴京)’이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또 ‘오징어 게임’의 인기를 깎아내리려는 중국 관영 매체의 의도적인 꼬투리 잡기가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서경덕 교수, 중국의 ’오징어 게임’ 판권 도용 비판
예시로 든 ‘중국’ 적힌 추리닝에 발끈한 중국 언론
도용 문제 쏙 빼고 엉뚱한 추리닝 원조 논쟁 점화
‘오징어 게임’ 폄훼하려 꼬투리 잡기란 지적도 나와

지난 5일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글. 서 교수는 중국의 '오징어 게임' 불법 다운로드 행태와 무단 굿즈 판매를 비판하기 위해 중국 쇼핑몰 화면을 캡쳐해서 올렸다. [사진 서경덕 교수 페이스북 캡처]

지난 5일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글. 서 교수는 중국의 '오징어 게임' 불법 다운로드 행태와 무단 굿즈 판매를 비판하기 위해 중국 쇼핑몰 화면을 캡쳐해서 올렸다. [사진 서경덕 교수 페이스북 캡처]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서경덕 교수는 지난 5일 자신의 SNS를 통해 중국에서 성행하는 ‘오징어 게임’ 불법 다운로드 행태를 꼬집었다. 일부 중국 인터넷 쇼핑몰의 저작권 무단 사용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서 교수는 “(중국) 쇼핑몰 앱에서는 드라마에 입고 나와 유명해진 초록색 체육복에 ‘중국’이라는 한자를 삽입, 이정재 씨 사진을 활용해 판매까지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중국’ 두 글자가 적힌 초록색 체육복 사진과 드라마 속 이정재 배우의 사진이 나란히 붙어있는 쇼핑몰 판매 화면을 캡처해 예시로 들었다.

하지만 문제는 해당 캡처 속 ‘중국’ 글씨가 적힌 옷이 실제론 이미 2019년에 상영된 중국 영화에 등장해 중국 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복고풍 체육복이라는 점이었다. 게다가 이 옷을 유행시킨 장본인이자 이 쇼핑몰 사진 속 주인공은 지금 중국에서 최고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중국 국민배우 ‘우징’이었다.

중국 국민배우로 불리는 우징(吳京)이 2019년 까메오로 출연한 영화 '선생님, 안녕하세요(老師,好)'의 한 장면. 영화 속에서 우징이 입고 나온 '중국' 글자가 쓰인 초록색 체육복은 중국에 대대적인 복고풍 유행을 일으켰다. [중국 진르터우탸오 캡처]

중국 국민배우로 불리는 우징(吳京)이 2019년 까메오로 출연한 영화 '선생님, 안녕하세요(老師,好)'의 한 장면. 영화 속에서 우징이 입고 나온 '중국' 글자가 쓰인 초록색 체육복은 중국에 대대적인 복고풍 유행을 일으켰다. [중국 진르터우탸오 캡처]

하지만 서 교수가 SNS에 올린 내용과 사진은 당일 국내 언론에서 빠르게 기사화됐고, 이 소식이 중국에도 전해졌다. 그러자 중국 언론들은 당초 서 교수가 제기한 ‘오징어 게임’의 불법 다운로드 실태나 저작권 도용 문제에 대한 지적은 쏙 빼놓고 ‘우징’의 체육복 관련 언급만 ‘침소봉대’하고 나섰다.

같은 날, 중국 관영 매체 관찰자망(觀察者網)은 「또 시작인가, 한국 언론이 우징의 ‘중국’ 점퍼가 ‘오징어 게임’에서 베낀 것이라 떠벌리고 있다」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이를 시작으로 중국 각종 포털 사이트와 SNS는 비슷한 내용의 글과 영상들로 도배됐다. 이 현상이 또다시 국내 언론에 보도되면서 한중 간에 ‘오징어 게임’ 체육복 원조 논쟁이 벌어진 것이다.

중국 관영 매체 관찰자망(觀察者網)은 「또 시작인가, 한국 언론이 우징의 ‘중국’ 점퍼가 ‘오징어 게임’에서 베낀 것이라 떠벌리고 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중국 관찰자망 캡처]

중국 관영 매체 관찰자망(觀察者網)은 「또 시작인가, 한국 언론이 우징의 ‘중국’ 점퍼가 ‘오징어 게임’에서 베낀 것이라 떠벌리고 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중국 관찰자망 캡처]

하루 사이 중국 네티즌들의 집중 포격을 당한 서경덕 교수는 지난 6일 국내 한 언론과의 통화에서 “사진과 표현에 오해가 있어 수정하려고 했지만 사진 수정이 안 됐다”며 “쓸데없는 논란을 일으킬 수 있어 글을 내렸다”고 밝혔다. 사실 핵심은 중국 쇼핑몰에서 ‘오징어 게임’ 속 배우 이정재 씨의 사진을 넣어 광고하는 것을 문제 삼으려 했다는 게 서 교수의 설명이다.

‘우징’의 인기가 논란을 키우는 기폭제가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우징’은 2017년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중국 애국주의 영화 〈전랑(戰狼)2〉의 감독이자 배우이다. 최근 항미원조전쟁(한국전쟁의 중국식 표현)을 다룬 그의 출연작 〈장진호(長津湖)〉도 연일 흥행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명실상부 중국을 대표하는 흥행 배우인 ‘우징’이 입은 체육복을 한국에서 베꼈다고 주장하니 중국 네티즌들이 벌떼처럼 일어난 것이다.

중국 배우 우징이 출연한 중국 애국주의 메가 히트작 '전랑2'(2017, 왼쪽)과 '장진호'(2021, 오른쪽)의 영화 포스터. 연이은 애국주의 대작 출연과 흥행으로 우징은 중국 국민배우로 자리잡았다. [중국 바이두 캡처]

중국 배우 우징이 출연한 중국 애국주의 메가 히트작 '전랑2'(2017, 왼쪽)과 '장진호'(2021, 오른쪽)의 영화 포스터. 연이은 애국주의 대작 출연과 흥행으로 우징은 중국 국민배우로 자리잡았다. [중국 바이두 캡처]

한편 ‘오징어 게임’의 인기를 의식한 중국 당국이 이를 폄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꼬투리를 잡은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중국 관영 매체가 ‘오징어 게임’을 애써 깎아내리려 한 시도는 여러 차례 있었다. 일례로 중국 관영 매체 환구망(環球網)은 9월 30일 '식상한 설정, 용두사미인 스토리, 누가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띄우고 있나'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기사는 한국 언론이나 SNS에서 언급된 비평적 내용을 주로 인용해 ‘오징어 게임’의 작품성을 ‘돌려 까기’ 했다. ‘오징어 게임’의 흥행 비결은 코로나 시대에 있다며 인기가 부풀려졌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이번에 불거진 체육복 논란도 비슷한 맥락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이유다.

중국 관영 매체 환구시보(環球時報)는 9월 30일 「식상한 설정, 용두사미인 스토리, 누가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띄우고 있나」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중국 진르터우탸오 캡처]

중국 관영 매체 환구시보(環球時報)는 9월 30일 「식상한 설정, 용두사미인 스토리, 누가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띄우고 있나」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중국 진르터우탸오 캡처]

이욱연 서강대 교수는 최근 양국 언론이 한중 간 문화 갈등을 부추긴다고 분석했다. 중국의 극단적인 애국주의 언론 보도와 한국의 반중∙혐중 상업주의 언론 보도가 만나 논란이 확산한다는 뜻이다. 이 교수는 특히 중국의 경우 여론에 대한 관영 매체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중국 정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뿐 아니라 부정확한 정보나 왜곡된 사실이 전파되지 않도록 양국 언론과 지식인들의 정확한 사실 지적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한편 논란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7일 오후 6시 기준, 중국 웨이보에서 “한국 교수가 ‘우징’ 점퍼를 한국 드라마에서 베낀 것이라 주장했다”라는 해시태그가 달린 게시글은 이미 조회 수가 3억 2000만 개를 넘어섰다. 서경덕 교수를 공개적으로 비난한 관찰자망의 웨이보 저격글은 52만 개의 ‘좋아요’를 받았다. 이와 더불어 ‘오징어 게임’에 대한 중국 내 관심은 되려 더 커지는 모양새다. ‘오징어 게임’ 해시태그가 포함된 웨이보 게시글의 조회 수는 이미 18억 개를 넘었다.

7일 오후 6시 기준, 중국 웨이보에서 “한국 교수가 ‘우징’ 점퍼를 한국 드라마에서 베낀 것이라 주장했다”라는 해시태그가 달린 게시글은 이미 3.2억 조회수를 넘어섰다. [중국 웨이보 캡처]

7일 오후 6시 기준, 중국 웨이보에서 “한국 교수가 ‘우징’ 점퍼를 한국 드라마에서 베낀 것이라 주장했다”라는 해시태그가 달린 게시글은 이미 3.2억 조회수를 넘어섰다. [중국 웨이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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