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차세대 거장 만난 韓거장 봉준호 "송강호가 안부 전해달라더라"

중앙일보

입력 2021.10.08 09:47

업데이트 2021.10.08 09:59

올해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최고 화제의 행사인 스페셜 토크 '하마구치 류스케X봉준호'가 7일 부산 영화의 전당 중극장에서 관객 200여명이 함께한 가운데 열렸다. 거리 두기를 위해 좌석은 50%만 운영했다.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올해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최고 화제의 행사인 스페셜 토크 '하마구치 류스케X봉준호'가 7일 부산 영화의 전당 중극장에서 관객 200여명이 함께한 가운데 열렸다. 거리 두기를 위해 좌석은 50%만 운영했다.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며칠 전 송강호 배우가 문자 줬어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을 만나면 안부 전해 달라고요. ‘드라이브 마이 카’가 수상할 때 칸영화제 심사위원이었거든요.”
봉준호(52) 감독이 일본 차세대 거장 하마구치 류스케(43) 감독에게 전한 말이다.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 이튿날인 7일 부산 영화의전당에선 양국을 대표하는 두 감독의 스페셜 토크가 진행됐다.

봉준호·日차세대 거장 하마구치 류스케
7일 부산영화제 대담…200석 초고속 매진

하마구치 "'살인의 추억'은 대걸작이죠"
봉준호 "하마구치 영화 '그래비티'처럼
인간의 관계와 마음의 여정 체험케 해"

올해 영화제에서 예매 오픈과 동시에 매진된 행사다. 봉 감독의 명성에 더해 올해 칸‧베를린을 잇따라 석권하며 세계적 거장으로 올라선 하마구치 감독의 신작도 화제가 됐다. 봉 감독처럼 각본까지 직접 써온 그는 올해 베를린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우연과 상상’ 이어 칸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한 ‘드라이브 마이 카’까지 한꺼번에 두 편이 거장의 신작을 소개하는 ‘갈라 프레젠테이션’ 부문에 초청됐다. ‘우연과 상상’은 우연으로 얽힌 여러 인물 사연을 3편의 단편에 묶어낸 작품. ‘드라이브 마이 카’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2013년 소설집 『여자가 없는 남자들』에 수록된 동명 단편에 풍부한 상상을 덧붙여 상영시간 179분여 영화에 담아냈다.

봉준호 "하마구치 영화, '그래비티' 같은 '체험'"

7일 스페셜 토크 '하마구치 류스케X봉준호'에서 봉준호 감독은 하마구치 영화 속 자동차 장면에 대해 첫 질문을 던졌다. “저 같은 감독은 불가능한데 뒷좌석에 (감독이) 구겨지듯이 숨어서 찍기도 하거든요. ‘기생충’은 자동차가 멈춰있는 채로 찍었죠.”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7일 스페셜 토크 '하마구치 류스케X봉준호'에서 봉준호 감독은 하마구치 영화 속 자동차 장면에 대해 첫 질문을 던졌다. “저 같은 감독은 불가능한데 뒷좌석에 (감독이) 구겨지듯이 숨어서 찍기도 하거든요. ‘기생충’은 자동차가 멈춰있는 채로 찍었죠.”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부산영화제 남동철 수석 프로그래머는 “두 편 다 놓치기 아까워서 선보이게 됐다”면서 “하마구치 감독은 봉준호 감독의 열렬한 팬이어서 3년 전 ‘살인의 추억’에 대한 영화 해설을 부산영화제에 와서 했다”며 특별한 인연을 소개했다.

봉 감독은 지난해 영국 영화잡지 ‘사이트 앤드 사운드’에서 주목해야 할 차세대 감독 20인에 하마구치 감독을 꼽기도 한 터다. 두 영화를 잇달아 상영한 뒤 시작된 이 날 토크에선 “오랜 팬으로서 궁금한 게 많다. 같은 동료 감독으로서 그의 직업적 비밀을 캐고 싶다”며 예정된 1시간 30분을 훌쩍 넘겨 질문을 쏟아냈다. 좌석의 50%만 가동한 객석에선 200여명 관객 열기가 빈자리를 느끼지 못할 만큼 뜨거웠다.

영화 '우연과 상상'.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영화 '우연과 상상'.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봉 감독은 하마구치 감독의 영화를 알폰소 쿠아론의 우주 SF ‘그래비티’에 빗댔다. “‘그래비티’는 주인공이 지구로 귀환하는 여정을 물리적으로 체험하게 해준다”면서 “하마구치 감독님 영화도 인간과 인간의 관계라든가, 인간 마음의 여정이라든가, 꼭 말을 해야 했는데 말 못 하고 억눌렀던 것들, 의도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지연시켰던 것들, ‘드라이브 마이 카’ 주인공들처럼 전혀 우연한 인연으로 만나게 된 그런, 전혀 모르고 살아온 상대방의 마음에 도달하는 과정을, ‘그래비티’에서 우주 공간으로부터 땅에 도착해 맨발로 바닷가 모래를 밟듯 어느 도달 해야 하는 마음의 지점이 있는데, 영화에서 그 과정을 정말 우리가 체험하게 해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봉준호가 팬클럽 회장노리는 일본 거장은 

‘우연과 상상’ ‘드라이브 마이 카’는 유독 “엄청나게 많은 대사와 침묵의 모멘트가 오랜 시간 차에서 펼쳐지는” 작품. 봉 감독은 “자동차 신은 어떻게 이렇게 많이 찍었냐”며 첫 질문을 던졌다. “자동차 신이 찍은 입장에선 여러 가지 성가시고 불편한 것이 많다”면서다.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하마구치 류스케(이하 하마구치): “자동차가 주행하는 동안 트렁크 공간에 있었다. 배우와 가까운 곳에서 소통하고 싶어서.”
봉: “두 영화 다 자동차에서 (인물들이 서로) 마주보지 않는 대화가 많은데.”
하마구치: “시나리오 작업할 때 대사 쓰는 작업으로밖에 시작할 수 없는 게 저의 약점이다. 움직임이 없으면 영화가 재미없으니까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선택으로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그 안에서밖에 할 수 없는 (대화의) 힘이 있다. A지점에서 B로 이동하는, 언젠가 곧 끝날 특별한 시간 사이 말하고 싶어하는 심리가 작용한다.”

봉 감독은 “아시아에 팬클럽을 만든다면 저랑 하마구치상이 회장 놓고 사투를 벌여야” 할 감독으로 일본 거장 구로사와 기요시를 들었다. 하마구치 감독은 대학원 은사인 구로사와 감독의 지난해 베니스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스파이의 아내’ 각본을 맡기도 했다. 봉 감독은 구로사와 감독의 ‘큐어’(1997)가 ‘살인의 추억’ 범인 캐릭터에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시나리오 쓸 때 만나고 싶지만 만날 수 없었던 연쇄살인범을 ‘큐어’ 살인마를 보며 해소했다. 기막히고 이상한 대사, 사람 미치게 하는 그런 것들은 잊을 수 없다”면서다. 하마구치 감독은 “‘살인의 추억’은 대걸작이고 ‘큐어’는 20세기 일본영화 최고 작품 중 하나”라며 두 작품의 접점에 흥분을 내비쳤다.

하마구치, 홍상수 특유 촬영법도 엿보여 

봉 감독은 “만약 이 자리에 홍상수 감독님이 있었다면 본인도 영향받고 많이 말씀하시는 프랑스 누벨바그 거장 에릭 로메르를 이야기했을 것 같다”며 “오늘 ‘우연과 상상’에 로메르 느낌이 있다. 홍 감독도 떠올랐다”고 했다. “로메르는 흉내 내고 싶은 감독”이라는 하마구치 감독은 “로메르는 시나리오 자체가 일종의 연기자에 대한 연출이 된다. 그가 쓰는 말은 설명하기 위한 대사가 아니라 말하는 인물을 드러낸다”면서 “홍 감독님도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를 로카르노영화제에서 보고 ‘정말 현대의 거장이구나’ 생각했다”고 했다.

봉준호 감독이 “제가 불안의 감독이라면 하마구치상은 확신의 감독인 것 같다”고 하자, 하마구치 감독은 “저도 마찬가지로 불안해 죽겠다. 그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이것저것 애쓴다”고 했다. “속으로 지금 봉 감독님 연출을 받고 있는 것 같아요. 저에 대해 커다랗게 긍정해주시면서도 한쪽으론 ‘넌 아직 더 할 수 있어’ 이런 느낌으로 저를 바라보며 뭔가 끌어내주는 느낌도 들거든요. 오늘 말씀 나누면서 힘이 났습니다. 영화 찍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봉준호 감독이 “제가 불안의 감독이라면 하마구치상은 확신의 감독인 것 같다”고 하자, 하마구치 감독은 “저도 마찬가지로 불안해 죽겠다. 그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이것저것 애쓴다”고 했다. “속으로 지금 봉 감독님 연출을 받고 있는 것 같아요. 저에 대해 커다랗게 긍정해주시면서도 한쪽으론 ‘넌 아직 더 할 수 있어’ 이런 느낌으로 저를 바라보며 뭔가 끌어내주는 느낌도 들거든요. 오늘 말씀 나누면서 힘이 났습니다. 영화 찍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진 부산국제영화제]

봉 감독은 하마구치 감독이 전작 ‘해피 아워’ 등에서 비직업 배우의 ‘날 것’ 느낌을 숙련 배우와의 섬세한 앙상블에 담은 노하우도 물었다. 하마구치 감독이 “비직업 배우는 연기 습관이 없는 게 좋다. 직업 배우도 그에 자극을 받아서 안에서 끌어낼 수 있는 부분이 나온다”며 봉 감독에게 캐스팅 기준을 질문하자 그는 “그냥 연기 잘하는 분들이 최고”라고 답하며 웃었다. “배우가 내가 상상한 뉘앙스를 정확하게 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으면서 동시에 또 예상치 못한 것으로 나를 놀래켜줬으면 하는 모순된 욕심이 있죠.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을 뵐 기회가 있었는데 붙들고 물어볼 수 없었지만, 대배우가 감독이 된 경우들은 소위 말하는 연기 지도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저 같은 경우는 연기 부탁, 연기 읍소, 연기 해달라고 징징대기지만.”(봉준호)

봉준호 "저 자신 신뢰 안 해…약점이자 강점"

객석에선 봉 감독 스스로가 생각하는 약점을 묻는 관객 질문도 나왔다. “저는 매순간 불안하기 때문에 어디로 어떻게 달아날 것인가, 여러 가지 회피적인 생각을 하는 과정에서 그걸 관객분들이 좋다, 재밌다, 이상하다, 특이하다, 독창적이다, 풍부하게 해석해주는 데 감사할 따름”이라 말한 봉 감독은 “그게 약점이면서도 저 자신을 별로 신뢰 안 하기 때문에 오히려 강점이 되기도 한다. 영화를 만들다 보면 이 영화가 내 손을 떠났거나 내 사고, 몸이나 머리보다 훨씬 커져 버린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데 그 지점에 이르면 오히려 불안감이 줄어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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