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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감축 목표 40%로 상향…전기료ㆍ탄소세 청구서도 늘어난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목표만 있고 ‘어떻게’가 없다.”

8일 대통령 직속 탄소중립위원회와 관계부처는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NDC)를 기존 26.3%에서 40%로 끌어올리는 방안을 발표했다. 2018년 대비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그만큼 더 줄여야 한다는 의미다. 정부는 이날 온라인 토론회와 18일 탄소중립위원회 전체회의를 연 뒤 이달 말 국무회의에서 최종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 29일 오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2050 탄소중립위원회 출범식'에서 격려사를 하고 있다. 뉴스1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 29일 오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2050 탄소중립위원회 출범식'에서 격려사를 하고 있다. 뉴스1

이런 속전속결 방침에 우려도 잇따르고 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1990년 대비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목표를 40%에서 55%로 올리는 ‘핏 포 55(Fit for 55)’를 지난 7월 발표했는데 일종의 초안이다. 이 안을 바탕으로 향후 2년 동안 회원국 간 사회적 합의와 논의를 하기로 했다”면서 “이와 달리 한국 정부는 제대로 된 합의 없이 숫자만 먼저 발표하고 이달 말 국무회의에서 확정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탄소중립 추진에 있어 현 정부의 비민주성과 폐쇄성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부의 이번 조치는 문재인 대통령이 “국제 사회에 대한 최소한의 신의로 2030년 온실가스 배출 감축 목표가 40% 이상은 돼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발언한 지 한 달 만에 이뤄졌다. 지난 8월 국회를 통과한 탄소중립법에서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35% 이상으로 설정한 데서 한 발 더 나갔다.

이처럼 갑자기 끌어 올린 목표치 달성이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다는 것은 정부도 인정하고 있다. 탄소중립위원회와 관계부처는 이날 발표에서 “기준연도(2018년)에서 2030년까지의 연평균 감축률(4.17%)을 고려할 때 40% 감축 목표는 매우 도전적인 것"이라고 밝혔다.

가장 큰 부담은 천문학적인 비용이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추산한 결과에 따르면 탈원전을 전제로 한 현 정부의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실행하면 앞으로 30년간 전력 생산 비용의 누적 손실은 1067조4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이산화탄소 배출량 추이, 주요국 온실가스 감축 목표, 국내 산업별 온실가스 배출량 비중, '2050 탄소제로'로 가는길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국제에너지기구(IEA)·산업부·환경부

이산화탄소 배출량 추이, 주요국 온실가스 감축 목표, 국내 산업별 온실가스 배출량 비중, '2050 탄소제로'로 가는길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국제에너지기구(IEA)·산업부·환경부

실제 비용은 이 추산치마저 훌쩍 뛰어넘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노동석 서울대 원자력정책센터 연구위원은 “재생에너지의 간헐성(기후에 따라 전력 생산량이 들쭉날쭉한 현상) 대응 시스템 구축 비용을 고려한 가중평균비용, 30년 동안의 물가 상승률(실질 이자율), 재생에너지 증가에 따른 에너지 저장 장치(ESS) 추가 비용까지 고려하면 1000조원은 오히려 크게 저평가된 수치”라고 주장했다.

그 부담은 결국 전기요금 인상 또는 탄소세 신설 등의 형태로 고스란히 국민에 돌아올 예정이다. 올해 정부와 한국전력공사는 전기요금 연료비 연동제 시행에 들어갔다. 전력을 생산할 때 들어가는 연료 가격에 따라 전기요금을 조정하는 제도다. 비교적 값이 싼 화석연료 대신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커지면 앞으로 전기요금이 올라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세계 각국이 동시에 탄소 저감에 나서면서 벌써부터 ‘그린플레이션(Greenflation)’ 등 예상치 못한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재생에너지 설비에 주원료로 쓰이는 구리ㆍ알루미늄 등 원자잿값이 치솟는 현상이 대표적이다. 또 올해 유럽 지역에서 바람이 많이 불지 않아 풍력 전기 생산량이 급감하자, 대체 에너지인 천연가스로 수요가 몰리며 가격이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는 일도 벌어졌다. 여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공급망 병목 현상까지 겹치며 그린플레이션은 전 세계의 물가 난을 고조시키는 주요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숙제는 천문학적인 비용만이 아니다.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40%까지 줄이려면 국내 전력 생산 구조부터 전면적으로 개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원자력 발전을 줄여나가는 탈원전 정책까지 병행하기로 한 상황이라 수술 범위는 더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부는 감축 목표만 제시했을 뿐 어떤 발전소를, 몇 기 줄일지에 대한 명확한 청사진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윤순진 탄소중립위원회 민간위원장이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2021년도 산업통상자원부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뉴스1

윤순진 탄소중립위원회 민간위원장이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2021년도 산업통상자원부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뉴스1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5일 산업통상자원부 국정감사에서 “2030년 온실가스 배출 감축 목표 40%를 달성하려면 석탄화력 비중을 현재의 41.9%에서 21.8~15%까지 낮춰야 하는데, 앞으로 10년간 적용되는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제시된 것보다 15~21기의 석탄화력발전소를 더 폐쇄해야 한다”며 “(그런데도) 산업부는 대책은커녕 현황 파악조차 못 하고 있다”고 질타하기도 했다.

노동석 연구위원은 “탄소 중립이 꼭 가야 하는 길인 것 맞지만 논의는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이뤄져야 한다”면서 “제대로 된 비용 추산, 재생에너지 증가에 따른 전력 시스템 변화 문제 해결책 등에 대한 구체적 언급 없이 무책임하게 목표만 설정하며 오히려 탄소 중립의 취지를 훼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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