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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현상의 시시각각

대장동, 아수라, 마귀와의 거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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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현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실장
경기도 성남시 판교대장 도시개발구역 모습. 참여연대와 민변은 민관 합작 개발 방식으로 화천대유자산관리가 분양가상한제를 적용받지 않은 덕분에 분양매출 2699억원을 더 챙길 수 있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연합뉴스]

경기도 성남시 판교대장 도시개발구역 모습. 참여연대와 민변은 민관 합작 개발 방식으로 화천대유자산관리가 분양가상한제를 적용받지 않은 덕분에 분양매출 2699억원을 더 챙길 수 있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연합뉴스]

"민관 합작을 하려면 마귀의 돈을 써야 하고 마귀와 거래를 해야 한다."

한사코 책임론 회피 이재명 지사 #오히려 거친 언어로 뒤집기 시도 #그가 추구하는 권력의 모습인가

대장동 민관 합작 개발을 두고 이재명 경기지사가 TV 토론에서 한 말이다. 눈덩이처럼 커지는 의혹에도 '정치인으로서 유감'은 표했지만, 끝내 사과는 하지 않았다. 싫든 좋든 손잡았던 사업 파트너를 마귀로 모는 거야 입장이 곤궁해지니 그러려니 하자. 하지만 마귀를 묶어둘 충분한 힘이 있는데도 그러지 않은 것은 이해 가지 않는다. 무능이나 직무유기 외 다른 내막은 없는지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천축국으로 가는 삼장법사는 요괴 출신 호위대장 손오공을 긴고아(緊箍兒·머리를 죄는 테)로 길들였다. 대장동 개발의 '긴고아'가 될 법했던 '민간사업자 초과이익 환수' 조항은 협약서 결재 과정에서 이유도 모른 채 사라졌다.

이 지사의 대장동 의혹 대처는 그가 내세우는 '억강부약' '대동세상' 구호와는 거리가 멀다. 민간사업자들과 이권 집단은 하이에나들이 썩은 고기를 나누듯 개발 이익을 나눴다. 그 이익은 고스란히 이 지역 원주민과 입주민에게서 나온 것이다. 원주민은 공익을 이유로 갖고 있던 땅을 헐값에 수용당했고, 입주민은 민간 주도라는 이유로 높은 분양가를 감수했다. 최종 행정 권한자가 "나는 한 푼도 먹지 않았다"는 말로 피해 가는 건 설득력이 부족하다. 공정과 상식의 물음에 "법적으로 문제 될 건 없다"며 큰소리치다 결국 사법 잣대마저 피하지 못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떠오른다.

법적 추궁을 피해 '측근' 유동규마저 손절한 이 지사는 급기야 중앙정부에 책임을 돌렸다. "이낙연 총리 시절 집값이 올라 생긴 문제"라는 말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우회 공격이나 마찬가지다. "대장동 문제를 엄중히 보고 있다"는 청와대의 반응에는 이 지사에 대한 섭섭함이 읽힌다.

굳이 이 지사의 말이 아니더라도 정치는 '악마적 힘'과 관계하는 일이다. 막스 베버의 통찰이다. 다른 사람을 권력의 의지대로 끌고 간다는 점에서 정치는 기본적으로 폭력적이다. 베버는 이 악마를 제어하는 힘이 정치인의 '책임 윤리'라고 봤다. 직업 정치인에게 "뜻은 좋았다"는 '신념 윤리'만으론 부족하다. 결과까지 떠안는 책임감과 균형 감각이 없다면 정치가 아니라 탐권(貪權)일 뿐이다.

악마와 거래한 가장 유명한 주인공은 파우스트다. 요한 볼프강 괴테는 파우스트를 통해 욕망과 유혹이라는 인간의 보편적 문제를 풀어냈다. 파우스트는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저당 잡히고 젊음을 되찾았다. 거래의 조건은 단 하나. 파우스트가 "시간아 멈추어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고 외치는 순간, 영혼은 악마의 소유가 된다. 그 거래에서 결국 영혼을 뺏기게 된 파우스트는 그래도 마지막 순간 신의 구원을 받았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라는 용서의 말과 함께.

그러나 현실 정치에서 "노력했다" "의도는 좋았다"는 말로 실패를 덮을 수는 없다. 무책임한 정치나 정책으로 고통받는 국민에게 관용을 기대할 수는 없다. 선한 의지를 앞세워 어설픈 솜씨로 서민 고통을 가중한 문재인 정부의 정책들이 반면교사다. '대장동 아수라 극'은 엑스트라인 입주민·원주민에겐 손해를, 관람자인 국민에겐 허탈감을 안겨줬다. 그런데도 "오히려 칭찬받을 일"이라는 이야기가 쉬이 나올 수 있을까.

대장동 의혹을 계기로 이 지사의 입이 다시 거칠어지고 있다. 야당을 향해 '돼지' '마귀' '도둑' '부패지옥'이란 단어를 쏟아내고 있다. 성마른 단어들이 그의 정치적 자산이라는 '서민성'의 발로라면 실망스럽다. 이 지사에 대한 적잖은 비토 감정에는 여러 요인이 있다. 그중 하나는 책임 윤리는 팽개친 채 오로지 신념 윤리를 위해 정치에 내재한 악마를 풀어놓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다. 그의 전쟁 같은 언사는 이런 불안감을 더해준다. 대장동 의혹을 헤쳐가는 이 지사의 태도에서 그가 쟁취하려는 미래 권력의 성격을 짐작하는 유권자들이 많다.

이현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현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