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문소영의 문화가 암시하는 사회

‘이건희 컬렉션’에 대한 세 가지 오해

중앙일보

입력 2021.10.08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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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리움 재개관으로 돌아본 ‘이건희 기증관’

재개관한 리움미술관의 고미술 전시실. 현대미술가 아니쉬 카푸어의 조각과 고려 불화가 함께 전시되어 있다. 문소영 기자

재개관한 리움미술관의 고미술 전시실. 현대미술가 아니쉬 카푸어의 조각과 고려 불화가 함께 전시되어 있다. 문소영 기자

오늘 재개관하는 리움미술관에 대해 지인으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다. “국보 포함한 이건희 컬렉션이 국가에 기증됐다는데, 그럼 이제 리움엔 현대미술만 있나요?” 답은 “아니오”다. 이런 질문도 받았다. “이건희 기증관이 서울에 생긴다는데, 그런 세계적 컬렉션은 마땅히 지방에 미술관을 세워 해외 관광객을 끌어들여 빌바오 구겐하임처럼 지방을 활성화하도록 해야 옳지 않을까요?” 답은 “글쎄요”다.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1942~2020) 소장품의 대규모 국가 기증 이후, 삼성 창업자 가족의 대를 이은 컬렉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지대하다. 서울 국립현대미술관(이하 국현)에서 진행 중인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과 리움 재개관전은 10월 후반까지 예약이 꽉 차 있다. 미술계는 덕분에 예술 후원과 미술 전반에 관심이 증가하는 것을 반기면서도 과열된 관심에 우려하는 눈치다. 잘못 이해되는 부분들도 있고 소모적인 정치 싸움으로 이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리움 재개관을 계기로 ‘이건희 컬렉션’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를 살펴보고자 한다.

국가 기증품은 거대 컬렉션 일부
한국 문화사 연구에 막대한 공헌
외국관광객 흥행요소는 아직 적어
기증품 성격 바로 알고 접근해야

국가 기증으로 리움미술관에 남은 게 없다?

재개관한 리움의 고미술 상설전에 가면 김홍도의 걸작 ‘군선도’(국보 제139호) 등 익숙한 국보들을 만날 수 있다. 세계적으로 희귀하고 아름다운 고려불화 ‘아미타삼존도’(국보 제218호)의 경우, 1979년 일본 경매자 측이 한국인에게는 팔지 않겠다고 한 것을, 삼성 창업자인 고 이병철 회장(1910~87)이 국제 첩보작전 같은 과정으로 힘들게 사들여 국내로 환수한 것이다.

이 국보들을 비롯한 리움 소장품의 소유자는 삼성문화재단이다. 이병철 회장이 자신의 컬렉션을 재단에 기증한 것을 기반으로 1982년 호암미술관이 설립됐고, 여기에 이건희 회장과 부인 홍라희 여사의 컬렉션이 더해져 2004년 리움이 설립됐다. 삼성문화재단에 기증한 컬렉션은 더 이상 창업자 가족의 것이 아니므로 국가 기증에서 제외되었다.

그렇다면 리움 홈페이지 사진에서 사라진 유물들, 이를테면 국보 제219호 ‘백자 청화매죽문 항아리’ 국보 제309호 ‘백자 달항아리’(지금 리움에 전시된 것보다 큰 것)는 어떻게 된 것일까? ‘국가 기증 이건희 컬렉션’에 포함되지 않았고 지금 리움 전시에도 나와있지 않은데? 이들은 이 회장 가족의 개인 소장품으로 남아있는 것들이다. 이것을 쉽게 구분하는 방법은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웹사이트로 들어가서 문화재 검색을 해보는 것이다. ‘군선도’는 “소유자: 삼성문화재단”으로 나오는 반면 ‘백자 청화매죽문 항아리’는 “소유자: 이***”로 표기돼 있다.

과거에는 리움에서 삼성문화재단 컬렉션과 이 회장 일가 소장품을 함께 전시했으나 이번 국가 기증을 계기로 컬렉션을 정돈하면서 리움에는 재단 것만 남긴 듯하다. 나중에 가족 소장품도 다시 리움에 전시할 것인지 관계자들에게 문의해 보았으나 알 수 없다는 답변이었다. 지금 공석인 관장의 자리가 채워져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한편, 국보로만 보아도 삼성 창업자 가족이 지금까지 컬렉팅한 문화재와 미술작품의 규모가 엄청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번에 국가에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은 그 일부분이며, 삼성문화재단에 기증된 리움 소장품과 가족에게 남아있는 개인 컬렉션까지 모두 합친 것이 전체 규모다.

국가기증 ‘이건희 컬렉션’은 세계적 컬렉션?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에 나온 백남순의 ‘낙원’(1937).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에 나온 백남순의 ‘낙원’(1937).

‘세계적’인 것이 하나의 강박이 된 한국에서 ‘세계적’은 마치 ‘훌륭한’과 동일한 뜻인 것처럼 쓰인다. 그러나 그 본래 의미는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이다. ‘세계적’의 본래 의미로 볼 때, 삼성 창업자 가족이 지금까지 모은 컬렉션 전체는 단연 ‘세계적’이다. 그러나 그 중 ‘국가 기증 이건희 컬렉션’은 그 막대한 중요함과는 별도로 ‘세계적’이라고 표현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국현에 기증된 1488점 중에서 대표작으로 꼽히는 백남순(1904~94)의 ‘낙원’(1937)을 보자. 일단 그림 자체부터 매혹적이다. 동아시아의 무릉도원 산수화 전통과 유럽의 아르카디아(전원적 낙원) 그림 전통을 대담하게 결합해서 3.6미터 너비 병풍에 장대하게 펼쳐놓았다. 더구나 이 그림이 발견된 과정도 드라마틱하다.

나혜석과 더불어 제1세대 여성 서양화가였던 파리 유학파 백남순은 예일대 미대 수석인 남편 임용련과 함께 당대의 슈퍼 아티스트 커플로 활약했으며 평안도 오산학교에서 이중섭 같은 제자들을 키워냈다. 그럼에도 한국미술사에서 거의 잊혀졌었던 이유는 분단과 한국전쟁 때문이었다. 남편 임용련이 납북된 후 절망한 백남순은 한동안 붓을 꺾고 자녀를 돌보는 데 주력하다 미국으로 떠났다.

백남순이 다시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최초의 미술전문기자 이구열(1932~2020)의 탐사 덕분이었다. 1982년 그가 미국에 있는 백남순과 어렵게 연락이 닿아 한 인터뷰를 보고 백남순의 후배 교사였던 이가 연락을 해왔다. 백남순이 자신의 결혼 선물로 그려준 병풍 그림이 있다는 것이었다. 백남순의 전성기 작품 중 유일한 현존 대작 ‘낙원’이 발견되는 순간이었다. 그 후 이 그림은 이 회장 일가의 컬렉션이 되었고 2012년 대규모 수복 작업을 거친 뒤 이번에 국가에 기증되었다.

한국미술사 연구에 있어서 백남순의 ‘낙원’이 갖는 가치가 얼마나 크며 또한 그 작품을 수복하고 기증한 의미가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그 가치와 별개로 이 그림이 ‘세계적’인 작품인 것은 아니다. 이 그림을 보러 일부러 해외에서 올 관광객이 있을까? 또는, 백남순의 ‘낙원’을 뉴욕·런던 크리스티 혹은 소더비 경매에 내놓을 경우 한국인이 아닌 구매자를 찾을 수 있을까? 한국이 세계미술사를 주름잡는 시대가 오면 가능하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번에 국가에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에는 이런 작품이 대부분이다. 한국미술과 역사 연구에 있어서 감로처럼 귀중한 작품들이지만 ‘세계적’인 흥행성과는 거리가 있는 작품들 말이다. 이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다음 오해와 연관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빌바오 구겐하임’이 될 수 있다?

지난 7월 문체부는 국가 기증 ‘이건희 컬렉션’을 한데 모아 가칭 ‘이건희 기증관’을 서울 송현동 부지(국현 근처)나 용산 부지(국립중앙박물관 옆) 중 한 군데에 세울 계획을 발표했다. 그 전까지 전국 수십여 개의 지자체들이 ‘이건희 미술관’ 유치를 위해 과열 경쟁을 벌였는데 모두 내세운 것이 ‘빌바오 효과’였다. 스페인의 쇠락한 철강 도시 빌바오가 구겐하임 미술관 유치로 세계인이 찾는 관광도시로 거듭난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빌바오 효과’를 거두려면 미술관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들로 구성돼 있거나 화려한 볼거리가 많아야 한다. 그런데 국가 기증 ‘이건희 컬렉션’은 그보다 학술적·역사적 가치가 큰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국현 기증품 중에 해외 거장 작품도 존재하지만, 모네·고갱·르누아르·피사로·샤갈·달리·미로의 그림 각 1점씩 7점과 피카소의 도예작품 112점이 전부다. 물론 회화 7점은 하나 하나가 국립미술관 예산으로 엄두내기 어려운 귀중한 기증품이다. 그러나 그 그림 7점 보겠다고 외국에서 관광 올 사람이 몇이나 될까? 또한 국박에 기증된 9797건의 문화재 중에는 책·지도·문서 등 전적류가 거의 절반인 4176건이다. 중요한 연구 자료이지만 화려한 볼거리는 아닌 셈이다.

그러니 ‘이건희 미술관으로 빌바오 효과를 만들자’는 것은 기증자의 의도와 기증품의 성격을 제대로 알아보지 않은 생각이다. 심지어 이미 국박과 국현에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을 다시 한데 모아 ‘이건희 기증관’을 세우겠다는 정부 결정도 학문예술 발전보다 정치적인 이해가 큰 것으로 보인다. ‘이건희 컬렉션’은 본래 국박과 국현의 소장품 사정을 고려해서 그 미술사적 공백을 메워주는 차원으로 기증된 것이기 때문에, 국박과 국현의 기존 소장품과 어울려 있을 때 더욱 빛이 나고, 따로 떼어 모아놓으면 그 자체만으로는 완결성이 없어 보일 수 있다.

‘이건희 컬렉션’은 원래 기증된 대로 국박과 국현에 놓아두고 대규모 기증을 수용할 새 수장고를 짓고, 기존의 주요 전시실이나 새 수장고 건물에 이 회장의 이름을 붙여 그 뜻을 기리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이름을 건 별도의 미술관을 세우겠다고 이미 결정된 이상, 그나마 서울의 국박이나 국현 옆에 세우겠다는 지금 계획이 낫다고 본다. 연구 협조가 원활해질테니 말이다. 부디 ‘이건희 컬렉션’을 따로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서, 국박과 국현과의 원활한 협조를 통해 고대부터 현대까지 이어지는 한국예술 통사의 빈틈을 메우고 제대로 세우는 미술관이 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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