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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호모 볼란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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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현예 기자 중앙일보 도쿄 특파원
김현예 P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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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부터 과학에 유독 관심이 많았던 파우스토 베란치오(1551~1617)의 눈에 들어온 건 130여년 전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스케치였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성직자이자 학자였던 그는 골똘히 이 그림을 연구하다 자신만의 스타일로 변형했다. 사각형 천을 범포(帆布) 형태로 바꾸고, 네 귀퉁이를 단단한 줄로 묶은 뒤 이를 사람의 허리춤에 연결한 형태였다. 말하자면 낙하산의 시조 격인 셈이다. 1610년대에 이 그림을 담은 책을 발간했는데, 제목은 ‘호모 볼란스(Homo Volans)’. 하늘을 나는 인간(flying man)이란 의미다. 탐구심 높았던 그는 65세가 된 1617년, 투병 중에도 산 마르코 광장 종탑의 인근 다리에서 이 낙하산을 매고 뛰어내렸다고 전해진다.

자유로운 고공 낙하를 꿈꾸던 도전자들의 아이디어는 160여 년 뒤인 1783년 프랑스의 루이 세바스찬 르노르망이라는 발명가가 공식 첫 강하를 한 이래 지금의 낙하산(parachute)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이후 낙하산은 세계 제1차 대전에 활용되기 시작했고, 낙하산을 활용한 공수부대가 속속 만들어지며 전력화됐다.

하늘에서 펼쳐지는 위용 때문에 낙하산은 볼거리로도 활용됐는데,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1968년 프랑스 그로노블에서 열렸던 동계올림픽. 프랑스는 극적인 장면 연출을 위해 성화 봉송을 낙하산으로 하기로 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성화는 안타깝게도 300m 상공을 내려오다 그만 꺼져버렸다.

낙하산에 오명(?)이 붙은 것도 이즈음이다. 정치권 ‘낙하산 공천’을 시작으로 1970년대부터는 ‘낙하산 인사’가 지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고공에서 내리꽂히는 변칙 인사로, 정부 관리들이 이해관계가 깊은 기업이나 국영기업으로 갔다. 문민정부 김영삼 정권 시절에는 이 양상이 조금 달라졌다. 대통령 선거운동 사조직에 있던 인사를 챙기는 ‘내 편’ 인사가 도드라졌다. 그 후는 다들 아는 대로다. 정권은 바뀌어도 구태는 그대로다. 전 청와대 행정관의 20조원 뉴딜펀드 운영본부장 ‘낙하산 인사’ 논란에 고승범 금융위원장이 지난 6일 국감에서 “몰랐다” “인사는 업무 경험과 전문성을 고려한다”고 해명했다. 믿기 어렵지만 수장도 모르게 무경험 비전문가를 기용할 지경이니, 우리네 범인(凡人)들은 낙하산 인간이 얼마나 더 있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