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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금리 유지하면 소득 불평등 심화? 오만과 편견이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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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폴 크루그먼

폴 크루그먼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사진) 뉴욕시립대 교수가 금리 인상 저지의 기치를 들었다. 저금리 기조로 인한 자산 가격 상승으로 불평등이 심화한다는 주장을 반박하면서, 금리 인상에 따른 경기 둔화로 고용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를 드러낸 것이다. 인플레이션 장기화 우려 속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금리 인상 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상황에서다.

크루그먼 교수는 5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오만과 편견, 그리고 자산 가격’이라는 칼럼에서 “저금리가 불평등을 키우지는 않는다”며 “저금리로 인해 불평등이 심화했다는 사람들의 말은 무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크루그먼은 저금리 기조를 둘러싼 좌우 진영의 비판을 도마 위에 올렸다. 보수 진영은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Fed가 유지하고 있는 저금리 기조로 인해 예금 이자 등의 자산 수익이 낮아졌다고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가 작심하고 반박한 건 저금리 기조를 둘러싼 진보 진영의 불만이다. 저금리로 인해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이 상승하며 빈부 격차가 더 벌어져 자산과 소득 불평등이 심화한다는 것이 이들의 논리다. 고소득층이 저소득층보다 더 많은 자산을 보유한 만큼, 자산 가격 상승의 이득을 볼 가능성이 크다는 게 좌파의 시각이다.

하지만 크루그먼은 진보 진영의 논리처럼 저금리 기조로 인해 소득 불평등이 심화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그가 예로 든 것이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의 배경인 19세기 영국의 경제 상황이다. 당시 영국은 토지를 소유한 상류층 지주가 소작농에게 거둬들인 지대(地代)로 생활하는 불평등 사회였다. 소작농이 지주에게 지불하는 지대는 수요와 공급의 논리로 작동했다는 게 크루그먼의 주장이다. 비옥한 땅에서 농사를 지으려는 소작농(수요)과 그러한 땅을 보유한 지주(공급)와의 상호 작용을 통해 지대가 정해졌다는 얘기다.

크루그먼은 “(소설에 등장하는) 다아시(연간 1만 파운드)와 빙리(연간 4000파운드)의 수입은 두 인물이 보유한 부동산의 가치를 나타낸 게 아니라 (부동산이 만들어내는) 수입을 보여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소설 속에서 귀족인 어머니와 부유한 신흥 귀족(젠트리) 아버지를 둔 다아시와 사업으로 재산을 불린 빙리의 지위를 보여주는 것이 재산이 아니라 수입이란 것이다. 산업혁명이 태동하던 이 시기에 지주나 젠트리, 사업가 모두 국채나 토지를 사거나, 산업자본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추구했고 이들의 선택을 좌우하는 것은 투자수익률이었다고 크루그먼은 강조했다.

그러면서 크루그먼은 Fed의 저금리 기조가 불평등을 심화한다는 주장을 반박했다. 인구 감소와 기술 발전 속도 둔화 등으로 인해 새로운 분야에 대한 산업 투자 등에 나서는 대신 국채에 투자하거나 19세기 지대와 같은 오늘날의 독점적 지대를 추구하기 위해 주식 투자 등에 나선다는 것이다. 크루그먼은 “이런 상황을 좋다고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저금리가 불평등을 심화한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오히려 Fed가 금리를 인상할 경우 경기 둔화 등이 야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Fed가 (저금리를 둘러싼 좌우 진영의) 불평·불만을 듣고 금리를 인상할 경우 경제는 약해지고, 완전고용에 계속 도달하지 못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과거의 경험에 비춰볼 때 완전 고용은 저임금 노동자들과 같은 일반적인 노동자들을 위한 최선책”이라며 “이들의 임금은 경제가 호황을 누릴 때만 상승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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