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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과 선박 조업 갈등 프랑스 "에너지 수출 끊을 수도" 으름장

중앙일보

입력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왼쪽)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지난 8월 공동기자회견을 여는 모습. [AP=뉴시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왼쪽)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지난 8월 공동기자회견을 여는 모습. [AP=뉴시스]

영국과 프랑스의 어업 갈등이 에너지 갈등으로 비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영국이 자국 근해에서 프랑스 선박의 조업 허가를 축소하려는 움직임에 프랑스가 "에너지 공급을 끊을 수 있다"고 맞서면서다. 프랑스의 유럽 담당 장관인 클레망 본은 6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프랑스와 유럽은 모든 옵션을 검토하고 있다"며 "모든 것이 가능하다. 그게 에너지일 수도 있고 다른 제품 및 기타 무역 조치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영국 프랑스 관계 악화일로 #英, 프랑스 선박 저지섬 조업 3분의 1 불허하자 #"저지섬 전력 95% 끊어버린다" 프랑스 으름장

앞서 영국은 지난달 29일 자국 근해(약 10~20km)에서 조업하겠다는 프랑스 소형 선박 47척의 신청건 중 12건만 허가했다. 5일 가디언에 따르면 프랑스 노르망디 해안 인근에 있는 저지섬(영국령)도 프랑스 선박의 섬 근해 조업 신청 건수의 3분의 1을 반려했다. 프랑스 어부들은 이에 반발해 저지섬 항구 밖에서 해상 시위를 벌였고, 영국은 함선 2대를 저지섬에 파견해 긴장이 고조된 바 있다.

프랑스도 저지섬과 영국을 향해 수출 중인 전력을 차단하겠다며 맞불을 놓고 나섰다. FT에 따르면 영국 전체에서 프랑스 수입 전력 사용량은 2.5%로 추산된다. 하지만 프랑스와 가까운 저지섬의 상황은 다르다. BBC에 따르면 저지섬은 전력 사용의 95%를 프랑스에 의존하고 있다. 영국 정부 문서에 따르면 영국의 전력 수입량 중 47%는 프랑스에서 들어온다. 본 장관은 유럽1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영국은 우리의 에너지 수출에 의존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6일(현지시간) 프랑스와 가까운 영국령 저지섬 세인트 헬레나 항구 앞에서 프랑스 국적의 선박이 해상 시위를 벌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6일(현지시간) 프랑스와 가까운 영국령 저지섬 세인트 헬레나 항구 앞에서 프랑스 국적의 선박이 해상 시위를 벌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프랑스는 영국이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 협정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다. 장 카스텍스 프랑스 총리는 이와 관련 "영국은 매달 새로운 조건을 제시하고 (조업) 허가를 연기한다. 이는 용납될 수 없는 행동"이라며 "영국은 자국의 서명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영국 수역에서 조업을 하려면 면허를 취득해야 하는데, 프랑스 어부들은 "저지 수역 조업 면허를 받는 과정에서 예고 없이 요구사항이 추가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앞서 영국은 유럽연합(EU)과의 브렉시트 협상에서 어업권과 관련, 우선은 기존처럼 영국 수역에서 EU 어획량 쿼터를 인정하기로 했다. 다만 올해부터 2026년 6월까지 단계적으로 영국 수역에서 EU 회원국 어선이 잡을 수 있는 어획량 쿼터를 줄이기로 합의했다. 첫해에 15%, 그 이후에는 2.5%씩 감소시킬 수 있다.

영국의 브렉시트 담당 장관 데이비드 프로스트는 "영국 해협에서 EU 조업 신청의 98%가 승인되었고, 영국은 매우 관대하게 허가를 했다"고 반박했다. 영국 내 브렉시트 주의자들은 영국 영해에서의 조업권을 ‘주권 사수’의 문제로 보고 있다. 영국과 영-불 해협을 사이에 두고 있는 프랑스 어부들은 특히 어획량이 풍부한 저지섬 인근의 조업 가능 여부에 민감하다. 이런 탓에 양국간의 어업 분쟁은 브렉시트 협상 마지막 순간까지 걸림돌이 된 바 있다.

오커스 이후 급랭…英 존슨, 불어로 비아냥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프랑스는 최근 미국·영국·호주의 신 안보동맹 '오커스(AUKUS)'의 발족과 함께 세 나라와의 관계가 급냉각된 상태다. 미국과 영국이 호주에 핵잠수함 기술을 지원하기로 하면서 호주가 앞서 프랑스와 맺은 77조 원짜리 잠수함 계약을 파기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첨예한 갈등 소재인 어업권 문제까지 또다시 불거지면서 두 국가의 관계는 어느 때보다도 악화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지난달 22일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미국 방문 중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겨냥해 비아냥거렸다. 프랑스어를 섞어가며 "정신 차려라" "그만 좀 해"라고 한 것이다. 외신들은 두 국가의 갈등이 정상 간의 감정싸움으로 비화됐다고 전했다.

FT는 전문가를 인용해 "불행히도 마크롱 대통령이 어려운 선거(내년 4월 대선)를 치르는 국면에 돌입했고 영국은 자국내 정치적 이익을 이유로 EU를 희생양 삼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양국 관계는 당분간 일촉즉발 상황이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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