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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대출 막히자 중소기업에 눈돌린 은행…문제는 착시효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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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금융당국의 가계 대출 억제로 운신의 폭이 좁아진 은행들이 기업 대출을 늘리고 있다. 가계 대출을 제한적으로 취급할 수밖에 없어 '금리 인상기' 프리미엄을 누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기업 금융에서 영업 활로를 찾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가계 대출이 막힌 자영업자가 개인사업자 대출로 눈을 돌리는 것으로도 풀이된다.

 서울 종로구 시중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연합뉴스

서울 종로구 시중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연합뉴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5대 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기업 대출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가 본격화한 지난해 3월 452조 8695억원에서 올 6월 508조 4654억원으로 12% 증가했다. 기업 대출 증가를 견인한 것은 개인사업자 대출을 포함한 중소기업 대출이다.

이 기간 중소기업(개인사업자 포함) 대출은 379조9441억원에서 439조8194억원으로 약 60조원 늘었다. 증가한 60조원 중 40조원은 개인사업자들이 일으킨 대출이다. 같은 기간 대기업 대출은 오히려 약 5조원 줄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글로벌 기업은 직접 채권을 발행해 돈을 조달할 수 있는 데다 글로벌 은행에서도 돈을 빌릴 수 있는 만큼 국내 은행 의존율이 낮다"며 "반면 중소기업은 은행의 진출 가능 영역이 상대적으로 크다"고 설명했다. 같은 기간 가계 대출 증가율과 증가액은 모두 중소기업 대출 증가세에 못 미쳤다.

시중은행 대출 증가 추이.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시중은행 대출 증가 추이.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기업대출 중에서도 중소기업대출이 크게 늘어난 데는 당국의 가계 대출 규제가 영향을 미쳤다. 고객들이 예치한 돈을 대출로 내주며 주는 이자와 받는 이자의 차액인 예대마진이 은행의 핵심 수익원이다. 증시가 주춤하고 예·적금 금리가 오르며 은행으로 몰려드는 '길 잃은 돈'은 늘고 있지만, 이 돈을 가계대출로 굴리기 힘들어지며 개인사업자와 중소기업에 빌려주는 것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가계대출은 진입 장벽이 낮아 인터넷전문은행과도 경쟁해야 하지만 기업 금융은 대출과 외환 업무 등이 결합한 경우도 많아 인터넷은행이 진출하기 어려운 분야"라고 말했다.

부실 차주 못 가려내…리스크 관리 숙제

코로나19도 중소기업 대출이 늘어난 요인 중 하나다. 은행연합회가 집계한 5대 은행의 업종별 대출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3월부터 올 6월 사이 전체 업종 중 코로나 타격 업종인 숙박음식업(17.5%)과 도소매업(14.7%)의 대출이 가장 가파르게 증가했다. 금융권은 지난해부터 코로나19 피해 중소기업·소상공인대출을 늘리고 만기연장과 상환유예를 지원해왔다.

문제는 중소기업 대출의 부실화 가능성이다. 금융권에서는 원금 상환은 고사하고 이자도 내지 못하는 기업을 회생이 어려운 '좀비 기업'으로 보는 데 금융당국의 계속된 이자 상환 유예 조치로 시중은행의 부실 차주 분류 작업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병윤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경제학 박사)은 "부실대출 비율을 계산할 때 분모인 전체 대출은 즉시 늘어나는 반면 분자인 부실대출은 부실로 분류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데다 금융당국의 만기 연장 조치 등으로 부실채권 규모가 작아 보이는 착시 효과가 있다"며 "겉으로 드러난 부실 채권 비율이 낮다는 점에 안심하기보다 리스크 관리에 힘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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