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이상언의 시시각각

백신 미접종자를 위한 항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이상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코로나19 유전자 증폭 검사(PCR)를 위한 검체 채취에 응하고 있는 시민. 프리랜서 김성태

코로나19 유전자 증폭 검사(PCR)를 위한 검체 채취에 응하고 있는 시민. 프리랜서 김성태

“우리가 살기 위해선 합리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이 몇 안 남은 통조림을 최대한 아껴야 합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죄송한 말이지만, 오늘내일하시는 노인분께는 더 이상 햄 통조림을 지급하지 않는 것이 우리 모두를 위한 합리적인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소수 희생 요구가 전체주의 본질 #이미 자영업자에게도 양보 강요 #'다수 의지' 위험성 역사가 증명 #

김동식의 소설집 『회색인간』의 단편 ‘무인도의 부자 노인’에서 젊은 남성이 이렇게 말했다. 배 침몰로 10여 명이 무인도에서 표류하게 됐고, 가진 식량은 가방 하나 분량의 햄 통조림이 전부인 상황. 그 남성은 주장을 이어갔다.

“전쟁 상황에서 부상병들이 막사로 실려 오면, 너무 크게 다친 병사들은 아예 치료를 하지 않습니다. 그들을 치료한다고 해서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르고, 그 의약품을 다른 병사를 살리는 데 쓰면 더 많은 병사를 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작가 기 드 모파상(1850∼1893)의 단편소설 ‘비곗덩어리’ 에도 유사한 장면이 등장한다. 보불전쟁 통에 귀족 부부, 혁명적 지식인, 수녀, 매춘부 등 열 명이 한 마차를 타고 피란을 가다가 프로이센군과 맞닥뜨렸다. 프로이센 장교가 매춘부에게 잠자리를 요구하며 길을 열어주지 않았다. 매춘부가 적과의 동침을 거부하자 마차 동승자들이 ‘숭고한 결단’을 촉구했다. 수녀는 “의도가 순수한 죄는 죄가 아니다”고 설득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나치는 건전한 사회질서를 확립하고 공동체의 번영을 이룩한다는 명분으로 유대인을 격리하고 학살했다. 제국주의 시대 일본은 장애인들이 2세를 갖지 못하게 불임시술을 했다. ‘우수한 유전자’를 가진 국민이 많게 하겠다는 생각에서였다. 한센병 환자도 강제 불임시술을 받아야 했다(한센병은 유전 질환이 아니다). 해방 뒤 한국에서도 한동안 한센병 환자들이 자녀를 갖지 못하게 하는 조치가 이뤄졌다.

집단을 위한 개인 희생 정당화. 전체주의의 본질이다. “모든 것은 국가에 있고, 국가 외에는 어떤 것도 없으며, 국가에 반대하는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베니토 무솔리니의 주장이었다.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 북한 노동당 구호다.

K방역은 자영업자의 희생 위에 구축됐다. 모든 자영업자가 억울하게 됐다는 말은 아니다. 업태나 영업 방식의 차이 때문에 피해를 보지 않았거나 오히려 장사가 잘된 곳도 있다. 하지만 대다수는 그렇지 않다. 장사를 접은 업자가 셀 수 없이 많다. 전 세계의 자유민주주의 국가 중 정부가 강제로 영업에 제한을 가하고서 피해 보상을 제대로 하지 않은 나라를 한국 말고는 알지 못한다. 미국ㆍ영국ㆍ독일ㆍ일본 등의 나라 모두 피해에 버금가는 실질적 보상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K방역을 자랑할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한국 정부는 한발 더 나아가 코로나19 백신 미접종 불이익을 거론한다. ‘페널티’가 아니라 접종자에 대한 ‘인센티브’라고 주장하는데, 그 경계가 불명확하다. 정부 관계자가 “유전자 증폭 검사(PCR) 음성 확인서를 지참하지 않으면 다중시설 이용이나 행사 참여 등을 제한하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공개석상에서 말했다. 미접종자는 사람 모이는 곳에 가려면 매번 사전에 PCR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말이 논란을 부르자 “불이익이 없도록 하겠다”고 국무총리가 해명했지만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를 정확히 설명하지 못한다.

접종 대상자 중 접종받지 않은 국민이 대략 500만 명이다. 그중에는 알레르기ㆍ약물 거부 반응 등의 신체적 특질을 가진 사람, 종교적ㆍ의학적 신념에 따른 거부자, 부작용 공포가 남달리 큰 이가 있다. 정부가 부작용 책임 약속을 지키지 않아 기피자를 늘린 면도 있다. 팬데믹이라는 특수 상황이라고 해서 소수를 압박하는 다수 의지가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전체주의자는 언제나 공동체의 위기를 말하며 소수의 희생을 강요하거나 미화했다. 이게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배웠다.

이상언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