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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안혜리의 시선

김만배의 삶, 김경율의 삶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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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좋은 형님들"과 어울린 화천대유 최대주주 김만배씨(왼쪽)와 화천대유를 좇는 김경율 회계사. [중앙포토]

"좋은 형님들"과 어울린 화천대유 최대주주 김만배씨(왼쪽)와 화천대유를 좇는 김경율 회계사. [중앙포토]

기사 안 쓰는 기자, 수상한 인터뷰
"좋은 형님" 챙기며 막대한 이익
'옳은 일' 김경율, 인맥 80% 단절
누구 삶이 더 나은 삶인가

기사 안 쓰는 기자, 수상한 인터뷰 #"좋은 형님" 챙기며 막대한 이익 #'옳은 일' 한 김경율, 인맥 80% 단절

두루두루 잘 지내는 좋은 '형'이었지만 취재 잘하고 기사 잘 쓰는 좋은 '기자'는 아니었다. 모두 형을 좋아했지만 아무도 기자로 인정하진 않았다. 후배 기자더러 "형"이라 부르라 하고 본인 역시 유력 법조인들을 죄다 "형"으로 부르며 30년 기자생활 대부분을 보낸 법조 출입처에서도, 그리고 그가 성남시 대장동 개발 사업으로 수천억 원대 대박을 터뜨릴 때 여전히 현직이었던 소속 언론사에서도 그랬다. 대장동 특혜 의혹의 중심에 선 화천대유 지분을 100% 소유한 김만배 전 머니투데이 부국장 얘기다.
그가 2012년 후배 기자와 공저한 『BBK 취재파일』에 쓴 셀프 저자 소개를 보면 '법조브로커 사건, 론스타 수사, 검찰 간부와 감사원·금감원 고위직이 연루된 김흥주 게이트를 단독 보도'한 유능한 특종 기자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동료 법조 기자들 기억은 전혀 다르다. 실제로 그의 기사는 아예 찾기조차 어렵다. 머니투데이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지난 5년 치 기사를 전부 검색해봐도 그가 단독으로 쓴 건 칼럼 네 건이 전부다. 그나마 2019년 5월 (훗날 화천대유 고문이 됐고, 앞서 지난해 7월 이재명 경기지사에 대한 무죄 취지 판결 전후 김씨와 8번 만났던) 권순일 대법관의 강제징용 관련 소수의견을 소개한 '판결은 집행돼야 한다'는 칼럼 정도만 그의 전문 분야이고, 나머지는 뜬금없다. 2019년 10월 '평범한 삶이 가장 위대한 삶이다'라는 칼럼은 당나라 시인 백거이의 장편 시 '중은(中隱)'으로 절반을 채웠고, 1년 6개월 지나 지난 3월엔 마지막으로 조훈현 국수가 2015년 낸 책을 인용해 '생각은 반드시 답을 찾는다'라는 칼럼을 썼으니 하는 말이다. 이쯤 되면 언론계에서 가장 원고료가 비싼 기자가 아니었나 싶다.
그런 그가 대장동 개발 사업을 위해 화천대유를 설립하기 7개월 전인 2014년 7월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을 인터뷰했다. 통상 정치부나 해당 지역 주재 기자가 할법한 인터뷰를 업무상 아무 관련 없는 법조팀장이 한 것도 이례적이지만 평소 출입처 기사도 잘 안 쓰던 기자가 뜬금없이 현직 지자체장인 정치인을 만난 거라 더욱 수상하게 비친다. 인터뷰 내용 역시 굳이 법조 기자가 해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려운 일방적인 칭송으로 채워져 있다.
대장동 관련 특혜와 불법 여부는 수사를 통해 차차 드러나겠지만 이재명 경기지사의 정치생명을 되살려 대권 가도를 달리게 한 권순일 전 대법관과 지저분한 비리 사건에 안 끼는 데 없는 박영수 전 국정농단수사 특검, 김수남 전 검찰총장, 강찬우 수원지검장, 검찰 출신 곽상도 의원 등 화천대유에 줄줄이 엮인 법조계 거물 명단을 보면 정치 성향을 넘나드는 김만배씨의 탁월한 사회생활 능력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김씨 스스로 경찰 조사받으러 가며 "좋아하는 형님들"이라 부른 이들 모두 일부 드러난 수억 원대의 고문료가 하찮게 느껴질 정도로 김씨로부터 대단한 경제적 혜택을 받았다. 곽상도 의원 아들의 퇴직금 50억원, 박영수 특검 딸의 아파트처럼 좋아하는 형님들의 아들·딸까지 살뜰히 챙겼으니 최소한 이들에게 김씨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여기 김만배씨와 정반대에 선 '나쁜' 사람이 있다. 권력으로부터 배신자 낙인이 찍혀 공공기관 용역은 아예 뚝 끊겼고, 일주일 내내 귀찮을 정도로 참석해야 했던 온갖 위원회 위원 자리도 다 잘렸으니 그의 사회생활 능력은 굳이 거론할 필요조차 없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집요하게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을 공론화하며 돈 흐름을 좇고 있는 김경율 회계사 얘기다. 문재인 정부의 최대 실세그룹인 참여연대 집행위원장 출신이지만 조국·윤미향 사태 때 진영 논리에서 벗어난 입바른 소리를 하며 참여연대와 거리를 두느라 평생 쌓아온 인적 네트워크의 80%가 떨어져 나갔다. 역대급 인력난 덕에 지금 회계사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는데 누군가에게 '나쁜' 인간이 된 터라 이런 기회도 제대로 못 잡은 채 "시간적 여유를 갖고 가늘고 길게" 살아가고 있다. 어떤 좋은 사람은 남의 아들·딸까지 챙겼다는데 이 나쁜 남자는 '대깨문'(문재인 대통령 열성 지지자)인 아내의 간곡한 만류도 뿌리치고 옳은 일 하겠다 나선 통에 정작 자기 딸한테도 원망을 듣고 있다. 그는 웃으며 말하지만 오로지 옳다고 믿는 일을 위한 선택이 그의 삶을 얼마나 고되게 만들었는지 감히 짐작하기 어렵다.
사회생활 잘하는 좋은 사람끼리 자기 맡은 일 열심히 하는 대신 서로 챙겨주는 삶을 살면서 동료 언론인· 법조인을 욕보이고 나라를 망가뜨리는 동안, 이렇게 서툴게 사회생활하며 스스로 욕 얻어먹는 김 회계사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어 이 나라가 더는 추락하지 않고 굴러가는 게 아닐까. 눈 앞의 사익 대신 미래를 위한 공익에 헌신하는 김 회계사에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