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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와 골목상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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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박수련 기자 중앙일보 산업부장
박수련 팩플 팀장

박수련 팩플 팀장

“카카오 같은 대기업이 꽃배달, 영어교육, 실내 골프연습장, 네일숍, 미용실, 대리운전, 퀵서비스… 좀 창피하지 않습니까? ”

지난 5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감장. 김한정 의원(더불어민주당 재선)이 김범수 카카오 의장에게 던진 질의다. 대기업이 ‘소상공인들로부터’ 수수료 장사나 하는 걸 창피한 줄 알라는 핀잔이었다. 김 의장이 “스타트업을 지원해 각 시장을 활성화하려 했다”고 설명하자, 호통은 이어졌다.

“그게 무슨 혁신입니까. 넘어서는 안 되는 사업이란 게 있습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리, 넘어서면 안 되는 선이 있다? 김 의원이 언급한 ‘꽃배달~퀵서비스’가 중소기업 또는 생계형 적합업종은 아닌데…. 그럼에도 이날 카카오를 ‘골목상권 침범’으로 일방적으로 타박한 의원은 여럿이었다.

지난 5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공정거래위원회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김범수 카카오 의장이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지난 5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공정거래위원회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김범수 카카오 의장이 발언하고 있다. [뉴스1]

‘골목상권’. 국감에 불려 나간 기업인 중에 이 단어 앞에서 할 말 다할 수 있는 강심장은 많지 않다. 모바일 앱으로 책도 사고 빵도 배달해 먹는 소비자라도 ‘동네빵집과 동네서점은 보호해야 한다’는 데 수긍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따뜻한 마음이 골목상권의 생존까지 보장해주진 않는다는 걸 소비자도 안다. 대기업 프렌차이즈 대신 외국계 베이커리가 동네빵집을 위협한 지 오래고, 중고차 시장은 미끼와 허위 상품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이젠 소비자들이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바란다고 한다. 골목에도 적절한 경쟁은 필요하고, 디지털 시대엔 소상공인이 올라탈 ‘거인의 어깨’(플랫폼)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카카오에 지금 필요한 채찍은 골목상권 금지령이 아니다. 개념도 모호한 골목상권이란 성역만 잘 지키면 문제가 해결되나. 콜택시와 메신저 시장에서 카카오의 독과점 지위, 그래서 실종된 시장 경쟁, 자회사 쪼개기 상장으로 몸집을 키운 카카오의 지배구조 문제는 그대로 남는다.

국회가 이왕 ‘플랫폼 국감’이라는 판을 깔았으니 똘똘한 2등, 3등 플랫폼이 계속 나오도록 정부가 제 역할을 하는지 보길 바란다. 왜 카카오가 그 시장에 진출했느냐보다 왜 그 시장에선 카카오와 경쟁할 다른 플랫폼이 자라지 못했을까를 묻는 게 생산적이다. 국회나 정부가 그 역할을 잘했더라면, 콜택시 시장 90%를 장악한 독점 기업(카카오모빌리티)이 탄생하진 못했을 것이다.

정무위 국감 막바지에 김범수 의장은 이런 다짐을 한다. “저희는 골목상권을 침해하는 사업에는 절대로 진출하지 않을 거고, 만약에 관여돼 있다면 반드시 철수하겠다”고. 이 정도면 국감 초반 성과로 괜찮았다 싶은 의원들이 있다면 영화 ‘타다:대한민국 스타트업의 초상’(14일 개봉)을 보시길 바란다. 지난해 3월 국회에서 타다금지법이 통과된 후 스타트업 타다가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소비자는 왜 그 서비스에 열광했는지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다. ‘혁신이 무엇인지’ 고민이 깊어진 의원들께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