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얼굴인식·AI에 정보원 신원 들통…CIA 첩보망 붕괴 위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미국의 해외 정보·공작기관인 중앙정보국(CIA)이 최근 전 세계 지부에 ‘현지 정보원 관리가 위기에 처했다’고 경고하는 비밀 전문을 보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NYT에 따르면 CIA는 이 전문에서 ‘지난 수년간 전 세계 각지에서 미국을 위해 정보 수집을 했던 요원 수십 명의 신원이 드러났으며, 일부는 붙잡혀 처형당했다’고 털어놨다. 미 정보기관이 해외 지부에 보안과 방첩 문제를 대놓고 지적한 전문을 보낸 것도, 이 사실이 언론에 노출된 것도 드문 일이다. 비밀활동과 보안이 생명인 정보 세계의 특성상 이례적이다. CIA의 조치는 문제의 심각성과 조직의 고민을 잘 드러낸다는 분석이다.

전문은 “러시아·중국·이란·파키스탄 등 ‘적성 국가’들의 정보기관이 지난 몇 년간 CIA 정보원들을 추적하고 있으며, 정체가 드러난 일부는 이중 스파이가 됐다”고 밝혔다. 미국을 위해 일하던 정보원들이 적성국 정보기관의 회유·압박·위협에 따라 총구를 거꾸로 돌렸다는 것이다. 이중 스파이들은 미 정보기관의 움직임이나 요구, 관심 사안을 적성국에 알려주거나, 미 정보당국이 상황을 오판할 수 있는 역정보를 흘린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은 “CIA가 최근 들어 정보원을 지나치게 신뢰하고, 해외 정보기관을 과소평가하며, 정보원을 현지에 서둘러 심으려 하면서, 방첩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첨단 기술의 도입도 미 정보원의 정체가 발각되는 주요 요인의 하나가 되고 있다고 NYT는 지적했다. 전직 CIA 요원에 따르면 중국·러시아 등은 생체나 안면 인식, 인공 지능(AI), 해킹과 같은 최신 기술을 활용해 자국에서 활동하는 외국 요원을 추적하고 있다. 이를 적용하면 CIA 요원이 접촉하는 사람이 누구인지가 실시간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과거보다 정보원의 정체가 드러날 가능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심지어 CIA 통신망이 뚫리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NYT에 따르면 중국과 이란에선 CIA의 통신망이 뚫리면서 신원이 드러난 현지 정보원이 붙잡혀 처형됐다. CIA 정보원이 적성 국가·세력을 위해 이중 스파이나 공작 요원, 심지어 자폭 테러범으로 변신하는 사례도 있다고 전직 CIA 요원들은 전했다. 2009년 아프가니스탄 호스트의 CIA 전초기지에서 발생한 자살 폭탄 테러로 지부장을 포함한 CIA 요원 7명이 희생됐는데, 범인은 정보원으로 일하다 테러조직에 충성을 맹세한 이중 공작원이었다.

당시 CIA는 알카에다 지도부에 접근하려고 요르단에서 인터넷으로 이슬람주의 선전활동을 하던 팔레스타인계 의사를 정보원으로 포섭했지만, 그는 최종적으로 이슬람 극단주의를 선택했다.

미국을 노린 이중 스파이 활동도 늘고 있어 방첩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전직 CIA 요원인 중국계 미국인 제리 춘 싱 리는 중국 정부에 기밀을 넘긴 혐의로 지난 2019년 징역 19년을 선고받았다.

미국 비밀요원의 신원이 상대국에 발각되는 사례가 늘어난 것은 정보전 분야에서 CIA의 실력이 과거보다 퇴보했기 때문이란 지적도 나왔다. NYT에 따르면 전직 CIA 요원들은 “정보원 손실은 새로운 문제가 아니지만, 이런 전문을 지부에 보낼 정도라는 것은 정보 전력 문제가 외부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