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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조국과민족이 저격한다

백운규 전 장관님, 후배 공무원들 감방 보내고 잠이 옵니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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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과민족 전직 공무원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 연합뉴스.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 연합뉴스.

2017년. 정권이 교체되었습니다. 바뀐 정권은 과거 정권에서 일어난 부조리를 모조리 청산하겠다면서 정부부처별로도 대대적인 ‘적폐청산’을 했습니다. 산업통산자원부에서는 바로 이 적폐청산 과정에서 박근혜 정권 당시 한국서부발전 사장 선임 과정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이유로 운영지원과장이 구속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해인 2018년 1월, 담당 국장까지 구속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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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가 분위기는 뒤숭숭했습니다. "청와대와 부처 상급자 지시에 따라 사장 선임에 관여했을 뿐인데 실무 담당자가 징계도 아닌 구속까지 당한 것은 지나친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시키면 따라야 하고, 책임지라면 져야 하는 공무원 사회이기에 모두 숨죽인 상태로 넘어갔죠. 서슬 퍼렇던 정권 초였으니 더욱 그랬습니다. 국장은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만 운영지원과장은 결국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적폐청산 때문에 동료 공무원이 감옥에 가는 것을 보면서 마음 아팠지만, 당시 대다수 공무원에게는 마음 한쪽 희망이 있기도 했습니다. ‘적폐청산을 저토록 외치는 걸 보니 이번 정권에서 부당한 지시가 내려오는 일은 없겠구나’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 초대 산업통상부로 바로 당신, 백운규 장관님이 취임했습니다. 취임 일성은 문재인 대통령 공약 그대로 탈원전, 신재생에너지 확대로의 패러다임 전환이었죠. 당시 산업부에 이에 반대한 공무원은 없었습니다. 국민이 투표로 선택한 정권의 달라진 정책 방향이었으니까요. 탈원전이 바람직한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산업부 개개 공무원의 의견은 다 달랐을 것이지만, 새로운 정권이 정책 방향성을 정하면 공무원은 그것을 따라야 한다는 건 다들 알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너 죽을래?" 

탈원전을 추진하라는, 또 수자원 관리엔 환경부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라는 등의 장관님 지시에 공무원들은 해당 업무를 충실히 수행하는 것으로 답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 상식적인 업무처리에 장관님께서는 비상식적이고 부당한 업무지시를 지속적으로 내리기 시작했죠. 조직은 그때부터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월성 원전 1호기 운행 및 감사 일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월성 원전 1호기 운행 및 감사 일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원전을 조기에 폐쇄할 방안을 검토해보라"는 장관님의 요구에 담당 공무원들은 순전히 법적, 절차적, 경제적 한계를 검토한 후 "월성 1호기를 2년 반 더 가동할 필요가 있다"라고 보고했습니다. 장관님께서는 그때 "너 죽을래?"라고 실무자에게 욕설에 가까운 모욕적 발언을 하셨다지요. "너 죽을래?"라는 발언이 뒤늦게 알려져 큰 사회적 이슈가 되었을 때 산업부의 적잖은 공무원들은 "그것보다 훨씬 심한 말도 많았는데, 겨우 그 정도로 이슈가 되는 걸 보니 놀랍다"고 반응들을 했습니다. 단순한 폭언이 문제가 아닙니다. 지켜야 할 법과 절차, 그리고 조작하지 않은 경제 수치를 정리해 보고했을 뿐인데, 그 결과가 인격적 모욕으로 돌아오면 ‘왜 공무원을 해야 하는지’ 자괴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젊은 공무원일수록 그런 회의감은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인사개입은 또 어땠습니까. 전 정권에서 서부발전 사장 인사개입으로 운영지원과장이 구속되어 실형을 선고받는 것을 직접 본 부처가 산업통상자원부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원전 조기 폐쇄에 반대한다고 한국수력원자력 측에 인사상 불이익을 줄듯이 압박하지 않으셨나요. 박근혜 정권의 인사개입은 감옥에 갈 인사개입이고 문재인 정권의 인사개입은 국정과제 수행을 위한 필요악입니까?
청와대가 "안된다는 말을 하려면 설명하러 오지 말라"고 산업부 직원들에게 말했을 때 장관님은 어떤 조율을 했는지 묻고 싶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실무자 보고를 듣고 관련 내용을 장관님 나름대로 신중하게 검토하여 정책을 조정하려 하지 않고 그저 청와대 지시를 무조건 수행해야 한다고만 하셨지요.

"복지부동, 무능력, 반항" 폭언 일삼아

담당 공무원들은 끝내 장관님의 지시를 거역하지 못해 법을 어기고 말았습니다. 원전이 즉시 가동중단 될 수 있도록, 월성 원전의 경제성 분석을 조작하는 데 관여했으니 말이죠. 일을 저지른 후에는 감사원 감사를 무마하기 위해 관련 자료를 삭제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잘못으로 담당 공무원 두 명은 구속되어 구치소에 놓여있습니다.

대전지검은 지난해 12월 월성 원전 1호기 수사 후 산업부 공무원들에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결국 구속됐다. 구속영장이 청구된 날 밤 대전지검 모습. 7층 왼쪽이 형사5부 사무실. [중앙포토]

대전지검은 지난해 12월 월성 원전 1호기 수사 후 산업부 공무원들에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결국 구속됐다. 구속영장이 청구된 날 밤 대전지검 모습. 7층 왼쪽이 형사5부 사무실. [중앙포토]

장관님. 장관님은 공무원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부하직원으로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해야 하는 존재라 생각하시나요? 공무원뿐 아니라 조직에 속한 직장인이라면 당연히 상급자의 지시를 따라야 합니다. 그러나 공무원은 일반 직장인과 다른 존재이기도 합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으면서, 조국과 민족을 위해 봉사한다는 직업윤리를 가지고 맡은 일을 법과 절차에 따라 수행하는 것이 사명인 존재입니다. 바로 이 점을 장관님께서는 간과하셨던 듯합니다. 장관님께는 공무원이 절차와 법에 따라 일을 하면서 "(지시엔) 문제가 있다"라고 말하는 것을 "복지부동하는 것이고 무능력한 것이고 반항하는 것"이라 자주 토로하셨던 걸 보면 말입니다. 그러나 정권과 관계없이 신념과 이성에 따라 판단하고 그것을 견지하는 것이 공무원들의 역할입니다. 그러기 위해 공무원의 신분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지난 2월 월성 1호기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에 관여한 혐의 등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이 대전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월 월성 1호기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에 관여한 혐의 등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이 대전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장관님. 그 마땅히 해야 할 역할을 저버린 공무원들은 지금 죗값을 치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부당한 업무처리를 지시한 장관님은 어떠한가요? 재판을 앞두고 있기는 하지만, 구속 영장이 기각되면서 아직까지는 어떠한 법적 책임도 지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장관님. 재판을 앞두고 여러 방어논리를 준비할 것이고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 장관님께 보장된 방어권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재판을 준비하시면서 장관님 때문에 '먼저' 감옥에 가 있는 과거 부하 직원들을 한 번쯤 다시 생각해보시면서 잘못을 반성하셨으면 합니다. 그들은 지시를 수행한 것만으로 지금 감옥에서 밤잠을 못 이루며 있을 것인데, 지시한 장관님께서 아무 문제 없이 사회생활을 영위한다는 것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지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설령 법망을 피하신다 해도 말이죠.
서른 중반인 제가 연수원 교육을 받고, 부처를 배치받았을 때만 하더라도 산업통상자원부는 상당히 인기 있는 부처였습니다. 실물경제가 작동하는 각 산업 분야에서 일해나가면서 전문성을 쌓을 수 있다고 여겨졌었거든요. 대일본, 대중국 무역의 복잡성이 커진 상황에서 산업 정책에 한 몸 바쳐 국가 산업이 조금 더 성장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나름의 사명감으로 산업부를 택해 일하는 선후배가 많았습니다.

외면받는 산업부 

그러나 요즘은 달라졌습니다. 행정고시를 붙고 산업부에서 과장으로 일한 공무원 중 10여 명이 장관님이 계실 때 그만두고 민간으로 나갔습니다. 2030세대 신규 공무원들에게도 산업부는 웬만하면 가려 하지 않는 부처 중 하나로 전락했습니다. 최근 재경직으로 붙은 신입 사무관들이 "산업부에 여섯 자리나 새로 났다고, 혹시 산업부를 갈까 걱정된다"고 하소연을 하더군요. 산업부에서 일하면 본인도 나중에 감옥 가게 되는 것 아니냐고, 부당한 지시를 받고 그걸 억지로 수행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겁이 난다고 합니다. 꿈과 열정을 품고 한국 경제의 미래, 전기차와 수소차, AI 시대의 산업구조 개편방향 등을 고민하던 친구들이 가던 곳이 산업부였는데 말입니다.
장관님께서 만든 산업부의 바뀐 풍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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