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이재명 경기도지사에게 ‘무죄’를 안겨준 대법원 판례가 이번엔 오세훈 서울시장을 살렸다. “선거 TV토론 발언에 대한 허위사실공표죄 처벌은 신중히 하고 검찰과 법원 개입을 최소화해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해야 한다”는 이 지사를 살린 바로 그 판례다.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제2부(부장 김경근)는 6일 서울시장 보궐선거 과정에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당한 오세훈 서울시장에 불기소 처분을 했다.
오세훈 TV토론 “내곡동 안 갔다” 발언…與 허위사실공표 고발
오 시장은 지난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열린 후보자 TV토론회에서 한 발언으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받았다. 오 시장(당시 후보자)은 과거 서울시장 시절 아내와 처가가 소유한 서울 내곡동 땅을 보금자리주택지구로 지정하는데 관여하고 ‘셀프 보상’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았다. 토론회에 앞서서는 “오 시장이 2005년 처가의 내곡동 땅 측량 현장에 왔다”는 언론 보도도 나왔다.
상대 후보였던 박영선 후보는 토론회에서 이를 집중적으로 캐물었다. 박 후보는 “측량 현장에 갔냐 안 갔냐”고 물었고 오 시장은 “안 갔다. 그러나 기억 앞에서는 겸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박 후보는 “언론 보도에서는 측량 당시 까만 선글라스를 낀 사람이 오 후보였고, 점심으로 생태탕을 먹었다고 한다”며 몰아세웠다. 민주당은 측량 현장에 안 갔다고 부인한 오 시장을 허위사실공표 혐의로 고발했다.
檢 “오 시장 발언, 이재명 판례 따라 허위라 해도 처벌 못 해”
공소시효를 하루 앞둔 이날 검찰의 결론은 “오 시장의 발언이 허위라고 하더라도 처벌할 수 없다”로 귀결됐다. 검찰은 오 시장 발언의 진위를 따지기 위해 2005년 측량 당시 현장에 있었던 경작인과 측량팀장, 생태탕 식당 모자, 오 시장 가족 등 20여명을 조사했다고 한다. 오 시장도 지난 2일 검찰에 출석해 14시간 동안 조사를 받았다. 수사 과정에서 관계인들의 진술은 엇갈렸고 오랜 시간이 흐른 만큼 객관적 증거는 부족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지사 판례는 돌파구가 됐다. 오 시장의 발언이 허위라 하더라도 당시 발언이 후보자 토론회에서 나왔고, 단순히 ‘처가의 토지 보상에 오 후보자가 관여했느냐’라는 제기된 의혹을 부인하는 취지라면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다.
대법원은 지난해 7월 이 지사 사건에서 “토론회의 주제나 맥락과 관련 없이 일방적·적극적으로 허위 사실을 표명한 것이라는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후보자 토론회에서 한 발언을 허위사실공표죄로 처벌하는 데 신중해야 하고, 검찰과 법원의 개입을 최소화해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당시 “친형 강제 입원 없다” 무죄…오세훈 ‘파이시티’ 발언 등도 불기소
2018년 이 지사는 경기도지사 선거 후보자 토론회에서 “친형 강제 입원 과정에 개입한 적 있느냐”는 상대 후보자 질문에 “그런 일 없습니다”라고 답한 게 문제가 돼 2심에서 당선 무효형을 받았다. 그 뒤 이 지사는 대법원 전합에서 7대5로 무죄 취지 파기환송 판결을 받으며 정치적으로 ‘기사회생’했다. 이 지사를 살린 이 판결은 최근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이 불거진 ‘화천대유자산관리’의 고문으로 재직한 권순일 전 대법관이 낸 의견이 주된 근거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권 전 대법관은 의혹이 불거진 뒤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고문직과 판결은 무관하고, 지금도 판결이 옳다고 생각한다”고 해명했다.
이 밖에 검찰은 경찰이 기소의견으로 송치한 ‘파이시티 사업 관련 발언’과 ‘보수단체 집회 참석 관련 발언’ 관련 오 시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도 이 시장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취지에 따라 불기소 처분했다. 지난 4월 후보자 토론회에서 오 시장은 “파이시티는 제 임기 중 인허가 한 사안이 아니다”라고 답했다가 시민단체로부터 고발당했다. 또 전광훈 목사가 이끄는 보수단체 집회에 대해 “한 번 나가서 연설했다”고 말했다가 거짓이라며 고발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