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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 마르코스 아들 대선 출마···두테르테 딸과 손 잡을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내년 대선출마를 선언한 페르디난드 봉봉 마르코스 주니어 전 상원의원이 6일 마닐라 시내에서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내년 대선출마를 선언한 페르디난드 봉봉 마르코스 주니어 전 상원의원이 6일 마닐라 시내에서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필리핀의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아들인 봉봉 마르코스 주니어(64)가 5일(현지시간)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현 대통령의 딸 사라 두테르테(43) 다바오 시장과 더불어 2세대 정치인의 행보에 필리핀 정가가 주목하고 있다. 내년 5월 치러질 필리핀 대선엔 집권당인 PDP라반 소속 복싱 영웅 매니 파퀴아오 상원의원이 가장 먼저 출사표를 던지고 링 위에 올랐다.

뉴욕타임스와 BBC 등에 따르면, 봉봉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영상에서 “필리핀에 통합의 리더십을 가져오겠다”면서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주요 공약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경제위기 극복이다. 그는 파르티도 연방당(PFP) 소속으로, 아버지 마르코스 집권 시절 여당이었던 신사회운동당(KBL)도 최근 그를 지지했다.

2018년 4월 아내(왼쪽)와 함께 지지자들을 만난 페르디난드 봉봉 마르코스(가운데). 로이터=연합뉴스

2018년 4월 아내(왼쪽)와 함께 지지자들을 만난 페르디난드 봉봉 마르코스(가운데). 로이터=연합뉴스

봉봉은 아버지 집권 시절이던 20대 때 아버지 마르코스의 고향인 북일로코스주의 부주지사로 정계에 입문했다. 1986년 아버지가 축출되자 가족과 함께 하와이에 망명했다가 1991년 필리핀으로 돌아와 북일로코스에서 하원의원과 주지사를 역임했다. 2010년 상원의원에 당선됐고 2016년엔 부통령에 도전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최악 독재자 父…장관에 아내, 보좌관에 아들

미국 방문 중인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필리핀 대통령. 중앙포토

미국 방문 중인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필리핀 대통령. 중앙포토

아버지 마르코스는 1965년 대통령에 취임한 뒤 21년간 장기집권한 인물로, 필리핀에선 최악의 독재자로 꼽힌다. 한국에선 1917년생 동갑이자, 1972년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는 점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비견되기도 한다. 대학생 때 아버지의 정적을 살해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복역했지만 항소 끝에 무죄 판결을 받고 변호사로 활동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에 입대해 항일투쟁을 벌이다 포로로 잡혔지만, 극적으로 탈출했다.

전후 정계에 입문해선 탄탄대로를 걸었다. 마누엘 로하스 대통령의 보좌관을 그만두고 하원의원과 상원의원을 거쳐 마닐라 시장을 역임했다. 필리핀 자유당 총재와 상원의장까지 지냈던 마르코스가 야욕을 드러내기 시작한 건 1965년 대선 즈음부터다. 당시 몸담고 있던 자유당에서 대선 후보가 되지 못하자 탈당해 국민당으로 옮겨 출마해 대권을 잡았다.

집권 초 경제 개혁과 외교에 성과를 보이며 무난히 재선에 성공했지만 경제악화와 정치갈등으로 민심이 악화한 1970년대 들어 돌변했다. 1972년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야당 지도자들과 언론인들을 투옥했다. 이듬해엔 일방적으로 대통령의 연임 제한을 폐지하더니 아내와 아들을 장관과 보좌관에 각각 기용하면서 친위 체제를 구축했다. 결국 1986년 민중혁명(피플파워)으로 축출되고 100억 달러(약 11조 9000억원) 규모의 국고를 횡령한 혐의로 기소됐다. 하와이로 망명한 그는 3년 후 심장병으로 숨졌다.

두테르테 덕 숙원사업 해결 

2018년 11월 남편 페르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유해가 안장된 마닐라 국립묘지를 찾은 이멜다 마르코스. EPA=연합뉴스

2018년 11월 남편 페르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유해가 안장된 마닐라 국립묘지를 찾은 이멜다 마르코스. EPA=연합뉴스

봉봉의 어머니 이멜다 마르코스(92) 역시 정치인이다. 마르코스와는 1954년 결혼해 아들 봉봉과 딸 셋을 낳았다. 1975년부터 마닐라 시장을 지낸 그는 1979년 남편이 주택환경부 장관으로 임명하자 남편의 퇴임 전까지 7년간 시장과 장관을 겸임했다. 현직 때도 부정부패 등으로 물의를 빚었던 그는 하와이 망명 당시 대통령 관저에 3000켤레가 넘는 명품 신발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봉봉은 아버지가 숨진 후 1991년 귀국해 일로코스에서 하원의원과 주지사를 번갈아 지냈다. 마르코스 가문은 2010년 화려하게 부활한다. 79세이던 이멜다가 상원의원에 당선됐고, 딸 아이미와 아들 봉봉도 일로코스 주지사와 상원의원에 각각 당선됐다. 봉봉은 2016년 부통령에도 도전했지만, 레니 로브레도에게 석패했다.

마르코스 가문은 두테르테 대통령과도 가까운 사이다. 마르코스 가문은 2016년 대선에서 두테르테 대통령을 지지했고, 두테르테는 이에 화답하듯 취임 직후 마르코스 가문의 숙원 사업이던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유해를 마닐라 국립묘지에 안장하도록 허용했다. 봉봉이 2016년 부통령에 나선 것도 두테르테의 지지 덕분이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두테르테의 딸 사라와 봉봉의 단일화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아직 대권 도전을 공식화하지 않았지만 사라는 20% 넘는 지지율로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를 지키고 있다.

다만 봉봉이 아버지의 그림자를 지우고 완전한 정치적 독립을 이룰지는 불투명하다. 독재자의 아들에게 권좌를 내줄 수 없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봉봉 자신은 그러나 아버지의 실정을 책임지기엔 당시 너무 어렸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반(反) 계엄령 캠페인을 벌이는 주디 타기왈로 사회복지정책 비서관은 “봉봉의 대선 출마는 아버지의 독재 체제에서 고문당하고 사라지고 죽임당했던 수천 명의 필리핀인들을 경멸하는 용감한 쇼”라며 “나라에서 쫓겨났다가 권력의 최정점을 되찾으려는 마르코스 가문의 뻔뻔함이 온 천하에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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