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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본딴 용민정음?…한글날 앞둔 칠곡할매글꼴의 진화

중앙일보

입력

칠곡할매 5명이 자신들의 손글씨를 들고 있다. 칠곡할매글꼴. [사진 칠곡군]

칠곡할매 5명이 자신들의 손글씨를 들고 있다. 칠곡할매글꼴. [사진 칠곡군]

한글을 막 깨친 시골 할매 5명의 삐뚤빼뚤한 손글씨로 만든 ‘칠곡할매글꼴’. 명조체·궁서체처럼 워드 프로세서에 탑재되고, 국립박물관 유물로도 인정받았다.

한글날을 앞두고 칠곡할매글꼴을 활용해 만든 '굿즈 전시회'가 열렸다. 경북 칠곡군은 6일 "지난 5일부터 칠곡군청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시작했고, 6일 오후엔 칠곡할매글꼴 주인공 5명이 전시장을 찾는다"고 밝혔다. 굿즈는 할매글꼴 연습 종이·병풍·술잔·차 받침·부채 등 30여점으로 이뤄져 있다.

칠곡할매글꼴 굿즈 전시장. [사진 칠곡군]

칠곡할매글꼴 굿즈 전시장. [사진 칠곡군]

칠곡할매들은 전시장을 찾아 한글 맞춤법 통일안 등 한글의 기초를 만든 외솔 최현배 선생의 손자 최홍식 교수와 만난다. 최 교수는 한글날을 기념, 훈민정음 낭독 등을 위해 이날 전시장을 찾는다.

칠곡할매글꼴 궂즈 전시장. [사진 칠곡군]

칠곡할매글꼴 궂즈 전시장. [사진 칠곡군]

할머니들은 외솔 선생 제사상에 올려달라며 직접 재배한 쌀을 최 교수에게 전달한다. 이어 칠곡할매글꼴 가운데 '추유을체' 주인공인 추유을 할머니는 훈민정음을 본떠 쓴 '용민정음'을 공개하고, '칠곡할매 선언문'이란 이름으로 전시장에서 낭독한다.

용민정음은 기존 훈민정음의 '가르칠 훈(訓)'을 누구나 두루 사용한다는 뜻에서 '쓸 용(用)'자로 바꾼 것이다.

칠곡군에 따르면 훈민정음은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는 서로 맞지 아니하므로 이런 까닭으로 어리석은 백성이 이르고자 하는 바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능히 펴지 못할 사람이 많으니라 내 이를 위하여, 가엾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드노니 사람마다 하여금 쉽게 익혀 날마다 씀에 편안케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이다.

용민정음은 '어릴 적 배움의 기회가 없어서 한글을 깨칠 수 없었지만 이런 이유로 내 나이 육십이 넘어 배우는 공부가 더 즐겁구나. 이제는 배움을 베풀고자(나누고자) 사람마다 하여금 쓰기 쉬운 다섯 개 글꼴을 배포하였으니 칠곡군민 모두의 자랑이 되었느니라'이다.

전시 중인 칠곡할매글꼴 굿즈는 전시회 기간이 끝난 후 일반인이 구매할 수 있다.

칠곡할매글꼴은 지난해 12월 뒤늦게 한글을 깨친 할머니 5명의 손글씨체다. 칠곡군은 글씨체 원작자 이름을 붙여 칠곡할매 권안자체·이원순체·추유을체·김영분체·이종희체 등 5가지 글꼴로 제작해 무료 배포했다.

현재 칠곡할매글꼴은 바탕체 같은 유명 글꼴로 주로 만들어지던 각종 게시판·표지판의 글꼴로도 널리 활용되고 있다. 한글 전용 박물관에는 칠곡할매글꼴로 제작한 표구를 상설 전시 중이다.

어린이가 쓴 듯한 글씨 모양인 칠곡할매글꼴은 할머니들이 지난해 하반기 한 명당 종이 2000여장에 글씨를 써가며 서체 만들기에 정성을 기울여 세상에 나왔다. 시골 할머니들이 하기엔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유독 할머니들을 힘들게 한 건 영어와 특수문자였다. 이때 손주들이 지원군으로 나섰다. 손주들이 옆에서 할머니 서체 만들기를 도왔다. 유명인이나 역사적인 인물이 아닌 시골에 사는 할머니들의 손글씨가 서체로 만들어진 것은 처음이다.

칠곡할매들은 시 쓰는 할매로도 유명하다. 이런 시들이다. ‘나는 백수라요/묵고 노는 백수/콩이나 쪼매 심고/놀지머/그래도 좋다.’ -이분수 할머니의 ‘나는 백수라요’ (2016년 10월 2집 『콩이나 쪼매 심고 놀지머』 수록)

시 쓰는 칠곡할매들은 지난해 다큐멘터리 영화 ‘칠곡 가시나들’로도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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