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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부총리 꼭 필요…정년연장하고, 청년 주거복지 확대" [리셋코리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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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정부는 2006년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을 세웠다. 이후 200조원이 넘는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출산율 하락세는 멈추지 않는다. 덜 태어나고 더 늙어가는 인구 구조는 한국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한다. 경제활동 인구가 줄면 생산력이 떨어지고, 전체 소비가 감소한다. 산업 구조는 완전히 바뀌고, 복지 비용 증가로 인한 세금 부담도 급증한다.

5일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40년 만 15~64세 생산가능인구 100명당 부양해야 하는 65세 이상 인구는 64.9명에 달한다. 2020년(22.3명)과 비교하면 부담이 3배로 늘어난다. 이런 추세가 굳어지면 새로운 인구 균형점을 찾을 때까지의 과도기를 우리 사회가 견디지 못하게 된다.

장래 인구 전망.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장래 인구 전망.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리셋코리아 자문위원들은 인구 문제를 누적된 인과관계의 결과물로 보고, 원인부터 제대로 진단해야 한다고 봤다.

우선 저출산은 단기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사회구조적 문제다.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갖기 어렵고, 주거 비용이 치솟다 보니 결혼이 계속 늦어진다. 결혼 이후 출산을 해도 육아ㆍ교육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 젊은이들이 결혼ㆍ출산을 거리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런 상황이 오래 지속하다 보니 결혼 적령기의 남녀 인식도 바뀌었다. ‘결혼을 꼭 해야 한다’ 혹은 ‘아이를 꼭 낳아야 한다’고 여기지 않는다.

이성용 강남대 교양학부 교수는 “한국의 출산율이 초저출산의 기준선인 1.3까지 떨어진 2000년대 초반과, 출산율이 1명 이하로 떨어진 2017년부터 지금까지는 모두 부동산 가격이 폭발적으로 오르던 시기”라며 “이는 경제적인 여건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출산을 기피하는 현실을 반영한다. 아이는 부모가 감당할 수 없는 비용이 돼버린 것이다”라고 짚었다.

조혼인율(인구 1000명당 결혼 건수) 추이.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조혼인율(인구 1000명당 결혼 건수) 추이.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렇다고 지금처럼 단순히 아동 돌봄에 얼마, 노인 돌봄에 돈을 얼마 쓰겠다는 식으로 접근해선 인구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질 않는다. 결혼ㆍ출산하기 좋은, 아이를 편하게 키울, 청년들의 압박이 적은 환경ㆍ시스템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하는데,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국가가 젊은 세대와 여성에게 책임을 강요한다는 비판만 나올 수 있다.

인구감소 '연착륙' 시스템 갖춰야 

차승은 수원대 아동가족복지학과 교수는 “중앙 정부뿐만 아니라, 17개 시도, 226개의 시군구에 인구 정책을 소관하는 과가 있는데, 모두가 인구 문제를 ‘사업’적인 입장에서 보다 보니 한계가 생길 수밖에 없다”며 “이제 100세 시대로 65세 이후에도 여전히 35년이나 더 살아가야 하는 등 ‘생애 시간표’의 변화가 시작됐다. 이를 고려해 사업이 아닌 인구 정책 ‘기조’의 재구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사업적 측면에서 저출산을 완화하는 데만 주력하다 보니, 저출산 사회 ‘연착륙’에 대한 준비는 소홀했다. 이미 진행된 저출산에 적응하고, 인구 감소가 만들어 낼 사회를 예측하며, 이에 따른 충격을 최소화하는 시스템을 정비하는 등의 장기 전략 마련은 상대적으로 미흡했다는 얘기다.

병역의무자 변화 예상.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병역의무자 변화 예상.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리셋코리아 인구분과는 차기 정부에 인구절벽 문제 해결을 위해 추진할 과제로 ▶인구사회 부총리 신설 ▶정년연장 공론화 ▶주거 복지 패러다임 전환 ▶고령친화경제(Silver Economy)로의 생태계 확장 등을 꼽았다.

당장 다음 정부부터 인구 절벽에 따른 새로운 사회 변화를 맞닥뜨린다. 새로운 대통령 임기 중반인 2025년에는 한국 인구 5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에 들어선다. 15~64세 생산연령인구도 이때 처음 70% 아래로 감소한다. 학령인구는 2020년 782만명에서 2025년 689만명으로 93만명이 감소하고, 병역의무자는 2020년 33만3000명에서 2025년 22만6000명으로 3분의 1가량이 줄어든다. 20대는 서울과 경기도로 몰리며, 지방대학이 갈수록 정원을 채우지 못한다.

인구 부총리가 인구전략 '컨트롤 타워'

현재 정부 대응은 현재에 초점을 맞춘 ‘인구 정책(Population Policy)’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미래 기조에 초점을 맞춘 ‘인구 전략(Demographic Strategy)’으로 넘어가야 한다는 게 위원들의 의견이다. 그러면서 첫 과제로 인구 전략을 이끌 컨트롤 타워로서의 ‘인구사회 부총리’ 신설을 제안했다. 인구위기에 국가의 역량을 효율적으로 집중하기 위한 것으로, 인구사회 부총리는 인구 구조를 통해 미래를 예상하고, 지속 가능한 국가 시스템을 갖출 전략을 내놓아야 한다.

학령인구수 변화 예상.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학령인구수 변화 예상.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인구사회 부총리는 차기 정부의 공약과 국정과제를 이행하는 5년짜리 단기 계획과, 국회와 함께 정부 사업을 견제하는 장기 전략을 병행하는 ‘투트랙’ 전략을 짜야 한다”며 “정책은 정부가 내지만, 전략은 정부와 민간ㆍ기업이 모두 함께 하는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인구감소는 정해진 미래 

사실 인구 감소는 정해진 미래다. 30년 이후의 출생아 수는 최근 태어난 여자아이의 수로 결정되는데, 이들이 성인이 돼서 지금처럼 아이를 낳는다면 2050년 출생아는 많아야 14만~15만명 정도다. 이제 중요한 것은 ‘공존’을 위한 사회적 타협이다.

자문위원들은 정년 연장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는 것도 불가피하다고 짚었다. 물론 청년 실업률이 고공비행하는 상황이라 청년 취업난 해소 없는 정년연장은 당장 세대 간 갈등을 악화시킬 수 있다. 또 연공서열식 호봉급보다는 능력을 기반으로 하는 직무성과급으로 임금 체계를 전환하고, 근로 형태를 다양화하는 등의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전제돼야 한다.

급감하는 출생아수와 출산율.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급감하는 출생아수와 출산율.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리셋코리아 인구분과장)는 “정년연장이 생산가능 인구의 급격한 감소를 메우기 위한 현실적인 대안임을 인정하고 이제 공론화에 들어갈 필요가 있다는 의미”라며 “정년 연장에 대한 논의를 지금 시작해도 실제 한국사회에 도입되는 시기는 최소 7~8년 뒤로, 현재와 같은 청년 실업 문제는 약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기업의 비용 부담을 최소화하고 사회 갈등을 줄이는 방향으로 보완책을 만들 시간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당장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저출산을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애를 낳으려면 결혼을 해야 하는데, 결혼을 막는 이유로 첫손에 꼽히는 게 치솟는 집값이다. 이를 위해 자문위원들을 주거 복지 패러다임 전환을 통해 청년들에게 아이를 ‘낳아볼 만하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고령친화 경제로 청년·노인 모두 윈윈 

이상림 연구위원은 “지금까지 주거 정책은 ‘무주택 서민의 주택 마련’을 목적으로 하다 보니 ‘43㎡짜리 신혼부부 주택’ 등 현실적으로 출산을 기대하기 어려운 주거 지원이 이뤄졌다”며 “아이를 출산할 때, 아이가 늘어날 때마다 새로운 단계의 주거 지원을 경신하도록 하는 게 하나의 대안이다. 또 혼인하거나 아이를 낳는 부부의 소득 및 자산 여건에 따라 청약ㆍ저금리 대출ㆍ임대주택 등을 단계적으로 확대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고령화도 눈앞의 문제다. 고령 친화적 생태계와 경제의 체질 개선을 준비해야 인구절벽 시대의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다. 단순히 취약 노인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노인 돌봄을 강화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이젠 고령화에 대한 발상 전환이 필요하다. 요즘 고령층으로 진입하는 세대는 이른바 욜드(YOLDㆍYoung Old)다. 건강하고, 재력이 있으며, 지식도 풍부하고, 정보기술(IT) 능력을 갖췄다.

사상첫인구데드크로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사상첫인구데드크로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김영선 경희대 동서의학대학원 노인학과 교수는 “단순히 요양ㆍ돌봄뿐만 아니라 이젠 건강관리, 여가ㆍ문화, 주거 같은 고령친화사업 등이 계속 성장할 거라는 얘기”라며 “YOLD들의 생산력과 소비력을 끌어올리고, 이들에 맞춘 비즈니스를 창출하는 게 새로운 성장 엔진이 될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공공이 주도하던 돌봄을 다원화하는 논의도 필요하다.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여러 겹의 보장체계를 갖추는 보험상품을 출시하는 등 ‘다층노후보장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김영선 교수는 “초고령 사회에 필요한 기술 연구개발(R&D)에 투자해야 한다. 수혜자는 고령자가 되지만 이것을 개발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은 청년이기 때문에 연령 통합적인 일자리 창출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자문위원들은 또 인구 문제와 지역ㆍ지방 정책의 연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의 청년 일자리 정책 대부분은 수도권 등 대도시의 대졸 청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방의 여건을 상대적으로 열악하게 만들었고, 이 때문에 청년은 더 수도권으로 몰리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리셋코리아 인구분과 위원들의 제언.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리셋코리아 인구분과 위원들의 제언.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또 미래에는 노동력 부족 문제가 한국 경제성장의 저해요인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큰 만큼 사전 준비작업도 필요하다. 예컨대 외국인 노동력을 활용하자는 단순한 접근이 아니라 외국인이 필요하면 ▶얼마나 많이 ▶어떤 부분에서 ▶언제 늘릴 것이며 ▶수준은 어느 정도를 갖춰야 할지 설계도를 작성해야 한다.

조영태 교수는 “또다시 인구정책의 실패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면서 “상대적으로 인구가 덜 감소하는 2020년대가 ‘인구 절벽’을 대비할 마지막 기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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