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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유언은 침묵이었다…그래야 하늘의 말이 들리니까 [백성호의 한줄명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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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마지막 유언은 침묵, 왜?

#풍경1

중국의 약산 선사(751~834)는 ‘무언(無言)의 대설법’으로 유명합니다. 좀 이상합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데, 그게 대설법이 된다니 말입니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루는 약산 선사가 법당에서 좌선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크게 고함을 질렀습니다.

“법당이 무너진다!”

법당에 있던 제자와 신도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이리저리 마구 뛰어다녔습니다. 법당의 기둥을 붙들고 난리가 났습니다. 그런데 이 모습을 지켜보던 약산 선사가 “하! 하! 하!”하며 호탕하게 웃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바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제자들은 나중에 깨달았습니다. “법당이 무너진다”는 것은 약산 선사가 자신의 열반을 두고 한 말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약산 선사의 유언이자 열반송이었습니다.

#풍경2

공자에게는 자공이란 제자가 있었습니다. 공자는 자공을 유독 아꼈습니다. 자공이 위나라에 사신으로 가 있을 때였습니다. 스승의 안부가 들려왔습니다. 요즘 자꾸 이상한 노래를 지어서 부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자공은 그 노래 가사가 어떤 것인지 물었습니다.

태산기퇴호(泰山其頹乎)
양목기괴호(梁木其壞乎)
철인기위호(哲人其萎乎)

풀이하면 이렇습니다. “태산이 무너지는구나/들보가 쓰러지는구나/철인이 시드는구나.” 자공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일을 마치자마자 여장도 풀지 않고 공자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노래는 공자가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불렀습니다. 자공이 노래의 뜻을 알아들은 겁니다. ‘태산이 무너지는구나/들보가 쓰러지는구나’라는 노래는 약산 선사의 열반송과도 맥이 통합니다.

#풍경3

공자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볼까요. 자공이 공자의 집 앞에 도착했습니다. 마침 공자는 쇠약한 몸으로 문 밖에 나와 제자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스승님, 이제 막 위나라에서 돌아왔습니다”라고 했더니 공자는 “왜 이렇게 늦었으냐, 가까이 오너라”라며 제자에게 간밤의 꿈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夏)나라 사람들은 동쪽 계단 위에 빈소를 차리고, 주(周)나라 사람들은 서쪽 계단 위에 빈소를 차린다. 은(殷)나라 사람들은 두 기둥 사이에 빈소를 차린다. 내 시조는 은나라가 아니더냐. 어젯밤 꿈에 두 기둥 사이에 편안히 앉아 있는 꿈을 꾸었다.”

공자는 곧 다가올 자신의 죽음을 말한 것이었습니다. 이어서 공자는 말했습니다. “나는 이제 아무 말로 하지 않으련다.” 이 말을 듣고 자공이 물었습니다. “스승님께서 아무 말도 안 하시면, 저희가 어떻게 도(道)를 이어받아 전하겠습니까?” 그러자 공자가 말을 했습니다.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던가? 사시가 운행되고 만물이 생장하지만,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던가?”

그 길로 공자는 말문을 닫았습니다. 공자의 병세는 점점 나빠졌습니다. 병석에 누워있던 공자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고 마침내 7일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공자는 숨을 거두었습니다.

#풍경4

공자의 유언에 대해 갑론을박이 있습니다. 왜냐고요?  공자가 유언을 남겼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공자는 유언을 남기지 않았다고 반박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양측의 논쟁은 끝이 없습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떻습니까? 공자는 과연 유언을 남겼을까요, 아니면 그냥 침묵만 하다가 숨을 거둔 걸까요. 우리가 이 물음에 답을 할 때 비로소 약산 선사의 ‘무언(無言)의 대설법’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공자는 과연 유언을 남겼을까요? 그렇습니다. 공자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어떤 유언이냐고요? 세상 그 어떤 유언보다 크고, 넓고, 깊은 유언을 남겼습니다. 약산 선사의 설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그 어떤 설법보다 크고, 넓고, 깊은 설법을 남겼습니다. 그게 대체 뭘까요.

답은 침묵입니다. 공자의 침묵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따집니다. 아니, 침묵이 무슨 유언이냐고 말입니다. 맞습니다. 침묵은 유언이 아닙니다. 유언은 침묵이 아니라, 침묵 그 너머에 있습니다.

병상에서 공자가 침묵할 때, 밖에선 새가 울었습니다. 바람이 불었습니다. 구름이 흘렀습니다. 달이 뜨고, 별이 뜨고, 아침에 동이 텄습니다. 안개가 피어나고 땅거미가 졌습니다. 그렇게 온 우주가 숨을 쉬었습니다. 들숨과 날숨을 끊임없이 쉬었습니다. 그 숨이 바로 공자의 유언입니다. 공자는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사시가 운행되고 만물이 생장한다.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던가.”

귓가에 스치는 바람소리, 처마 끝에 떨어지는 빗소리, 창밖의 개울물 소리, 지붕 위의 새 소리, 뒤뜰에서 울리는 귀뚜라미 소리. 그 모두가 하늘의 말입니다. 우주의 말입니다. 공자가 침묵할 때 하늘이 말을 하는 겁니다. 사시의 운행과 만물의 생장을 통해 하늘이 말을 하는 겁니다.

그러니 둘이 아닙니다. 공자의 침묵과 하늘의 소리가 둘이 아닙니다. 약산 선사도 똑같습니다. 약산이 침묵할 때, 누가 설법을 할까요. 자연이, 세상이, 우주가 설법을 합니다. 그래서 그냥 ‘설법’이 아니라 ‘대설법’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세상에, 우주의 설법보다 더 큰 설법은 없을 테니 말입니다.

#풍경5

평소 제자가 설법을 청할 때 약산 선사는 “법상을 차리라”고 말했습니다. 막상 법상에 오른 약산 선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가만히, 그것도 오래 앉아있다가 내려왔습니다. 제자가 “아니, 설법도 안 하시고 그냥 내려오시면 어떡합니까?”라고 물으면 약산은 “나는 법을 다 설하였노라”라고 답했습니다. 그러면서 “언어 설법을 듣고 싶거든 강사를 찾아가고, 계율을 듣고 싶거든 율사를 찾아가라. 나는 선사이기에 선(禪)을 설했노라”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따집니다. 약산은 법을 설했다, 아니다 약산은 아무런 설법도 하지 않았다. 저는 약산 선사의 설법과 공자의 유언이 통한다고 봅니다. 선사가 침묵하고, 공자가 침묵할 때 비로소 우주가 설법을 하기 때문입니다. 공자는 40세에 불혹(不惑ㆍ혹하지 않음), 50세에 지천명(知天命ㆍ하늘의 뜻을 앎), 60세에 이순(耳順ㆍ하늘의 뜻을 따라 순해짐), 70세에 종심(從心ㆍ나의 뜻이 하늘의 뜻에 어긋나지 않음)이라 했습니다.

공자는 72세, 종심의 경지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종심은 마음을 따른다는 뜻입니다. 누구의 마음일까요. 그렇습니다. 하늘의 마음입니다. 약산 선사가 설한 무언의 대설법은 무엇을 설한 걸까요. 그렇습니다. 다름 아닌 하늘의 마음입니다. 약산과 공자는 지금도 우리에게 말합니다. 그 마음을 따라서 살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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