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박한슬이 저격한다

'文케어' 김용익 이사장님, 난치병 치료보다 대선 보은입니까

중앙일보

입력

박한슬 약사 출신 작가
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김용익 건보공단 이사장님.
척수성 근위축증(Spinal Muscular Atrophy, SMA)이라는 질병이 있습니다. 신생아 1만 명당 1명꼴로 발생하는 희귀한, 그리고 치명적인 병입니다. 이 병을 앓는 아동은 대부분 2세 이전에 사망하고, 생존하더라도 평생 호흡 보조장치를 차야 합니다. 대대로 유전되는 집안 내력 유전병 같은 건 아니고, 우연히 해당 유전자를 가진 평범한 부부가 만나 아이를 가지면 나올 수 있는, 재난에 가까운 질병입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수장이시니 국내에 200명 정도의 생존자가 있다는 걸 저보다 더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관련기사

비교적 최근까지도 이 병은 치료가 불가능했습니다. 다행히 '스핀라자'라는 약이 나와, 첫해에는 주사를 6번, 다음 해부터는 연간 4번씩만 맞으면 환자들 증상이 무척이나 좋아질 수 있었습니다. 걷지 못하던 환자가 걸을 수 있게 됐고, 스스로 호흡을 못 해 호흡 보조장치를 차야 하던 환자들이 스스로 숨을 쉴 수 있게 됐습니다. 물론 이같은 기적에는 대가가 따랐습니다. 주사 1번 맞는데 1억 원이 들거든요. 환자 한 명당 매년 4억 원이란 돈을 내야 합니다. 보험적용을 해주지 않다 최근에야 건강보험 적용을 해줬습니다. 치료법이 없으면 몰라도, 치료법이 있는데도 돈이 없어 자녀를 떠나보내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최근까지 이어진 것이죠.

1번에 1억원짜리 치료제 스핀라자.

1번에 1억원짜리 치료제 스핀라자.

최근 또 다른 약이 나왔습니다. 평생 1번만 맞으면 해당 질환이 완치되는 졸겐스마라는 약이죠. 문제는 비용입니다. 평생 한 번만 맞으면 되는데 가격이 무려 20억 원에 달하거든요. 2020년 기준 국내 신생아 수가 27만 명이니, 매년 27명의 환자가 나온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1명당 20억 원씩 들어가면 총합이 540억 원입니다. 고혈압약에 매년 들어가는 1조 원과 비교할 때 예산상으로 큰 금액은 아닙니다. 물론 환자 1명에게 그런 큰돈을 쓰는 건 보건의료체계 관점에서 볼 때 과도한 지출이란 비판이 나올 수는 있습니다. 건강보험 재정을 꿰고 계실 김용익 이사장님께서는 더 잘 알고 계시겠지요. 예산이 한정돼 있으니까요.
그런데 정작 제가 의문이 가는 부분은 따로 있습니다. 희귀난치병 아동들에게 쓰는 돈이 아까워 희귀병 치료제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을 두 차례나 거부했던 건강보험 공단에서 어째서 한약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엔 1500억 원이란 큰돈을 쓰기로 했을까요?

文 캠프 출신 한의협회장 1500억 타내

시계를 조금만 뒤로 돌려 보겠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맞붙었던 2012년 대선, 그리고 현재의 문재인 대통령을 만든 2017년 대선 캠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한의사 한 명이 있습니다. 전국 규모의 초대형 한의원 체인 설립자이자 로스쿨에 진학해 변호사 자격까지 취득한 분이죠. 두 번의 대선을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치른 그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듬해에 한의사협회 회장에 출마합니다. 한의원에서 달여주는 한약인 첩약에 대해 건강보험을 적용하겠다는 담대한 공약을 내세워서요. 최장수 보건복지부 장관 기록을 세운 박능후 전 장관과 김용익 이사장님이 캠프에서 수없이 얼굴을 맞댔을 최혁용 전 한의협회장 얘기입니다.

지난해 2월 대한한의사협회 최혁영 당시 회장이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긴급기자회견을 했다. 연합뉴스

지난해 2월 대한한의사협회 최혁영 당시 회장이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긴급기자회견을 했다. 연합뉴스

그가 이런 공약을 내세운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2013년 기준으로 한의원과 한방병원 전체 매출에서 한약이 차지하는 비율이 48.7%였습니다. 쉽게 말해 한의원에 방문하는 사람의 절반은 한약 지어 먹으러 오는 사람이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6년이 지난 2019년 한약이 차지하는 매출 비중은 38.4%로 급락합니다. 다이어트가 중요해진 시대에 한의원에서 비싼 돈 주고 보약을 지어 먹을 필요성이 줄어드는 등 한약에 대한 수요 자체가 줄어든 탓입니다. 상대적으로 마진이 많이 남는 한약 판매가 줄어드는 건 여러모로 속 쓰린 일이었을 겁니다.
건강보험공단에서는 2020년부터 첩약에 보험을 적용해주는 시범사업을 시작합니다. 규모는 약 1500억원.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속 생명을 담보로 한 게임을 서너 번 개최할 수 있는 큰돈이죠. 이뿐만이 아닙니다. 공교롭게도 최혁용 회장이 한의사협회장에 당선된 뒤 한의계 숙원 사업들이 복지부와 건보공단의 문턱을 쉽게 넘기 시작했습니다. 물리치료 요법인 추나요법이 2019년부터 건강보험 적용을 받기 시작했고, 덕분에 매달 100억원가량의 건강보험 재정이 한의원으로 흘러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교통사고 후 한의원에만 들어가면 최대한의 보상이 나온다는 자동차보험 금액은 뺀 수치입니다.
국회에서 관련 사업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자, 김 이사장님은 “첩약 급여화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 결정사항이고, 건보공단은 이 결정의 한 참여자일 뿐이다. 이 문제를 다시 이야기하려면 건정심이 재결정해야 하는 난점이 있다”는 답변을 내놓셨습니다. 위원회 결정 사항이라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는 주장인데, 이 정부 최고 실세 그룹인 참여연대 출신이자 노무현 정부 청와대 사회수석, 민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까지 지내신 분이 그런 결정에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다는 게 잘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건보공단 역사상 최초로 연임에 성공한 이사장이 정말 그렇게 힘없는 자리인가요?

문 케어 지출 증가로 희귀질환·신약 지원 한계

더 큰 문제는 척수성 근위축증 치료제 사례가 시작일 뿐이라는 겁니다. 최근 미국 식약청(FDA)에서 허가받은 신약의 절반가량은 희귀질환 치료약들입니다. 코로나 19 대유행을 계기로 기술 수준이 대폭 향상된 mRNA 의약품을 고려하면 이런 추세는 더욱 가팔라질 것이고요. 예전에는 치료법이 없어 손 놓고 포기했던 질환들이 치료 가능한 영역으로 조금씩 넘어오고 있는데, 이들 치료제는 매우 비쌉니다. 제약사의 탐욕이라 비판만 하기엔 개발 비용이 조 단위로 드니 어쩔 수 없는 측면이 크죠. 이런 치료제를 위한 건보 예산이 과거보다 더 필요한 상황인데 이사장님이 적극적으로 추진한 문재인 케어로 인해 건강보험 예산이 급격히 늘면서 오히려 이들 치료제에 쓸 예산 폭은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대한의사협회는 문재인케어 부작용을 우려해 ’반대 집회를 열었다. 연합뉴스

대한의사협회는 문재인케어 부작용을 우려해 ’반대 집회를 열었다. 연합뉴스

문재인 케어 도입 이후 MRI 촬영 건수가 140만 건에서 354만 건으로 2.5배 증가했습니다. 비슷하게 보험 적용이 이루어진 초음파 역시 529만 건에서 1631만 건으로 3배 늘어났죠. 복지부에서는 불필요한 검사가 늘어난 건 아니라고 했지만, 문재인 케어 도입 즈음부터 의사 단체에서 이미 MRI 촬영 수를 급격하게 늘릴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의사 본인들에게 이득이 되는 조치였음에도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이 우려되니 그런 성명이 나온 겁니다. 코로나는 또 어떤가요. 건강보험 보장률 70%라는 정치적 목적으로 예산을 지출하다 보니, 정작 일선에서 싸우는 코로나 전담병원들은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전담병원을 하겠다며 나섰던 병원이 전담병원 지위를 반납하겠다고 나서겠습니까?
김용익 이사장님. 보험의 기본 원리는 드물게 일어나는 재난을 보험 가입자들이 같이 나눠서 짊어지기 위함입니다. 당장 나는 아니더라도, 내가 그런 일을 겪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알기에 사회적 연대를 발휘하여 위험을 분산시키는 것이지요. 10개월의 기다림 끝에 태어난 내 아이가 1만 명당 1명꼴로 나타나는 희귀질환을 갖고 태어난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은 거기에 해당하지 않습니까? 20억 원만 있으면 아이를 살릴 수 있는데, 그 돈이 없는 사람들은 아이를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대선 캠프 보은용 한방 진료비만 아껴도 연간 27명의 난치병 아이를 고칠 돈은 충분히 쓸 수 있습니다. 문재인 케어 성공을 위해 낭비한 예산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디 보험의 원리 그대로 재난에 부딪힌 이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