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키호택과 걷는 산티아고길 8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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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키호택과 걷는 산티아고길 80일] 공항서 사라진 노트북, 이번 여행 망했어

중앙일보

입력 2021.10.05 17:00

업데이트 2021.10.08 18:27

[색다른 여행기를 연재합니다. 스페인 산티아고 길을 당나귀와 걷는 이야기입니다. 글과 영상과 사진은 임택 여행가가 보냅니다. 임택씨는 폐차 직전의 종로 12번 마을버스 ‘은수’를 타고 세계일주를 했습니다. 2014년에 떠나 677일 만인 2016년 9월 27일 서울에 입성했습니다. 남미~중미~북미~유럽·아프리카~중앙아시아~시베리아~일본~부산~서울 여정입니다. 5개 대륙의 48개국 147개 도시를 지나며 모두 7만㎞를 달렸습니다. 21세기 한국판 돈키호테라 할만합니다. 이번 산티아고 길에는 당나귀 '동키호택'과 열아홉살 동훈이가 길동무입니다. 당나귀 이름은 돈키호테와 임택을 섞어 만들었습니다. 영어로 당나귀를 동키(donkey)라고 부르니 그럴듯합니다.

팬데믹으로 고단한 날들, 생소한 일에 도전하는 이야기가 조금이나마 위안이 됐으면 합니다.]

파리 숙소에서 만난 영국 청년. 3주 전엔 제대를 하고 이곳저곳 여행 중이라고 했다.

파리 숙소에서 만난 영국 청년. 3주 전엔 제대를 하고 이곳저곳 여행 중이라고 했다.

비아리츠행 비행기를 타러 오를리공항 가는 길. 이때만 해도 룰루랄라.

비아리츠행 비행기를 타러 오를리공항 가는 길. 이때만 해도 룰루랄라.

비아리츠 도착. 잠시 뒤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진다.

비아리츠 도착. 잠시 뒤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진다.

[동키호택과 걷는 산티아고길 80일] 3화 

동키호택이 있는 농장은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작은 산골 마을이다. 이곳으로 가려면 프랑스 국경도시 비아리츠(Biarritz)에서 버스를 탄 다음 바스크의 주도인 도노스티아(Donostia)라는 곳에서 갈아타야 한다. 두 도시 사이의 거리는 버스로 약 30분 정도다.

파리 오를리 공항을 떠난 비행기가 비아리츠에 내렸다. 스페인 국경에서 25km 정도 떨어진 대서양 연안의 관광휴양 도시다. 해안 풍광이 빼어난데 남북으로 이어진 4km의 해변 중 북쪽의 ‘코트 다르장’은 프랑스에서 최초로 조성된 해수욕장이란다. 2019년 프랑스가 주최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가 열렸단다. 하늘은 푸르고 모든 것이 순조롭게 보였다. 비행기에서 내리면서 그 맑고 푸른 하늘을 보며 탄성을 질렀다. 좋지 않을 일이 뭐가 있을까 싶어서였다. 하지만 여행은 우리가 예상한 데로 흘러가지 않는 데 그 묘미가 있다.

수속을 마치고 대합실에서 빈속을 채우는데 무장경찰관 두 명이 우리를 불러 세웠다. 어린 시절 아버지 주머니를 뒤지다가 어머니께 죽지 않을 만큼 맞은 적이 있어 지금도 경찰만 보면 가슴이 철렁하는 트라우마가 있다.
“이거 당신들 것 맞죠?”
그들의 손에는 옷가지 몇 개가 들려있었다. 짐을 운반하는 컨베이어벨트 주위에서 주운 모양이었다.
“아 뭐야. 화물을 부칠 때는 말이야. 꼼꼼하게 해야지 이렇게 질질 흘리고 다니면 되겠어? 이걸로 다행인 줄 알아. 조심하라고.”
“네. 주의할게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동훈이한테 판판이 져온 터라 만회를 노렸는데 이번에도 망신을 당했다. ‘그래 지는 게 아니라 나는 져주는 거야. 진정한 승리는 져주는 사람의 것이니까.’ 속으로 되뇌며 정신 승리에 만족했다. 그래도 이 정도 사건쯤이야 여행 중에 흔히 있는 일이지. 마을버스 세계 일주 중에 로마에서 당한 일과 비교하면 새 발의 피다. 그때는 몽땅 잃어버렸으니까.

컨베이어벨트에 흘린 우리 옷가지를 찾아준 비아리츠 공항 경찰. 이때부터 정신이 나가기 시작했다.

컨베이어벨트에 흘린 우리 옷가지를 찾아준 비아리츠 공항 경찰. 이때부터 정신이 나가기 시작했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스페인 국경을 넘어야 한다. 당나귀 농장에 가려면 도노스티아에서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 도노스티아는 바스크 지방의 주도이다. 그런데 공항버스 정류장에 표를 파는 곳이 없다. 마침 정류장에 앉아있는 젊은 아가씨에게 물어보았다.
“도노스티아 가는 표 파는 어디서 팔아요?”
“아 도노스티아 가시는군요. 저도 거기에 살아요.”
영어가 유창한 아가씨 이름은 레이철이었다. 동훈이가 물을 만났다. 얘는 영어만 하면 따발총이다. 뚜루루루.
“표는 버스회사 홈페이지에서만 팔아요.”
레이철이 회사 앱을 알려주며 표 예매를 도와줬다. 12시 55분 버스 예약은 이미 늦었다.  3시 55분 표만 예약이 가능했다.
“일단 이 표를 사고 기사 아저씨에게 태워달라고 사정해 보면 어떨까요. 빈자리가 있으면 태워줄 거 아니겠어요?”
레이철의 아이디어에 우리는 옳거니 했다.
“그리고 어쩌면 버스에서도 표를 살 수 있을 거야. 우리 같은 사람도 있을 테니까.”
버스가 25분간 연착한다는 공지가 떴다. 그 짧은 시간 레이철은 바스크가 얼마나 아름다운 고장인가를 설명하느라 말이 그치질 않았다. 젊은이 둘이 유창한 영어로 쉴 새 없이 떠들었다. 나는 가끔 과장된 웃음을 지어 응원하거나 대화가 소강상태일 때 존재감을 보여주려 기회를 엿보곤 했다.
이러는 사이 버스가 도착했다. 우리의 간절한 바람을 운전기사는 한마디로 날려버렸다.
“안됩니다. 예약한 사람만 탈 수 있어요.”
빈자리가 많이 보였지만 버스 기사는 단호했다. 좀 태워줄 수도 있는데 야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우리는 다음 버스를 기다려야 했다.
버스에 오르던 레이철이 우리를 돌아보며 말했다.
“택씨, 도노스티아는 핀초스라는 음식이 아주 유명해요. 그곳에서만 바스크의 특별한 맛을 느낄 수 있어요. 지금 영화제가 열리고 있으니 꼭 둘러보고 가세요.”
“고마워요. 레이철. 아디오스.”
“아고르”
그녀를 태운 버스가 승차장을 크게 한 바퀴 돌더니 스페인의 푸른 하늘 속으로 사라졌다.
“동훈아 그런데 레이철이 왜 아고르 하고 인사를 하지? 아디오스 그러지 않나?”
아고르가 바스크어라는 것과 그들의 언어가 스페인어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아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공항 라운지로 다시 돌아온 동훈이가 몹시 아쉬웠던 모양이다. “아 진짜 저걸 타야 했는데. 아부지.”
동훈이가 푸념했다. 만일 이 버스를 탔다면 팜플로나행 9시 버스를 타기까지 8시간을 도노스티아에서 머물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맛있는 ‘핀초스’가 아쉬운 모양이었다.

그런데 배낭 속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찾는 동훈이 표정이 이상했다.
“아부지 혹시 제 노트북 가지고 계세요?”
아이고 어째, 노트북이 없어진 것이다.
“동훈아 당황하지 말고 잘 생각해 보자. 일단 오를리 공항에서 정신이 없었지만, 거기는 아닌 것 같아. 그러면 가지고 탔을 텐데 검사대에서도 노트북은 내 거만 꺼냈거든.”
“그렇죠. 그런데 어디에서 잃어버렸을까요?”

언젠가 평생을 약초를 채취하여 살아온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다.
“산에는 약초가 아주 많습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독사가 사는 곳에는 해독초가 함께 자라요. 독사에 물린 짐승들이 그걸 뜯어 먹는다고요.”
답은 가까이 있다는 말이다.
“동훈아 아무래도 이 노트북은 부친 짐에 있었을 거야. 그리고 아까 경찰들이 옷가지를 주워왔잖아? 그렇다면 노트북도 그 근처에 떨어져 있었을 거야. 바로 이 공항에 있다는 거지.”
동훈이의 얼굴에 희망이 엿보였다.
“일단 분실물 보관소에 가보자.”
보관소 사무실은 라운지 커피숍 바로 앞에 있었다. 마침 점심을 먹으러 간 직원들이 돌아왔다. 동훈이가 몇 마디 하기도 전에 직원이 물었다.
“우리가 가지고 있어요. 노트북이 무슨 색깔이죠?”
그의 표정과 말에 동훈이가 만세부터 불렀다. 그 직원은 몇 가지를 더 물어보더니 검은색 노트북을 가지고 나왔다. 끈이 컨베이어벨트에 물려서 배낭이 풀어진 모양이었다.
“아부지 우리가 그 버스를 안 탔길 정말 다행이지 뭐예요?”

잃어버린 줄 알았던 노트북을 찾고 감격하는 동훈이. 감사합니다. 메르씨. 땡큐 쏘 마치.

잃어버린 줄 알았던 노트북을 찾고 감격하는 동훈이. 감사합니다. 메르씨. 땡큐 쏘 마치.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버스를 타고 도노스티아에 내렸다.
약초꾼의 경험이 효험을 본 하루였다. 나는 여행에서는 ‘실수는 있으나 실패는 없다’고 말하고 싶다.

마침내 도착한 도노스티아. 레이짜로 가는 환승 도시다. 레이첼이 강추한 판초스를 어디서 먹을까 두리번 거리니 온통 판초스 가게다. 어떤 가게나 종류가 많기도 하다.

마침내 도착한 도노스티아. 레이짜로 가는 환승 도시다. 레이첼이 강추한 판초스를 어디서 먹을까 두리번 거리니 온통 판초스 가게다. 어떤 가게나 종류가 많기도 하다.

판초스는 바게트빵을 일정한 두께로 자른 뒤 그 뒤에 갖가지 재료를 올려먹는다. 송이버섯과 새우 그리고 하몽이 들어간 핀초스는 무조건 맛있다.

판초스는 바게트빵을 일정한 두께로 자른 뒤 그 뒤에 갖가지 재료를 올려먹는다. 송이버섯과 새우 그리고 하몽이 들어간 핀초스는 무조건 맛있다.

판초스를 먹고 동네를 구경하는데 아이스크림 가게 주인이눈을 찡긋한다. 주먹만한 아이스크림이 3~4유로. 우리돈 4천원 정도.

판초스를 먹고 동네를 구경하는데 아이스크림 가게 주인이눈을 찡긋한다. 주먹만한 아이스크림이 3~4유로. 우리돈 4천원 정도.

판초스 가게 벽에 걸린 염장 돼지고기 뒷다리인 하몽. 하나를 사면 한 달을 먹을 수 있겠다.

판초스 가게 벽에 걸린 염장 돼지고기 뒷다리인 하몽. 하나를 사면 한 달을 먹을 수 있겠다.

여행은 지금 이 순간이 최고.

여행은 지금 이 순간이 최고.

도노스티아 산타 카탈리나 다리 서쪽에서 본 풍경.

도노스티아 산타 카탈리나 다리 서쪽에서 본 풍경.

 도노스티아 구시가지를 벗어나 다리를 건너자 영화제 현장에 사람들이 와글와글했다.

도노스티아 구시가지를 벗어나 다리를 건너자 영화제 현장에 사람들이 와글와글했다.

우리를 환영하는 레드카펫인 줄 알았는데 ^ ^; 사실은 영화제에 온 배우들을 위한 길이다.

우리를 환영하는 레드카펫인 줄 알았는데 ^ ^; 사실은 영화제에 온 배우들을 위한 길이다.

이 청년들 글쎄 BTS를 몰라요. 빌보드차트 1위라고 해도 모른다며 자신들의 휴대폰으로 검색을 합니다. 그러더니 멋진 BTS 사진을 찾아서 이 사람들이 맞느냐고 물어요. 저 건너편 두 사람에게도 물어봤습니다. 역시 모른답니다. 주위분들 다~~ 모르는 BTS. 이 도시에 오면 그냥 길거리 청년되겠어요. 뻘쭘했습니다.

이 청년들 글쎄 BTS를 몰라요. 빌보드차트 1위라고 해도 모른다며 자신들의 휴대폰으로 검색을 합니다. 그러더니 멋진 BTS 사진을 찾아서 이 사람들이 맞느냐고 물어요. 저 건너편 두 사람에게도 물어봤습니다. 역시 모른답니다. 주위분들 다~~ 모르는 BTS. 이 도시에 오면 그냥 길거리 청년되겠어요. 뻘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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