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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의원 인스타엔 동성애인과 키스컷…'무티' 가고 MZ 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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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지난달 독일 총선에 당선한 최연소 23세 대학 재학생 의원, 에밀리아 페스터 홈페이지. "미래는 그 미래를 살아내는 자에게 있다"는 문구와 함께 발랄한 포즈를 취한 의원 사진을 올렸다. [페스터 홈페이지 캡처]

지난달 독일 총선에 당선한 최연소 23세 대학 재학생 의원, 에밀리아 페스터 홈페이지. "미래는 그 미래를 살아내는 자에게 있다"는 문구와 함께 발랄한 포즈를 취한 의원 사진을 올렸다. [페스터 홈페이지 캡처]

‘무티’가 가고 MZ가 온다. 독일 정치 얘기다. ‘무티(Muttiㆍ엄마)’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독일을 16년간 이끌었던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정계 은퇴와 함께 독일 정치에 새 바람이 불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지난달 치러진 총선에서 불출마하면서 정계 은퇴의 첫 단추를 뀄다. 이 총선의 결과는 미묘하다. 독일 민심은 어느 정당에도 몰표를 허락하지 않았다. 대신 청년 정치인들이 새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동성 애인과 키스하는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기후변화 정의’를 부르짖고, 대학생활과 의정활동을 병행하겠다는 이들이다.

이 중 한 명인 리아 슈뢰더(29) 자유민주당(자민당) 의원은 지난 3일 뉴욕타임스(NYT) 인터뷰에서 “우린 더 이상 나이든 세대에 정치를 맡기지 못하겠다”며 “세상은 급변하고 있으며, 나라의 미래가 곧 우리 세대의 미래”라고 말했다.

막스 럭스 의원의 인스타그램 사진 중 하나. 무지개는 성소수자 지지를 의미한다. 럭스는 동성 연인과 키스하는 사진도 올려놓았다. [막스 럭스 인스타그램]

막스 럭스 의원의 인스타그램 사진 중 하나. 무지개는 성소수자 지지를 의미한다. 럭스는 동성 연인과 키스하는 사진도 올려놓았다. [막스 럭스 인스타그램]

이는 세대 갈등이 심한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베를린에 거주하는 정치사회학자인 클라우스 허렐만은 NYT에 “현재 독일엔 전례 없는 세대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며 “30대 이하와 50대 이상 세대들의 갈등이 이번 선거에서 핵심 요소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메르켈 총리의 기독교민주ㆍ기독교사회 연합(기민ㆍ기사련)이 제1당에서 밀려나면서 민심은 변화를 원한다는 것이 분명해졌지만, 확실한 건 거기까지다. 기민ㆍ기사련을 누른 정당인 사회민주당(사민당)은 불과 1.6%포인트 차로 신승(辛勝)을 거뒀다. 기후변화를 주요 의제로 한 녹색당은 14.8%, 자유무역주의를 표방하는 자민당은 11.5%, 극우 성향의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10.3%를 득표했다. 패전 후 독일에선 단일 정당이 압도적 득표로 총리를 배출한 적이 없긴 하지만 이번은 유독 표 배분이 종잡을 수 없는 형국이다. 포스트 메르켈 정국을 둘러싼 안개는 선거 후 더 짙어졌다.

메르켈 총리는 16년 집권에 마침표를 찍는다. 사진은 지난 3일(현지시간) 통일 31주년 행사. AFP=연합뉴스

메르켈 총리는 16년 집권에 마침표를 찍는다. 사진은 지난 3일(현지시간) 통일 31주년 행사. AFP=연합뉴스

이 와중에 눈길을 끄는 세력은 20~30대의 밀레니얼과 Z세대, 즉 MZ 정치인들이다. 이번 총선에서 의회에 입성한 의원 수는 모두 735명. 그 중 최연소는 23세 여성인 대학생 에밀리아 페스터. 환경을 생각해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통학한다. 녹색당 소속인 페스터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항상 내 목소리가 반영되는 것이 중요한 삶을 살아왔다는 점에서 나는 평생 정치를 해온 셈”이라고 주장했다. 나이는 어려도 경력은 길다고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그는 NYT에 “(팬데믹 상황에서) 대학과 대학생들은 소외돼왔다”며 “정부는 미용실이 영업을 못하는 것은 신경썼지만 대학에 대해선 별다른 논의조차 없었다”고 말했다. 앞으로 젊은 세대 목소리를 정치에 당당히 반영하겠다는 선언이다.

페미니스트인 페스터는 NYT에 이렇게 말했다.

“지금 독일 의회의 여성 의원 비율은 34%이다. 어떤 이들은 그 정도면 됐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이건 축하할 일이 절대 아니다. 나이들고 백인인 남자들이 역시 주도권을 쥐고 있고 이는 정치뿐 아니라 돈일 흘러가는 수많은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바꿔야 한다.”  

역시 녹색당 소속인 막스 럭스는 성소수자다. 인스타그램에 사이클링하는 사진을 프로필로 올린 그는 NYT에 “젊은 세대가 우리 (MZ세대) 정치인들에게 표를 줬고 우리에게 기대하는 바가 크다”며 “우리는 그들을 실망시키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가 주창하는 가치는 성평등과 성소수자 권익, 기후변화 등이다. 인종차별 철폐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기울인다.

친기업 성향이며 자유무역을 지지하는 자민당의 리아 슈뢰더 의원의 트위터 계정. 성소수자를 지지한다는 의미의 무지개 표시를 해뒀다. [슈뢰더 의원 트위터 캡처]

친기업 성향이며 자유무역을 지지하는 자민당의 리아 슈뢰더 의원의 트위터 계정. 성소수자를 지지한다는 의미의 무지개 표시를 해뒀다. [슈뢰더 의원 트위터 캡처]

일부 진보 성향의 젊은이들 얘기일뿐 아니냐고? 그렇지 않다. 리아 슈뢰더(29) 자민당 의원은 친기업 보수 성향이 뚜렷하지만 그 역시 젊은 세대를 대변한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바보같은 사람들을 더 이상 유명하게 만들어주지 말자”는 대표 트윗을 올려놓았다. 프로필 사진엔 성소수자를 지지한다는 의미로 무지개 깃발 아이콘을 추가해놓았다.

청년 정치 돌풍이 거센 녹색당과 함께 슈뢰더 의원의 자민당은 포스트 메르켈 시대의 중요한 캐스팅 보트를 행사하게 된다. 당장 ‘킹’이 될 수는 없어도 ‘킹메이커’로서의 목소리를 낼 준비 태세를 갖췄다. NYT는 “새 세대 정치인들이 이번 선거로 기성 정치판에 입성했고, 이들은 지금까지 자신들이 느낀 소외감을 떨치고 변화를 만들어낼 모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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