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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배달부 출신 노벨상 영예…"어릴 땐 과학자란 직업도 몰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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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아, 네가 노벨상을 받은 것 같구나."
4일(현지시간) 새벽, 94세 아버지의 이런 전화를 받은 아뎀 파타푸티언(54) 박사는 "충격"을 받았지만, 몇 시간 후 행복감이 밀려왔다고 했다.

이날 노벨위원회는 파타푸티언 미국 스크립스연구소 박사와 데이비드 줄리어스(65) 미 캘리포니아대 샌프란시스코캠퍼스 생리학과 교수가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두 수상자가 사는 지역의 시간은 오전 2시 30분이었다.

아뎀 파타푸티언 박사가 노벨상 수상 소식을 접한 직후 아들과 함께 찍은 사진. [노벨위원회 트위터 캡처]

아뎀 파타푸티언 박사가 노벨상 수상 소식을 접한 직후 아들과 함께 찍은 사진. [노벨위원회 트위터 캡처]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파타푸티언 박사는 잠을 자느라 발표 사실을 몰랐고, 노벨위원회가 아무리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위원회는 파타푸티언 박사의 94세 아버지에게 연락해 이 사실을 알렸고, 아버지가 아들에게 전화해 소식을 전한 것이었다. 줄리어스 교수도 처제로부터 문자 메시지를 받고서야 자신의 수상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위원회가 그의 연락처를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줄리어스 교수와 파타푸티언 박사는 인간이 어떻게 온도·촉각을 인식하는지 핵심 원리를 각자 규명해 노벨상을 품에 안았다. 위원회는 "(두 수상자의 발견은) 자연의 비밀 중 하나를 밝혀냈다"며 "현재 만성 통증을 비롯해 다양한 질환에 대한 치료법을 연구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NYT 등에 따르면 파타푸티언 박사는 레바논 출신 미국인이다. 아르메니아인의 후손으로 15년간 이어진 레바논 내전을 겪으며 자랐다. 그는 1986년 형제와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와 대학 입학 전까지 1년간 여러 일을 했다. 피자를 배달하고, 아르메니아 신문에 주간 운세를 쓰는 일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연구 중인 파타푸티언 박사.[로이터=연합뉴스]

연구 중인 파타푸티언 박사.[로이터=연합뉴스]

그가 기초연구에 매료된 건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에서 의학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면서 연구소에 들어갔을 때다. 그는 "레바논에선 과학자란 직업에 대해 알지도 못했다"면서 "(연구소의 경험이) 내 직업의 항로를 바꿨다"고 말했다. 그는 압력에 민감한 세포를 사용해 피부와 장기에서 기계적 자극에 반응하는 새로운 종류의 촉각 수용체를 처음 발견했다. BBC는 이 수용체는 이를테면 해변을 걸을 때 발 아래 미세한 모래를 느낄 수 있도록 뇌에 신호를 보낸다고 설명했다.

파타푸티언 박사는 "촉각과 고통의 감각은 미스터리로 남아있었기 때문에 끌렸다"며 "잘 이해되지 않은 분야를 찾아내면 파고들기에 좋은 기회다"고 말했다.

4일 데이비드 줄리어스 교수가 노벨상 수상 소식을 들은 뒤 아내와 함께 기뻐하고 있다. [AP=연합뉴스]

4일 데이비드 줄리어스 교수가 노벨상 수상 소식을 들은 뒤 아내와 함께 기뻐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고교 물리학 교사가 과학자 꿈 꾸게 해   

뉴욕에서 태어난 줄리어스 교수는 고교 때 과학자란 직업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가 다니던 고교엔 마이너리그 야구선수 출신의 물리학 교사가 있었는데, 이 교사가 야구공의 궤적을 계산하는 법을 설명하는 것을 듣고 과학에 흥미를 느꼈다. 줄리어스 교수는 "그는 내게 '어쩌면 나는 과학을 해야 할지도 몰라'라고 생각하게 해준 사람"이라며 고마움을 나타냈다.

그는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대학원, 컬럼비아대 박사 후 과정을 밟으면서 자연의 사물들이 인간 수용체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줄리어스 교수는 "인간의 생존에 고통보다 더 중요한 감각 기관은 없는데도 이보다 더 부실하게 알려진 분야도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줄리어스 교수가 동료들로부터 노벨상 수상을 축하받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줄리어스 교수가 동료들로부터 노벨상 수상을 축하받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그래서 줄리어스 교수의 연구실은 타란툴라 독거미와 산호뱀의 독소, 고추의 캡사이신, 서양 고추냉이와 와사비의 톡 쏘는 화학성분 등 자연계의 다양한 물질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고추의 매운 성분인 캡사이신을 이용해 피부 신경말단에 존재하는 열에 반응하는 감각 수용체를 발견했다. 이는 매운 고추를 먹으면 땀을 흘리는 이유를 밝혀냈다. 캡사이신이 이 수용체를 자극해 전기신호가 대뇌로 '열이 난다'는 신호를 전달하면 신호를 받은 뇌가 열을 식히기 위해 반응하며 땀이 난다는 것이다.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채드 보우튼 뉴욕 파인스타인 의학연구소 교수는 두 수상자의 연구에 대해 "잠재적인 치료법의 새로운 세계를 열어줬다"고 평했다.

한편 노벨 물리학상은 한국시간으로 5일 오후 6시 45분에 발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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