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람이 불던 지난 4일 오후 6시. 혜화역 2번 출구 앞 노란색 천막 뒤로 20명 넘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달고나를 만들어 납품한 업체의 달고나를 먹어보기 위해서다.
‘오징어 게임’에서 달고나 뽑기는 두 번째 게임으로 등장한다. 세모, 동그라미, 별 그리고 우산 모양을 선택해 제한 시간 10분 만에 모양을 완벽하게 떼어내지 않으면 탈락이다.
끊임없는 대기에 “8시간째 화장실 한 번 못 가”
대기 2시간이 지난 오후 8시쯤, 기자는 천막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달고나를 만드는 사람은 달고나 납품업체 ‘세계로 달고나’의 팀장 안세환(37)씨였다. 안씨는 “오늘 12시에 오픈했는데 화장실을 한 번도 못 갔다”며 “물 한 병 마신 게 다인데 손님들이 계속 기다리고 계셔서 자리를 비울 수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늘 일기 예보 상 이런 인파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인기를 실감하냐는 질문에 안씨는 “장난이 아니다”라며 “사무실에서 전날 300개를 만들어와서 매대에 진열했는데 약 1시간 만에 매진됐다”고 답했다. 그 후 8시간째 화장실도 못 가고 달고나를 만들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해 6월 납품 의뢰…“우산 모양 몇 개는 떼기 쉽게”
8년 동안 달고나를 만들어왔다는 안씨로부터 ‘오징어 게임’에 달고나를 납품하게 된 뒷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안씨는 지난해 6월 오징어 게임 제작사 싸이런픽쳐스로부터 달고나 납품을 의뢰받아 약 1000개를 제작했다. 두 명이 이틀에 걸려 만들었다고 한다. 안씨는 “그때는 어떤 내용인지 몰라서 왜 이렇게 많이 필요할까 궁금했었다”고 말했다.
제작사가 이들에게 주문한 사항은 ▶틴 케이스에 들어갈 수 있는 크기와 얇기 ▶빛에 노출했을 때 뒷면이 조금 비쳤으면 좋겠으며 ▶우산 모양 달고나 중 몇 개는 떼어내기 쉽게 만들어달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주인공인 배우 이정재씨가 가장 어려운 모양인 우산을 택하기 때문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
아내와 함께 드라마를 정주행했다는 안씨는 “달고나 게임 장면이 나왔을 때 자부심이 느껴졌다”며“남들이 인정 안 해도 상관없을 정도로 뿌듯했다”고 말했다. 외국에서의 인기도 실감 중이라고 한다. 안씨는 “며칠 전 미국 사람이 와서 달고나 만드는 것을 배우고 싶다고 했는데, 영어를 잘 못 해서 그냥 보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프랑스 파리에서 달고나 뽑기를 해볼 수 있는 ‘오징어 게임’ 체험관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소식에 대해서는 “한국의 뽑기가 다른 나라에 알려지는 게 제 목표였는데, 그 목표에 한발 다가간 것 같아서 너무 좋다”고 소감을 전했다.
“여기가 오겜 달고나?” 사람들은 끝까지 기다렸다
기자가 대기하는 2시간 동안 “여기가 오징어 게임 그 달고나 업체냐”, “이걸 언제 다 기다리냐”며 천막 앞에서 구경하던 사람들도 있었다. 대기하는 줄은 쉽사리 줄지 않았다. 거리 두기 방역수칙으로 인해 천막 안에는 두 명이 앉아 뽑기 체험을 할 수 있었고, 달고나 1개를 만드는 데 약 2분 30초에서 3분 가까이 걸리기 때문이다.
오후 7시 30분쯤 안씨는 잠시 달고나 만들기를 멈추고 천막 밖으로 나와 손님들에게 “지금 계신 손님들까지만 받고 이후에 오시는 손님들은 죄송하지만 돌려보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이 시각 약 20명의 손님이 천막 뒤로 줄을 서 있었다. 이에 자녀 두 명을 데리고 온 한 부부는 “누가 뽑기 집에서 이렇게 줄 서 있을 줄 상상이나 했겠냐”고 말하기도 했다.
친구와 함께 온 중학생 임모(16)양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좋아하던 간식인데,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서 여기서 팔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왔다”고 말했다. 임 양은 부모님과 함께 드라마를 다 봤다고 한다. 옆에 있던 김모(16)양은 “요즘 주위에 안 보는 친구들 없다”며 “부모님께 허락받고 같이 본다”고 덧붙였다.
안씨는 “보통 어르신들이 달고나를 만들기 때문에 어느 순간 대가 끊기는 시점이 올 거라고 생각해 이 업에 뛰어들었다”며 “이제 전 세계인이 달고나라는 음식을 알았으면 좋겠고, 세계가 인정하는 ‘달고나 업체’로 거듭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