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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는 “H사의 도발”이라 했다, 삼성이 성과급 대수술 나선 까닭 [삼성연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인재사관학교라 불려온 삼성이 거센 변화의 바람에 직면했다. 사진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달 14일 서울 서초구 '삼성 청년 소프트웨어 아카데미(SSAFY)' 현장을 찾은 모습. [연합뉴스]

인재사관학교라 불려온 삼성이 거센 변화의 바람에 직면했다. 사진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달 14일 서울 서초구 '삼성 청년 소프트웨어 아카데미(SSAFY)' 현장을 찾은 모습. [연합뉴스]

“최근 H사에서 임금·복리후생 개선과 관련해서 ‘도발’을 해왔습니다. 예상대로 안팎에서 (반응이) 시끄럽습니다. 물론 이 도발에 ‘대응’한다는 게 회사의 방침입니다.”

지난 7월 하순 삼성전자 직원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교육에서 이 회사 인사팀 임원이 강조한 말이다. 여기서 ‘H사’는 대졸 초임 5000만원대, 영업이익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합의한 SK하이닉스를 가리킨다.

성과급은 자존심이자 자부심 

도발에 대응한다-. 삼성전자가 제시하는 성과급 개선 메시지는 이렇게 명료했다. 임금, 특히 성과급 기준을 높여 최근 이슈로 떠오른 ‘최고 대우’ 논란을 잠재우겠다는 메시지였다.

MZ세대 임금 논란.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MZ세대 임금 논란.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도발’이라는 용어도 주목할 만하다. 회사 내부에서 ‘사내용’으로 그것도 ‘은연중에’ 쓴 표현이지만, 삼성을 능가하는 임금·성과급 체계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자존심과 자부심을 대변하는 의미로도 풀이된다.

지난 1월 SK하이닉스에서 촉발한 성과급 논란이 삼성전자를 포함한 주요 대기업으로 번졌다. 예컨대 “성과급 산출방식과 계산법을 공개해 달라”는 MZ세대(1980년대 이후 태어난 밀레니얼+Z세대) 직장인의 목소리가 커진 것이다.

삼성 성과급 어떻게 지급해왔나.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삼성 성과급 어떻게 지급해왔나.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MZ 맞춤형 ‘시간’ 단위 휴가도 신설

삼성전자 노사는 5일부터 본격적인 임금 협상에 들어간다. 1969년 회사 설립 이래 사상 첫 노사 협상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무노조 경영을 포기하면서 협상 테이블이 마련됐다.

노사가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는 것 말고도 또 다른 변화도 감지된다. 이달 1일부터는 ‘시간연차제’도 도입했다. 국내 대기업 중에는 첫 사례다. 올 초 임금·복리후생 협의 결과로 탄생한 제도다. 시간 단위로 휴가를 낼 수 있다는 뜻이다. 기존의 반차(4시간 휴가)보다 진일보했다.

회사 측은 “지금까지는 필수 근무시간이 조금 부족했을 때 반차를 써야 했으나 시간 연차제를 통해 근무시간 인정 범위를 최대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역시나 MZ세대에게 환영받는 휴가제도다.

삼성전자 노사가 지난 8월12일 경기 용인 기흥캠퍼스 나노파크에서 첫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사진 삼성전자]

삼성전자 노사가 지난 8월12일 경기 용인 기흥캠퍼스 나노파크에서 첫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사진 삼성전자]

20년 전 체계화, 2014년 변화 

이런 안팎의 변화를 겪으면서 삼성전자의 성과급 체계는 또 한 번 업그레이드 중이다. 지금은 대부분의 기업에서 PS(Profit Sharing), PI(Productivity Incentive) 등으로 불리는 성과급을 국내에 처음 체계적으로 도입한 것도, 유행시킨 것도 삼성이다. PS는 회사 이익이 목표를 초과해야 지급하고, PI는 소속된 부서나 개인의 성과에 따라 지급하는 성과급이다. 상당수의 기업이 PS, PI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PS(초과이익분배금)를 회사 단위에서 처음 도입한 것은 2000년, 적용한 것은 이듬해 2월이다.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의 ‘성과 있는 곳에 보상 있다’는 보상 철학이 배어 있다. 이 회장은 사장단 회의 등을 통해 수차례 “인센티브는 인간이 만든 가장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켐핀스키호텔에서 삼성 임원진에게 '신경영' 구상을 밝히고 있다. 이 회장은 인재 확보를 위해 성과급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사진 삼성전자]

이건희 삼성 회장이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켐핀스키호텔에서 삼성 임원진에게 '신경영' 구상을 밝히고 있다. 이 회장은 인재 확보를 위해 성과급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사진 삼성전자]

기존의 성과급제를 개선한 것은 2014년이다. 소속 부서보다는 개인 고과를 보다 비중 있게 반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S급 인재’를 조기에 발굴, 육성하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개인 성과급은 ‘화끈하게’ 지급 

이에 따라 삼성전자의 성과급은 상·하반기에 지급하는 목표달성장려금(TAI)과 초과이익성과금(OPI), 개인별 업무성과급, 특별상여금(특별보너스) 등으로 나뉜다. TAI는 반기 실적에 따라 매년 7월 초와 12월 말에 지급되며, 최대 지급액은 기본급의 100%다. 소속 부서에 따라 차등 지급된다.

삼성전자 성과급.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삼성전자 성과급.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특보(특별보너스)는 2013년 신경영 20주년과 같이 특별한 이벤트에 맞춰 지급됐다. 반도체 부문 직원에겐 2017년과 2018년 반도체 슈퍼사이클(초호황) 때 기본급의 400%를 일괄 지급됐다. 이즈음 삼성전자는 미국 인텔을 제치고 반도체 세계 1위에 올랐다. 직원들 사이에서도 올해도 특보를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어느 때보다 높다.

OPI는 목표를 뛰어넘은 초과이익의 20% 안에서 연봉의 50%까지 받을 수 있다. 금액으로는 가장 크고, 매년 1월 말 지급돼 삼성에선 ‘퇴직 시기도 늦추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별상여금은 이 같은 미리 정해진 보수 체계에 따른 정기 성과금 외에 말 그대로 ‘특별’한 경우에 지급된다.

개인별 성과급에 대해 삼성 측은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는다. 다만 내부에선 고과 평가가 우수하거나 연구나 영업 분야 등에서 확연한 실적은 낸 직원에게 ‘화끈하게’ 지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전자 직원 1인 평균급여 추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삼성전자 직원 1인 평균급여 추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라이벌에 밀리지 않고 시장 주도한 배경

성과급제 안착은 삼성전자의 고성장 비결로 꼽히기도 한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수익을 내면 함께 나눈다’는 메시지를 통해 직원들 사이에서 ‘월급 1~2% 올리려고 싸울 필요 없다. 그 시간에 일에 집중하자’는 성과주의 문화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송재용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역시“성과 위주의 평가와 보상 시스템의 성공적인 도입이 삼성의 도약에 중요한 초석이 됐다”며 “글로벌 시장에서 애플·구글·인텔 같은 라이벌과 인력 쟁탈에서 밀리지 않고 시장을 주도한 배경도 성과 보상주의”라고 말했다.

돈 문제에 대해선 물론 어디든, 언제든 불만이 있게 마련이다. 전직 삼성전자 직원 A씨는 “최근 더 논란이 되긴 했지만 연봉에 대한 불만은 늘 있었다”고 전했다. 그의 말이다.

“일부 사업부에서는 성과급이 나올 때마다 전쟁이 따로 없었어요. 특히 반도체공장 기숙사에서 서로 다른 부서 여사원끼리 ‘너희가 뭘 잘했다고 그렇게 많이 받느냐’며 몸싸움이 벌어진 적도 있습니다. 기숙사 벽에 ‘죽어라’ 같은 악담을 써 인사팀이 개입한 적도 있었으니까요.”

과거 같으면 한밤중 회사 담벼락에 붙었던 불만이 이제는 온라인에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시대다. 게다가 MZ세대 샐러리맨은 ‘작은 이슈’에도 민감하다. 익명을 원한 삼성전자의 B간부는 “급여에서 공제되는 1만원 안팎의 식대 가지고도 ‘계산이 잘못됐다’며 성토하는 글이 사내 게시판에 올라온다”며 “회사에서 ‘우리와 다르니 잘 살펴 달라’는 방침이 내려올 정도”라고 말했다.

서울 서초동 삼성 서초사옥에 걸린 삼성 깃발. [연합뉴스]

서울 서초동 삼성 서초사옥에 걸린 삼성 깃발. [연합뉴스]

안팎에서 변화 바람…삼성의 대응은

제일기획 브랜드마케팅연구소장을 지낸 박재항 한림대 글로벌학부 겸임교수는 최근 처우 논란이 불거진 이유를 크게 이렇게 풀이했다.

①우선 조직의 권위 약화다. 박 교수가 삼성그룹에 입사했던 1980년대 후반 회사는 신입사원 연수에서 “동종업계 최고 대우”를 강조했다. 당시엔 대부분 이 말을 신뢰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과연 그런가’라며 의심하는 직원들이 생겨났다.

박 교수는 ②“디지털과 함께 자란 MZ세대는 인터넷 게시판이나 e메일 등 다양한 통로로 의사를 표명하는 일이 익숙하다”며 “이런 성향이 조직의 권위 약화와 맞물려 문제 제기, 입증 요구를 활발히 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③정보가 풍부해져 기업 간 처우 비교가 쉬워진 것 역시 연봉에 민감해진 요인이다. 이전에는 삼성에 다닌다는 것 자체로 자부심을 느꼈지만 ④사회 전반적으로 부(富)를 따지는 경향이 확산하면서 구체적으로 얼마를 받는지가 중요해졌다.

이렇게 안팎에서 불어오는 변화의 바람에 삼성전자는 새로운 대안을 준비 중이다. 게다가 노조와 줄다리기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삼성이 내놓을 ‘대응 카드’을 무엇일까.

삼성연구

삼성전자는 스마트폰과 반도체·TV 등에서 세계 1위입니다. 애플이나 인텔·소니 같은 쟁쟁한 라이벌과 ‘전방위 경쟁’을 하면서 일궈낸 성적입니다. 도대체 어떤 숨은 실력을 갖췄기에?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소재·부품 계열사의 기술·시장 리더십, 경영 DNA, 일등 문화에 대해 ‘탐구’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직장인으로서 삼성맨은 어떤 매력이 있고, 고충이 있는지도 들여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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