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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기찬의 인프라

태양광·탄소중립 속도전에 벌목공이 쓰러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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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김기찬
김기찬 기자 중앙일보 고용노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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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몇해 전이다. 인기몰이하던 ‘무한도전’이 시청자를 경악하게 했다. ‘해외 극한알바(아르바이트)’라는 이름의 프로그램에서다. 압권은 중국에서 찍은 장면이다. 왕우산 절벽에 길을 만드는 잔도(棧道) 공사에 출연자를 몰아넣었다. 깎아지른 절벽에서 공사하라고 다그쳤다.

출연자도 촬영 스태프도 안전모나 추락방지 안전대 등 기본적인 안전장치도 없이 공사 중인 잔도를 걸었다. 아래로 수백m 낭떠러지가 보이는 구멍이 숭숭 뚫린, 발 하나 들여놓기도 힘든 곳을 위태롭게 이동했다. 출연자는 “진짜 너무 어이가 없다. 이거를 거미줄로 해서 가라고? (인부 중엔) 배트맨도 있고 슈퍼맨도 있겠네”라며 항의했다. 결국 이 체험은 중단됐다. 화면엔 그 흔한 ‘안전하게 촬영했다’는 자막도 없었다. 그저 예능이라는 이름으로 재미만 쫓았다. 그게 방송에선 돈이다. 안전은 뒷전이고 돈만 따진 셈이다.

올들어 벌목현장 사망사고 급증
산림청·지자체가 밀어붙인 사업
허술한 안전조치에 일용직 희생
정책 강행에 중대재해 예방 뒷전

대피로·대피장소 마련하지 않아

전북 장수군 등 전국 곳곳에서 산비탈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시설이 산사태로 무너졌다. 사진은 2018년 붕괴된 경북 청도군 태양광 시설. [뉴스1]

전북 장수군 등 전국 곳곳에서 산비탈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시설이 산사태로 무너졌다. 사진은 2018년 붕괴된 경북 청도군 태양광 시설. [뉴스1]

올해 3월 17일 강원도 인제군 북면 원통리 산에서 이모(52)씨가 숨졌다. 벌목한 굴참나무가 쓰러지면서 머리를 가격했다. 산림청의 인제 국유림관리사무소가 인제군 산림조합에 맡겨 진행했다. 산림청이 원청이고 산림조합이 하청업체인 셈이다. 산림자원을 실어나르기 위한 임도 건설을 위한 벌목 작업이었다.

이씨는 일용직이었다. 사고를 조사한 산업안전공단 관계자는 “벌목을 할 때는 대피로, 대피장소를 마련해야 하는 데 없었다. 벌목한 나무가 쓰러지는 방향으로 수구각(방향베기)을 내고 작업해야 하는데 이 또한 지키지 않았다. 이씨는 사고가 나고 40분이 지나서야 119에 신고가 접수돼 생명을 건질 시간도 벌지 못했다. 대응 매뉴얼도 제대로 없었고, 벌목 전 교육도 하지 않아 생긴 사고였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안전사고 예방 조치가 엉망이었다는 얘기다.

이 사고 닷새 뒤인 3월 22일 경남 남해군 남해읍에서 60대 벌목공 정모씨가 허허벌판이 된 산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남해지구 조림사업 벌목현장에서 잘린 나무에 깔려 숨졌다. 보안경이나 안면 가리개 같은 개인 보호장구도 없는 상태였다. 작업계획서도 없이 벌목한 사실도 드러났다. 대피장소나 대피로 같은 위험방지 장치가 있을 리 만무했다. 사흘 뒤인 25일에는 강원도 홍천에서 60대 일용직 벌목공이 나무에 깔려 숨지는 등 벌목 현장에서 근로자 사망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산림청은 올해 ‘산림부문 2050 탄소중립전략’을 내놨다. 2050년까지 3400만t의 탄소를 흡수한다며 30~40년 된 나무 3억 그루를 베어내고 30억 그루를 재조림한다고 한다. 지난 5년간 ‘모두베기’ 일명 싹쓸이 벌목으로 사라진 산림의 면적은 12만2920ha로 여의도 면적의 423배가 넘는다(이만희 국민의힘 의원, 산림청).

산림청의 탄소중립전략에 대해 학계는 "숲을 벌목하면 오랫동안 숲이 저장한 탄소의 최소 50% 이상, 아교목과 관목이 발달한 지역은 70% 이상이 그 자리에서 고스란히 버려진다(배출된다)”는 비판(홍석환 부산대 조경학 교수)을 하고 있다. 사실은 탄소를 더 배출하는 거꾸로 가는 전략이라는 얘기다. 환경운동연합을 비롯한 시민단체도 이를 이유로 전면 백지화를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정부의 태양광 정책에 따라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려 나무를 베어내고 민둥산으로 만드는 작업이 전국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정부의 벌목은 이런 비판에 아랑곳없이 속도전 양상으로 진행 중이다. 여기에 투입돼 숨진 벌목공만 지난해부터 올해 8월까지 14명이다. 올해 들어서만 11건으로 급증했다. 하나같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 바쁜 일용직이다. 발주처는 대부분 산림청 아니면 지방자치단체다. 정부의 중대재해 불감증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책 이행 속도를 높이려 안전조치도 없이 밀어붙인 결과 취약계층인 일용직만 목숨을 담보로 벌목 현장에 투입되는 꼴이다. 돈만 따지다 안전사고가 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태양광 등 지붕공사 사망사건도 60건

환경운동연합 관계자들이 산림청의 벌목 정책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환경운동연합 관계자들이 산림청의 벌목 정책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간 태양광 확대 사업도 엉뚱하게 산재 사고의 주범으로 등장했다. 지난 3월 24일 전북 정읍에서 축사 지붕에 태양광 설치작업을 하던 서모(38)씨가 숨졌다. 그 또한 일용직이었다. 지붕이 무너지면서 6.1m 아래 축사 콘크리트 바닥에 추락했다. 안전모나 안전대는 물론 추락방호망도 없었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지붕 공사로 숨진 사망사고만 60건으로 급증 추세다.

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보건본부 관계자는 “안전모 착용이나 안전조치 구비 같은 기본적인 수칙 준수만으로도 사망에 이르지 않을 사고가 벌목이나 지붕 공사 현장에서 너무 많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오죽하면 고용부가 이들 현장에 대한 집중 안전점검을 하기에 이르렀을까.

TV예능 ‘무한도전’에 비친 재미(돈)를 위해 안전 의식을 접은 그릇된 메시지가 정책 수행을 위해 벌목과 지붕 공사 현장에서 잇따르는 사망사고에 투영된 느낌이다. 다르다면 상당한 출연료를 받는 연예인과 하루 살기가 버거운 일용직이 주인공이라는 사실 뿐이다.

안전불감증은 결국 욕심에서 비롯된다. 정책 이행 속도를 높이려는 것도 근로자의 생명 앞에선 욕심에 불과하다. 이런데도 정부 책임자가 처벌받았다는 소식은 없다. 산재 사고에 따른 기업인 구속 소식이 수시로 들리는 걸 생각하면, 정부만 중대 재해의 특권지대에 있는 듯해서 찜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