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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윤석열 손바닥 ‘왕’자에 주술 논쟁까지 불거진 대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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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국민의힘 대선주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TV토론회 당시 손바닥 한가운데에 ‘왕(王)’자를 그려놓은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MBN 유튜브 캡처

국민의힘 대선주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TV토론회 당시 손바닥 한가운데에 ‘왕(王)’자를 그려놓은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MBN 유튜브 캡처

윤 측 석연치 않은 해명으로 논란 키워

비전 경쟁 뒤로한 채 끝없는 치고받기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TV토론에서 손바닥에 왕(王) 자를 적고 나오면서 불거진 논란이 설상가상이다. 제1 야당인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은 물론이고 여당까지 가세해 주술 논쟁을 벌이고 있다. 국민의힘 측 홍준표 의원과 유승민 전 의원 등은 주술적 의미라며 공세를 펴고 있고, “오방색 타령 하던 최순실 같은 사람과 뭐가 다르냐”는 말이 나왔다. 윤 후보가 홍 의원의 속옷과 개명 과정을 들어 반박하자 홍 후보 측은 윤 후보 부인 김건희씨의 개명 사유를 거론하며 맞받아쳤다. 이를 보다 못해 “조선왕조에서도 왕궁에서 주술을 금했다. 정치가 장난인가. 그렇게 절실하면 각 캠프에서 돼지머리 상에 올리고 고사를 지내라”(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비아냥까지 나왔다.

대선후보 경선이 때아닌 미신 논란에 빠져든 데에는 윤 후보의 책임이 크다. 논란이 거세지자 윤 후보는 “토론을 잘하라는 지지자의 응원 메시지였다”며 무속적 의미는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대선후보 TV토론에 왕 자를 적고 나오는 것이 국민에게 어떻게 비칠지에 대한 생각이 부족했던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주권자인 국민이 뽑는 대통령과 달리 왕은 지위를 세습하며 국가권력을 독점하는 통치권자를 가리킨다. 행정 수반이자 국가원수인 우리나라 대통령은 과거 권위주의적 행태 때문에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유권자가 손바닥에 ‘국민이 왕’이라고 써야 할 판”이라는 반응은 윤 후보의 철학 부재를 꼬집고 있다.

윤 후보 캠프 인사들의 석연치 않은 해명이 논란을 키운 것도 문제다. 손바닥 왕 자로 시비가 일자 캠프 대변인은 “(5차 토론회) 전에는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앞선 3·4차 토론회에서도 있었던 게 곧바로 확인됐다. 그러자 “동네 할머니들이 토론회 갈 때 몇 차례 힘 받으라고 적어줬다”고 말을 바꿨다. 캠프 측은 또 손 세정제로 지우려 했지만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 역시 실제 해보고 얼마든지 지워진다는 반론이 온라인에 올라왔다. 급기야 캠프 측 인사가 “(윤 후보가) 손가락 위주로 씻는 것 같다”고 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번 대선 레이스는 자질 시비에 휘말린 여야 후보들에 대한 비호감이 유독 많은 상황이다. 치솟은 집값 때문에 좌절하는 무주택자, 코로나19 사태로 폐업이 속출하는 자영업자,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젊은이 등 당장 해결할 현안이 산적해 있다. 양극화와 고령화 위기를 극복하고 코로나 이후 바뀔 글로벌 경쟁 구도에서 살아남기 위한 비전을 놓고 경쟁해도 부족할 판인데, 정치판은 나아진 게 없다. 여기에 유치한 주술 논쟁까지 더해졌으니 국민은 위로받을 길이 없다.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현 정치 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나올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