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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 감성이 밀렸다" 애플빠마저 감탄한 갤플립의 비밀[삼성연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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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삼성 연구 - 디자인 경영의 역사

삼성전자는 스마트폰과 반도체·TV 등에서 세계 1위입니다. 애플이나 인텔·소니 같은 쟁쟁한 라이벌과 ‘전방위 경쟁’을 하면서 일궈낸 성적입니다. 어떤 숨은 실력을 갖췄을까요.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소재·부품 계열사의 기술·시장 리더십, 경영 DNA, 일등 문화에 대해 시리즈로 알아봅니다.

지난 8월 공개한 갤럭시Z플립3과 갤럭시Z폴드3은 국내에서 예약판매 기간(일주일) 에만 92만 대가 팔렸다. 초기 흥행몰이에 성공하면서 폴더블폰 대세화에 긍정적인 신호라는 평가를 받는다. 두 개의 모델 중에서도 갤플립3은 ‘애플 마니아까지 변심하게 했다’는 디자인으로 화제다.

갤럭시Z 플립3와 폴드3. 디자인에서 호평받았다. 디자인과 편의성 사이에서 최적의 균형을 찾기 위해 디스플레이 크기를 1㎜ 단위로 고민했다. 모형만 수백개 만들었다. [사진 삼성전자·중앙포토]

갤럭시Z 플립3와 폴드3. 디자인에서 호평받았다. 디자인과 편의성 사이에서 최적의 균형을 찾기 위해 디스플레이 크기를 1㎜ 단위로 고민했다. 모형만 수백개 만들었다. [사진 삼성전자·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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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플립3은 한 마디로 디자인에 올인한 제품이다. 김병철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제품기획팀 프로의 설명은 이렇다.

“부품을 넣을 수 있는 공간이 매우 좁았다. 어떤 기능을 넣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할 때 갤플립3의 기준은 간단했다. ‘디자인적으로 이게 제일 낫다’고 하면 다른 요소는 과감히 덜어냈다.”

디자인과 사용자 편의성 사이에서 최적의 균형을 찾기 위해 1㎜ 단위로 디스플레이 크기를 조정했다고 한다. 갤플립 때도 마찬가지다. 가장 편안한 그립감을 주기 위해 제품 크기를 0.1㎜ 단위로 고민했다.

갤럭시Z 플립3와 폴드3. 디자인에서 호평받았다. 디자인과 편의성 사이에서 최적의 균형을 찾기 위해 디스플레이 크기를 1㎜ 단위로 고민했다. 모형만 수백개 만들었다. [사진 삼성전자·중앙포토]

갤럭시Z 플립3와 폴드3. 디자인에서 호평받았다. 디자인과 편의성 사이에서 최적의 균형을 찾기 위해 디스플레이 크기를 1㎜ 단위로 고민했다. 모형만 수백개 만들었다. [사진 삼성전자·중앙포토]

갤플립3 기획 과정에서 세로가 긴 직사각형이나 정사각형 모양의 커버 디스플레이도 후보에 올랐다. 실물 느낌을 체크하기 위해 수백 개의 목업(mock-up·실물 모형)이 만들어졌다. 색상을 결정하기 위한 목업도 수백 개였다.

각각의 색상이 결정되면, 이들을 한꺼번에 모아놓고 서로 조화가 되는지 다시 확인했다. 한 색상만 ‘튄다’ 싶으면 미세한 조정이 이뤄졌다. 소비자 반응은 뜨겁다. 애플 사용자들 사이에서도 “이제 감성은 애플이 아니라 삼성”이라는 감탄이 나올 정도다.

1970~80년대만 해도 소니·도시바 같은 일본 기업을 쫓아가는데 급급했던 삼성전자가 독자적 디자인을 인정받으며 세계 시장을 선도하기까지는 긴 혁신의 여정이 필요했다.

후쿠다

후쿠다

디자인 혁명을 촉발한 것은 1993년 삼성전자의 디자인 고문이던 후쿠다 타미오가 작성한 56장 분량의 이른바 ‘후쿠다 보고서’다. 이 보고서는 삼성 디자인 혁신의 전환점이 됐다.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고 신경영을 선언하며 “앞으로는 디자인하는 사람이 제일 중요해진다”면서 디자인 강화를 주문했다.

삼성 디자인 주요 장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삼성 디자인 주요 장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당시 후쿠다 타미오는 삼성전자의 낮은 디자인 인식 수준을 지적했다. 여러 안을 절충한 디자인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삼성이 디자인을 경영의 핵심 가치로 처음 내세운 때는 1996년이다. 이건희 회장은 당시 신년사에서 디자인 혁명을 제시했다. 국내에서는 아직 디자인 분야를 주목하지 않을 때다. “다가올 21세기는 ‘문화의 시대’이자 ‘지적 자산’이 기업의 가치를 결정짓는 시대입니다. 기업도 단순히 제품을 파는 시대를 지나 기업의 철학과 문화를 팔아야만 하는 시대라는 뜻입니다. 디자인과 같은 소프트한 창의력이 기업의 소중한 자산이자 21세기 기업 경영의 최후 승부처가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후 과감한 투자로 이어졌다. 삼성은 ‘사용자에서 출발해 내일을 담아내는 디자인’을 디자인 철학으로 삼았다. 이후 5년마다 전략을 재정립했다. 2001년에는 CEO 직속으로 ‘디자인경영센터’를 만들었다. 영국 디자인회사 텐저린 대표 출신인 이돈태 센터장은 “삼성의 디자인은 ▶이성과 감성이 조화된 디자인 ▶비움의 간결미가 감흥을 주는 디자인 ▶삶을 즐겁고 의미 있게 해주는 혁신적 디자인 등 세 가지 가치를 추구한다”고 설명한다.

삼성전자는 현재 미국·영국·일본·중국·이탈리아·인도 등 6개 거점에 해외디자인연구소를 두고 있다. 전 세계에서 일하는 삼성전자의 디자이너는 1500명 이상이다. 1996년 이후 해외 디자인 어워드에서 수상한 제품 수는 1000개가 넘는다.

미국 저널리스트 제프리 케인이 쓴 『삼성 라이징』에 따르면 과거 삼성디자인아메리카의 디자이너들은 단순함과 복잡함, 감성과 이성을 각각 가로·세로축으로 한 사분면에서 애플을 단순함·감성 영역에, 소니를 복잡함·이성 영역에 뒀다. 케인은 “삼성은 소니에 더 가까웠지만 디자이너들은 차별화를 위해 소니와 애플의 중간 지대를 공략하기로 했다”며 “이 작업은 이 회장의 비전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촉진제였다”고 썼다.

디자인 혁신은 진행 중이다. 최근 삼성 디자이너의 새로운 과제는 지속가능한 디자인이다. 버려진 페트병을 갤럭시 S20플러스의 케이스로 업사이클링(upcycling) 하거나 포장재를 고양이 집·TV 테이블 등으로 쓸 수 있게 한 것이 그 예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삼성은 1990년대 초반 메모리 반도체에서 성공한 경험을 바탕으로 기술력·브랜드·디자인 등 소프트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향상했다”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상품과 연계한 종합 솔루션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산업 생태계를 주도하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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