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진은숙, 통영서 미래의 윤이상 키운다

중앙일보

입력 2021.10.05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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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내년 3월부터 2026년까지 통영국제음악제 예술감독을 맡는 진은숙. “태어난 사회에 대한 일종의 책임감이 있다”고 했다. [중앙포토]

내년 3월부터 2026년까지 통영국제음악제 예술감독을 맡는 진은숙. “태어난 사회에 대한 일종의 책임감이 있다”고 했다. [중앙포토]

작곡가 진은숙(60)은 2018년 1월 2일 e메일 한 통을 쓴 후 한국을 떠났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상임 작곡가 역할을 맡기 시작한 2006년 이후 12년 만이었다. 그에게 상임 작곡가 일을 제의했던 지휘자 정명훈 음악감독이 2015년 사임했고, 진은숙이 진행했던 현대음악 프로그램 ‘아르스 노바’의 수익성 논란도 이어지던 차였다.

당시 진은숙은 이렇게 썼다. “1985년에 유학길에 올라 2006년 다시 한국에서 활동하기까지 20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다. 서울시향을 떠남으로써 국내 활동을 접으면 언제 다시 돌아갈지 알 수 없지만 조속한 시일 내 한국음악계를 위해 일할 수 있게 되길 희망한다.”

그 사이 진은숙은 새로운 곡을 쓰고, 세계 무대에서 활동했다. 그라베마이어상(2004), 아놀드 쇤베르크상(2005), 피에르 대공재단 음악상(2010) 등에 이어 지난 6월엔 덴마크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레오니 소닝 음악상을 받았다. 독일 아카데미 지원으로 지난해 9월부터 11개월 동안 로마에 머물며 작곡에 전념했다.

내년엔 런던·보스턴·라이프치히의 오케스트라에서 공동 위촉받은 바이올린 협주곡 2번을 초연한다.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 지휘자 클라우스 마켈라 등 주목받는 연주자들이 무대에 선다.

진은숙이 한국에 돌아온다. 내년부터 5년 동안 경남 통영의 통영국제음악제 예술감독을 맡을 예정이다. 2002년부터 매년 봄 열리는 이 음악제의 주제를 정하고,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연주자를 결정하고 섭외하는 역할이다. 지난달 29일 중앙일보와 전화 통화에서 진은숙은 “오랫동안 망설였다. 하지만 책임감을 가지고 미래세대를 위해 음악제를 만들겠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서울시립교향악단을 떠난 후 한국에서 첫 역할이다.
“통영의 제의를 수락하기까지 시간이 굉장히 많이 걸렸다. 처음에는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었다. 서울시향을 떠난 마지막 상황이 부조리하고 말이 안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생각이 바뀌었는데, 남편(피아니스트 마리스 고토니)의 설득이 제일 주효했다. 베를린 우리 집에 한국의 젊은 음악가들을 자주 불러 밥을 해먹이는데, 그때 내가 가장 행복해 보인다는 이야기였다. 한국에 가서 젊은 세대를 위해 일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고국에 대한 애정인가.
“애정은 너무 간지러운 표현이고, 책임이라는 말이 좋겠다. 한 사회에서 태어난 사람으로서 책임져야 할 부분이 있다고 본다. 어디에서 태어났든  마찬가지 아닌가.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든 이제는 앞만 보고 최선을 다하며 항상 미래를 본다. 다시는 부조리한 상황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하되 거리를 두고, 감정적으로 몰입하지 않기로 했다.”
미래 세대를 위해 어떤 일을 계획하고 있나.
“재능 있는 작곡가 뽑는 일을 이미 시작했다. 원래 내년에 감독직 시작하면서 하려고 했는데 한 해 앞당겼다. 작곡가 네 명 선발에 120명이 넘게 지원했다. 결국 14명을 뽑아 앞으로 음악제에서 작품 연주, 신작 위촉, 공개 리허설 등의 기회를 준다. 이 아카데미를 4일 시작하기 위해 한국에 들어왔다.”
통영국제음악제는 어떻게 만들어갈 생각인가.
“다양성이 일단 중요하다. 클래식도, 오케스트라와 앙상블도 있다. 고음악부터 근대, 현대 작품, 대중적인 것과 전통 음악이 다 들어간다.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예상한다. 그다음은 수준이다. 세계 톱 수준의 최고 연주자들, 국내 음악가, 라이징 스타까지 두루 갖춘다. 이렇게 최고 수준의 음악제를 만들어 한국 문화, 나아가 한국 사회가 앞으로 나갈 방향에 대한 메시지를 던지고 싶다.”
해외의 음악제 경험이 많다. 한국의 음악제는 어떤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
“한국과 해외, 통영과 외국 도시 이렇게 나누면 안 된다. 통영음악제는 여러 가지가 한꺼번에 들어가 있다. 이미 유럽에서 만난 많은 음악가가 통영을 알고 있다. 작곡가 윤이상의 고향이면서 아름다운 도시이기 때문이다. 국제적으로 스위스 루체른 수준의 음악제로 인식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지금 쓰고 있는 작품은.
“두 번째 오페라에 푹 빠져있다. (첫 오페라‘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독일 뮌헨에서 2007년 초연했다) 오스트리아 물리학자 볼프강 파울리(1900~58)의 너무나 흥미로운 삶을 주제로 한다. 그가 꿨던 이상한 꿈, 그 꿈에 대한 정신의학자 카를 융의 분석, 내면의 갈등을 그린다. 2017년 쓰기로 결정을 하고 책을 엄청나게 많이 읽었다. 지금은 자세한 줄거리를 소설처럼 쓰면서 절반 정도 완성했다.”
오페라 스토리를 직접 창작하는 일은 처음일 텐데.
“처음에는 너무너무 무서웠다. 복합적인 스토리인데 내가 다 만들어 써야 했다. 일단 달려들어 요약본을 3페이지 써놓고 그다음에 자세히 썼다. 몇 년 동안 장면을 너무 많이 그려와서 의외로 술술 썼다. 2025년 2월 독일 함부르크 오페라에서 초연한다. 사람들이 내가 이 오페라 이야기할 때마다 눈빛이 달라진다고 한다. 그만큼 완전히 꽂혔다.”
동생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한국에서 대표적 논객으로 활동 중이다. 혹시 소식을 주고받는지.
“우리 남매는 연락 같은 거 안 한다. 나는 한국 소식도 안 들어서 그런 활동 하는지도 몰랐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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