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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 직원 수뢰하면 대통령이 사퇴하나” 이재명의 선 긋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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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본선 진출 9부 능선에 오른 이재명 경기지사는 4일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으로 구속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과 관련, “한국전력 직원이 뇌물 받고, 부정행위를 하면 대통령이 사퇴하느냐”고 말했다. 이 지사는 서울 명동에서 열린 ‘서울지역 공약 발표’ 기자회견에서 ‘대장동 의혹과 관련해 측근들의 비리가 드러날 경우 어떤 책임을 지겠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휘하 직원의 일탈에 대해 사퇴하면 대한민국 모든 공직자가 다 사퇴해야 한다”며 이같이 답했다.

이 지사는 이날 회견에서 “공약 발표 자리지만, 대장동 관련 얘기를 먼저 드리겠다”고 운을 뗐다. “한마디로 화약을 발명·설계한 노벨이 알카에다의 9·11테러를 설계했다는 황당한 소리가 국민의힘에서 나오고 있다”며 시작한 발언은 공약 발표 시간보다 더 길었다.

발언은 야당의 주장을 차단하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이 지사의 노벨 비유는 “제가 설계한 내용은 성남시 몫의 개발이익을 얼마만큼 확실하게 안정적으로 확보할 것인지이고, (이후) 개발이익을 어떻게 나눠 갖는지 설계한 건 민간사업자들 내부의 일”이란 주장과 맥락이 닿아있다. 이는 이 지사가 “내가 설계한 것”(지난달 14일)이라고 했다가, “이 지사 스스로 설계했다고 자백했듯이 사실상 ‘이재명 게이트’”(4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라는 비판이 쏟아지자 이날 설계 단계를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눠 구별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 지사는 “성남시가 5503억원의 개발이익을 환수한 것은 사과할 일이 아니라 칭찬받을 일”이라는 주장을 이어갔다. 이 지사 측 관계자는 “대장동 개발은 공공영역이 담당하는 전반부와 민간영역이 담당하는 후반부로 레이어(층)가 구분돼 있다. 국민의힘이 이걸 구분 않고 국민을 오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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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일부 유감 표명도 있었지만, 이는 ‘관리자로서의 도의적 책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당시 혼신의 힘을 다했지만, 제도상 한계와 국민의힘 방해 때문에 개발이익을 완전히 환수하지 못했다. 국민께 상심 드린 점에 대해 정치인의 한 명으로서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이는 “공공 개혁을 반드시 실행함으로써, 이 유감의 뜻에 대해 책임지도록 하겠다”는 말로 연결됐다.

특히 유동규 전 본부장에 대해 “제가 지휘하던 직원이 제가 소관하고 있는 사무에 대해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된 점은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도 유 전 본부장은 자신의 측근이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캠프 일부 “중도층에 악영향 우려”… 이낙연측 “설계자가 책임져야”

“측근의 기준이 뭐냐. 무리하게 엮지 말라”며 유 전 본부장의 의혹과 관련해선 “관리 책임을 도덕적으로 지겠다”고 말했다.

이 지사 측 핵심 관계자도 “오늘 발언은 유 전 사장 의혹에 대한 사과가 아니라, 관리 책임에 대한 유감 표명”이라고 선을 그었다. 야권의 후보 사퇴 주장에 대해 이 지사는 “도지사가 직접 지휘하는 2만~3만 명의 직원 중 하나가 부정행위를 한 걸 두고, 사퇴하라는 건 지나치다”고도 했다.

이날 이 지사가 대장동 의혹에 정면 돌파를 택한 것은 강경 대응이 경선 과정에서 효과가 있었다는 판단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캠프에선 “대장동 의혹이 터지고 지지율이 오히려 올랐다”(박주민 총괄본부장), “사실상 경선은 끝난 것 아닌가”(현근택 캠프 대변인) 같은 자신감이 나왔다.

다만 현 대변인은 대장동과 관련해선 “대선 본선은 지지자들이나 당원만 갖고 하는 게 아니다. 중도층을 얼마나 잡느냐가 중요하다”는 반응도 냈다. 캠프 소속 초선의원은 “마귀·도둑의힘 등 거친 단어 선택이 중도층에 좋지 않은 이미지를 줄 수 있다. 일부 톤다운도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낙연 전 대표 측이 공세를 멈추지 않는 것도 이 지사 측엔 부담이다. 이낙연 캠프는 이날도 “누구의 지시에 의해 이런 엄청난 범죄를 기획했는지 반드시 밝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엄중한 처벌을 해야 한다”(오영훈 수석대변인), “이 지사는 대장동 비리 사건의 ‘설계자’다. ‘책임’을 진다는 것이 고작 ‘유감 표명’인가”(정운현 공보단장)라고 공격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이 지사의 한국전력 비유에 대해 “해괴망측한 논리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며 “조폭 잡을 때 두목 놔두고 행동대장만 구속하냐”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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