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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판타지 속 판타지를 찾아서 45화. 아라비안나이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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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하고도 하룻밤 동안 펼쳐진 끝없는 이야기

『아라비안나이트』의 ‘알라딘과 요술램프’는 영화 ‘알라딘’의 원작이자 모티브가 된 작품이다. 원작과 영화를 비교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아라비안나이트』의 ‘알라딘과 요술램프’는 영화 ‘알라딘’의 원작이자 모티브가 된 작품이다. 원작과 영화를 비교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오랜 옛날, 아라비아의 어딘가에 한 왕이 있었습니다. 믿었던 아내에게 배신당한 것에 충격을 받아 방황하던 그는 자신의 동생도 같은 상황을 겪었음을 알고 여자들을 믿지 못하게 됐죠. 그리하여 매일같이 다른 사람과 결혼하고는 다음 날엔 죽여버리기를 반복했습니다. 날이면 날마다 한 명의 왕비가 처형되는 상황, 사람들은 겁에 떨고 자신의 가족을 감추기에 바빴어요. 그러던 중 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그의 이름은 셰에라자드. 훌륭한 대신으로 이름 높은 재상의 딸이었습니다. 술탄은 재상의 딸이 결혼을 자청한 것에 놀랐지만, 맹세를 깰 생각은 없었어요. 대신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죠. 셰에라자드는 말했습니다. 오랫동안 같이 산 여동생과 마지막 밤을 함께 지내고 싶다고. 간략하게나마 결혼식이 열리고 첫날이자 마지막이 될 밤, 셰에라자드의 동생이 심심하다며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했습니다. 셰에라자드는 왕의 허락을 받아 이야기를 시작했고, 신비하기 이를 데 없는 기묘한 이야기의 향연에 왕도 정신없이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하나의 이야기가 끝나는가 싶은 순간, 셰에라자드는 말합니다. “하지만 이보다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처음 이야기에 못지않은, 아니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죠. 한참 흥미진진하게 듣고 있는데, 이야기를 끝내지 못한 상황에서 날이 새기 시작합니다. 이대로라면 이야기의 결말을 듣지 못하겠다고 생각한 왕은 ‘하루 정도는 더 살려두어도 되겠지’라며 왕비를 죽이지 않기로 합니다. 하지만 다음 날에도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죠. 심지어 이야기 속의 인물이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 이야기 속 인물이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야말로 이야기 속에서 이야기가 태어나듯 끝없이 계속됐어요.

『아라비안나이트』의 ‘알라딘과 요술램프’는 영화 ‘알라딘’의 원작이자 모티브가 된 작품이다. 원작과 영화를 비교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아라비안나이트』의 ‘알라딘과 요술램프’는 영화 ‘알라딘’의 원작이자 모티브가 된 작품이다. 원작과 영화를 비교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렇게 하루, 또 하루…. 왕은 셰에라자드가 펼쳐내는 수백, 수천의 이야기에 빠져들어 계속 처형을 미루게 됩니다. 그렇게 천일하고도 하룻밤이 지나, 셰에라자드의 이야기가 막을 내렸을 때, 이제껏 모든 이야기가 재미있었다며 칭찬하는 왕에게 셰에라자드는 말합니다. 더 이상은 사람을 해치지 말아 달라고. 그렇게 말하는 셰에라자드의 곁에는 왕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세 아이가 있었죠. 왕은 깨닫습니다. 셰에라자드가 오직 그 말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걸고 왕비가 되길 자청하여, 온갖 지혜로 이야기를 엮어냈다는 것을. 그것은 억울하게 죽어가는 여자들을 구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왕 자신도 구하고자 했다는 것을. 수많은 모험과 흥미로운 사건, 눈길을 끄는 사람들과 마신, 상상의 동물에 이르기까지 온갖 이야기가 왕을 사로잡았지만, 그보다도 왕은 셰에라자드의 용기와 지혜에 감동한 것이죠. 그리하여 왕은 더는 왕비를 죽이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셰에라자드의 이야기는 자신의 목숨만이 아니라 온 국민, 나아가 그 국민의 증오로부터 왕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왕은 그 모든 이야기를 기록하여 왕궁의 보물로 남기기로 하죠. 그렇게 ‘거대한 물고기나 새를 만났던 놀라운 선원 신드바드’ ‘도적의 동굴에서 보물을 얻은 알리바바’ ‘요술램프와 알라딘’ 같은 이야기가 후세에 전해지게 됩니다. 마법의 양탄자와 비밀스러운 암호, 무서운 괴물과 마신, 전설적인 왕자와 영웅, 그런 영웅들을 구하는 지혜로운 여성에 이르기까지. 『아라비안나이트(천일야화)』라는 이름으로 유럽에 전해진 그 모든 이야기는 세계 전역에 퍼져 큰 인기를 누립니다. 그보다 먼저 동화나 판타지 이야기로 친숙해진 유럽과는 다른 동아시아, 신비한 아라비아의 분위기가 널리 전해지는 것이죠.

천일야화의 모든 이야기는 창작입니다. 셰에라자드가 들려준 이야기만이 아니라 그 자신도, 수많은 왕비를 죽여버린 왕조차 역사 속 인물은 아닐 가능성이 크다고 하죠. 하지만 이야기로서 왕의 마음을 치유하고, 수많은 이를 구해낸 셰에라자드의 이야기는 그것이 정말로 있었다고 생각할 만큼 그럴듯합니다. 무엇보다도 천 하룻밤에 걸쳐 펼쳐진 이야기 하나하나가 용기와 지혜로 위기를 극복하며, 교훈과 희망을 전해주기 때문이죠. 상상해 봅니다. 동서양의 문화가 오가는 아라비아의 어느 곳에서, 많은 이야기를 보고 들으며 자라난 여성작가 셰에라자드를. 환상의 이야기를 통해 용기와 지혜를 쌓아간 그는 이야기의 힘을 믿고 폭군에 맞섭니다.

섬이라고 착각할 만한 거대한 물고기와 불타는 마신, 물고기로 변해버린 사람들의 비극과 온갖 신기한 사건. 아랍과 페르시아만, 인도나 중국, 아프리카와 유럽을 아우르는 다양한 지역을 무대로 한 환상의 이야기.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주인공이 겪는 기묘한 사건들, 경이로운 세계와 환상적인 상황이 넘쳐나는 이야기는 힘겨운 일상에 지친 폭군의 마음에 즐거움과 함께 휴식을 안겼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시대를 건너 지금도 많은 이에게 위안을 주고 있죠. 천년의 세월을 넘어 사랑받는 천일야화. 그것은 이 이야기가 단순히 ‘놀라운’ 이야기가 아니라, ‘듣는 이의 마음을 치유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전홍식 SF&판타지도서관장

전홍식 SF&판타지도서관장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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